늘어나는 커피 전문점 9세기'에티오피아'를 그 기원으로 하는 '커피'는 아랍(오스만 제국)을 통해 16세기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 빈(비엔나) 침공에 실패하면서 남겨 두었던 500자루의 원두커피는 유럽 커피문화의 시초 중 하나이다. 런던, 파리, 빈 등 대도시에서 귀족과 신흥 시민계급에 의해 독점적으로 소비되던 커피는 20세기 초반에야 대중화되었다고 하니, 그 기원이 오래된 것에 비해 대중소비의 역사는 짧은 편이다. 오스트리아 '빈 커피집 (Viennese café)'에서 유래했다는 '커피 휴식 (Coffee break)'이라는 단어는, 점심과 저녁 중간쯤 커피와 케익을 함께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유럽의 커피 소비문화를 잘 표현한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는 전문 체인점'은 독일에서 생소한 개념이었다. 물론 각종 원두 커피(가루)를 판매하는 전문 체인점인 Tchibo는 독일 전역에 약 1만5천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어, 독일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커피를 마시는 전문 체인점은 독일도 스타벅스(Starbucks)가 그 시초다. 2001년 베를린에 1호점이 생긴 이후,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재 (2008년 3월) 총 120개의 스타벅스 체인점들이 독일에 존재한다.
베를린에서 두번째로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 바코미 베를린 크로이츠베엌의 베어크만 쉬트라세 (Bergmann Strasse)에 '바코미'라는, 겉에서 보기엔 도저희 커피집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의 커피집이 있다. 그러나 가끔 문 밖으로 늘어선 손님들의 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곳의 커피맛은 일품이다. 보통 볶은 원두를 신선하게 갈아 고유의 배합으로 여러 종류의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스타벅스류의 전문점이라면, 이곳에서는 원두를 볶는 일부터 시작된다. 커피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이 커피 볶는 기계다 (아래 사진 참조). 기본이 되는 보통커피에서 커피집의 솜씨를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애, 어느 커피집을 가던지 먼저 '보통커피'를 '우유'와 먼저 주문해 본다. 바코미의 보통커피 가격은 To Go의 경우 1유로 50센트다. 베어크만 쉬트라세를 방문할 때면, '바코미' 커피 한잔은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 된다.
독일 분단 시절 베를린에 동성애자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베를린은 유럽 최대 동성애 도시가 되었다. 그 역사는 그러나 분단 시대를 넘어 20세기 초로 거슬러간다. 대표적 동성애 작가인 Christopher Isherwood의 소설들 (Mr. Norris Changes Trains (1935년)/ Goodby To Berlin (1939년))에도 동성애자들의 삶이 베를린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 두 소설에 등장하는 지역이 베를린의 ‘놀렌도르프 광장 Nollendorfplatz’이다. 이곳은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았던 식당과 술집, 바, 카바레들이 지금까지 밀집한 지역이다.
Norris가 전차를 갈아탔던 ‘놀렌도르프 광장’ 역 (U-Bahn)에 내리면,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죽어간 동성애자들을 그리는 기념비가 있다. 나치에게 동성애자들은 ‘게르만 민족’의 피를 더럽히는 불순한 자들이었다. 나치는 이들을 강제 수용소에 잡아 놓고 가슴에 핑크색 역삼각형을 새겼다. 여기에 유태인을 상징하는 노란색 정삼각형이 함께 새겨지면, 강제 수용소에서도 가장 낮은 지위를 뜻했다고 한다.
Nollendorfplatz 역에서 내려 남쪽방향 출구로 나와, 길지 않은 Maaßenstrasse를 따라 내려 가다보면, 동성애자들이 즐겨 찾는 카페, 음식점들이 위치해 있다.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면 노천 카페에서 다정하게 짝지어 앉아 있는 이들의 얼굴을 볼 때면, 여느 사람들과 똑 같은 그들을 조금은 신기한 듯 바라보는 내 눈길에 미안한 마음이 들곤한다.
