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 (Öffentlichkeit / public sphere)’에 대한 이해-다음 글-를 돕기위해 몇개의 곁가지를 치면서 시작해 보겠다.

1. Öffentlichkeit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사적이지 않은 공적인 그 무엇’을 말한다. 독일어가 영어, 영어가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장/영역 (sphere)’이라는 공간적인 추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공간 개념’이 ‘공론장’ 의미를 이해하는데 제약을 가한다. 그러나 번역어 ‘공론장’을 이 글에서는 일단 그대로 사용하겠다 (개인적으로 Öffentlichkeit에 조응하는 영어는 publicness라고 생각한다).
 
2. ‘개인 독백’이 아닌 대화(conversation) 또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은 ‘공론장’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다. 그리고 ‘의사소통’은 언제나 의사소통의 ‘구조 (structure)’를 동반한다. 또한 이 소통에 참여하는 ‘주체(actor)’와 소통의 구조를 형성하는 ‘과정 (process)’도 중요하다. ‘공간’보다는 ‘대화/소통’, ‘구조’,’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공론장’ 이해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과 ‘구조’는 변화 가능하다는 점도 기억하자.

3. ‘공적인 그 무엇’이라는 설명적인(descriptive) 공론장 개념에서 출발해,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어야 한다 (open access)’ 등 ‘규범적인(normative)’ 공론장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사람이 하버마스(Habermas)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그의 규범적 공론장 개념을 역사적 사례 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유럽 국민국가 형성과정과 그 과정에서 시민계급(부르조아지)의 공론장 형성 과정 분석이 그것이다. ‘A여야 한다’라는 규범적 정의와 역사 사례 분석. 뭔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비판적이고 심층적인 내용을 만들어 내는 신문 또는 (공영) 방송의 중요성을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에서는 유추할 수 있지만, 그 안의 세세한 작동원리를 분석하기에는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은 한계가 많다. 그러나 ‘지향점’을 훌륭하게 제시한 점은 하버마스의 업적임이 분명하다. 이 때문인지 ‘공론장‘ 개념이 하버마스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론장=하버마스’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4. 독일 사회학계와 언론학계에서 보다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공론장 개념은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그것이다. 루만의 공론장 개념과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통합시키려는 시각을 다음 글에 소개하겠다.

5. 2009년 한국의 공론장은 어떤 모습을 띄고 있을까? 어떤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하나의 우회로를 더 확인해 보자.

6. 하버마스가 공론장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것은 1962년 발표한 그의 교수자격논문 “공론장의 구조변동 (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 the structural transformation of the public sphere)”을 통해서다. 최근 독일 언론학과(media studies)를 중심으로 “공론장의 구조변동” ‘다시 읽기 강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평가할 때,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6.1.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정보기술 및 의사소통기술은 ‘사회변동’을 동반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공론장의 구조변동’도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고 믿는 - 아직은 가설 수준 - 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공론장의 구조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면 ‘저널리즘/언론’도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이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6.2 독일학계에서는 비주류에 속하나 하버마스의 대중적 - 특히 68세대에 속하는 원로(?) 정치인들과 원로 기자들 사이에서 - 인기는 매우 높다. 이러한 그가 2007년 한 신문 기고문에서 ‘신문산업’을 지원하는 적시타를 날렸다.
하버마스가 기고한 일간지는 ‘쥐트 도이체 짜이퉁 (Süddeutsche Zeitung)’-독일 최대 전국일간지-이다 (관련글 보기). 당시 해당 신문의 수익률이 떨어지자-적자가 아니라!-, 소유주들은 신문사를 시장에 ‘매물’로 내놓았다. 투자전문회사에 매각되는 것을 우려한 (관련글 보기) 하버마스가 자신의 ‘공론장 이론’에 근거하여 기고문을 작성한 것이다- 하버마스도 이렇게 쉬운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 처음 알았다 ^.^ -. 6.2.1. 신문사들이 지나치게 ‘이윤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도 문제인데, 이러한 신문사들이 투자/투기자본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공론장’의 건강성이 크게 해손될 것이다. 6.2.2. 비판적이고 심층분석에 기초한 신문기사들이 만들어내는 공론장은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다. 6.2.3. 이러한(!) 신문이 만들어 내는 공론장은 ‘공공재’이다. 6.2.4. 물, 전기, 가스처럼 ‘언론 공공재’가 문제없이 공급/소비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 과제이다. 이러한 하버마스의 주장은 2009년 현재 독일신문 경영진들에게 왜곡되어 활용되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신문사에 대한 정부 구제방안이 필요하다는 각종 칼럼, 로비 등에 하버마스의 기고문이 주요 논거로 등장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기고문에서 ‘신문(newspaper)’이 아니라 ‘언론(press)‘이라는 단어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7. 다음번 글에서는 ‘인터넷/웹이 없는 공론장 모델’에 대한 설명을 시도해볼 계획이다. 그 구조와 특징을 기초로 인터넷/웹의 확산 이후 공론장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또는 변할수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개인적인 고민 하나: 글의 문체가 너무 ‘거만’하다. 양해를 구합니다.)

연결 글: 온라인 저널리즘의 길을 묻다: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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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09/05/04 09:55 2009/05/0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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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04 22:36 # M/D Reply Permalink

    공론장이라는 게 잘 와 닿지 않았는데 