이 거리가 끝나는 곳에 위치한 Amrit라는 인도식당은 베를린에서 매우 인기있는 인도식당 중 하나다. 때문에 ‘관광객 음식’이라는 혹평도 최근에는 듣고 있으나, 5유로 점심 메뉴는 가격대비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본점은 역시 이주민과 문화의 지역, 크로이츠베엌에 위치해 있지만, 이곳 놀렌도르프 광장의 Amrit (위치정보 <- 여기 클릭)도 추천할만하다. 다만 동베를린에 위치한 Amrit는 세 곳 중 맛이 떨어지는 편이다.
5유로 점심 메뉴는 보통 6-7개 메뉴 (치킨 카레, 치킨 탄도리 등등)로 제한되어 있다. 여기에 카레 스프, 셀러드가 함께 제공된다.
1. 베를린에는 외국 이주민들이 많이 산다: 베를린 총 인구수는 2007년 7월 기준 약 335만명이다. 이중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약 466300 명이다. 전체 베를린 주민 중 13,9 퍼센트에 이르는 수치다. 이 통계에는 이미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는 외국 이주민은 제외되었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외국 이주민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은 ‘터키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터키 국적 약 137000명에, 독일 국적 터키인 약 2만명을 합산하면 15만명 이상의 터키인들이 베를린에 살고 있다. ‘뭐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구만’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들이 많이 모여 사는 거리를 지나다 보면, 이곳이 독일인지 터키인지 헛갈릴 때가 있다. 베를린에는 이주민들이 주민 구성의 50% 넘게 차지하는 지역(한국으로 치면 ‘구’에 해당)이 세 곳 있다. 그 중 하나가 ‘크로이츠베엌 Kreuzberg’이다.
2. 베를린에는 동성애자가 많이 산다. 공식적인 통계 수치는 없고, ‘추정치’만 존재한다. 전체 주민 비율에서 적게는 6%에서 많게는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베를린 시장도 동성애자다.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이유는 ‘독일 분단’ 이다. 구 동독 땅 한 가운데 위치한 서베를린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미/소 군사 갈등’ 때문에 ‘서베를린에 산다’는 것은 ‘적진 한 가운데 산다’는 것과 동의어였다. 이러다 보니, 당시 서독 정부는 온갖 지원책으로 ‘서베를린 거주’를 유도했다. 그 지원책 중 하나가 ‘병역 의무 면제’다. 당시 군대 가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을 가장 반겼던 사람들 중 한 부류가 동성애자들이다. 이들을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나마(!) 최근 많이 호전되었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70/80년대 동성애자들이 받았을 가혹한 차별과 차가운 시선은 그 정도가 대단했을 것이다. 짐작컨데, 동성애자들이 ‘서 베를린’으로 그들의 ‘성 정체성’을 찾아 떠난 이주 행렬은 새로운 낙원을 찾아 떠나는 기쁨과 기대의 그것이었을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베를린에서도 ‘함께 모여’ 살았다. 이들이 정착한 땅은 당시 서베를린에서 버려진 땅 ‘크로이츠베엌 Kreuzberg’이다. 베를린 장벽에 붙어 있으면서 ‘버려진 집들’이 유난히 많았던 지역, 전기와 상하수 시설망이 갖추어 지지 않았던 ‘서베를린 구석’ 크로이츠베엌에서 동성애자들은 그들만의 삶을, 삶의 문화를 일구어 갔다. (참, 최근에는 베를린에 독일 최초로 ‘동성애자 양로원’도 생겼다는 소식이…)
3. 베를린에는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정확히 얘기하면 많았다. 이들의 뿌리도 분단 시절로 올라간다. 병역 의무, 그들의 말에 따르면 ‘강제 노동’을 반대하기에, 동서 군사 갈등의 한 복판에서 ‘평화’를 얘기하고파, 버려진 땅 ‘크로이츠베엌 Kreuzberg’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이들 ‘좌파 대안 운동가’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시 ‘버려진 집’들있었다. ‘빈집 거주’운동이 이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도시 한복판에서 도시 공동체의 전형을 만들어 나갔다. 물론 2006년을 끝으로 빈집 점거운동은 사라졌다. (즉 ‘강제 철거’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의 문화가 곳곳에 이어지는 곳이 크로이츠베엌이다.
베를린 크로이츠베엌에 대한 소개는, 오늘은 여기 까지만. (정말로 소개할 것이 많은 지역, 멋스러운 지역-특히 예술가들에게-이지만 다음 기회에…)
이 크로이츠베엌에는 대표적인 ‘거리’들이 많다. 터키 야채가게가 많은 거리, 데모 많이 하는 거리, 술집이 많은 거리 등등등. 그 중 ‘먹거리 거리(?)’도 몇 되는데, 첫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거리는 Bergmann strasse다. (‘여기’를 클릭하면 Google 지도를 볼 수 있다.)
인도 식당, 프랑스 식당, 이태리 식당, 터키 식당, 베트남 식당, 일 식당, 오스트리아 식당, 태국 식당, 그리고 멋진 커피집, 맥주집까지… 약 150미터도 안되는 거리 양 옆에 이렇게 세계 대표 선수들이 나열해 있어 맛집을 찾아 이 거리 저 거리 방황하지 않을 수 있어 좋다. 물론 Bergmannstrasse에 도착하는 순간, 무엇을 먹어야 하나라는 ‘선택의 괴로움’에서 해방된 적은 없다. 그만큼 모든 식당들의 음식들이 골고루 맛있다. (예외: 프랑스 식당은 가격 때문에 가보지 못했다. 물론 15유로면 요리 하나를 주문할 수 있다고 하니, 여느 프랑스 식당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라 다음에 꼭 한번 시식해볼 계획이다.)
이 식당들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곳은 ‘Pagode’라는 태국식당(분식점!)이다. 가격 대비 맛도 대단하고, 주문하면 음식 나오는 속도가 결코 한국의 식당들에 뒤지지 않는다. 내가 즐겨 먹는 요리는, 6유로 50하는 볶은 쌀국수(Guaitiew Pat)다. 1유로를 더 지불하고 Extra Noodle을 함께 주문하면 한국식 ‘곱빼기’되겠다. 음료는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1층(땅층)의 어수선한 분식집 분위기가 싫다면, 이와는 180도 다른 지하 공간을 추천하고 싶다. 작지만 아득한 카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00년대에들어서면서동베를린을중심으로유럽최대의식당/카페/바들이모인공간들이생겨나고있다
(이에대해서는다음기회에다루겠다).
이식당가를베트남식당들이파고들어작은성공을거두고있다. ‘국물’ 음식이 먹거리의 중심에 놓여 있지 않은 독일에서‘쌀국수’를판매한다는것은,
그리쉽지않은일이었을것이다.
최근에는베트남쌀국수집들이서베를린에서도하나둘생겨나기시작했다.
저두 독일에 가봤는데... 독일은 워낙 음식문화가 발달되지가 않아서인지 대부분의 독일음식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영향이 크지않을까 그렇습니다. 독일사람들은 그래서 아주 부유한계층을 제외하고는 자국음식이외의 타국음식에 대해 거부감없이 잘먹습니다.
특히 중국이나 일본요리등 동양요리도 먹고 터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요리도 잘먹고요. 반대로 이탈리아는 음식문화가 너무나도 잘발달되어 자국음식이외의 타국음식은 거의안먹고 타국음식점이라야 로마나 밀라노등 대도시에 가도 스페인요리, 중국요리, 일본요리, 영국요리전문점 몇개, 남미요리(브라질, 알젠틴등)등 정도일까? 암튼 지중해국가일수록 타국요리를 잘안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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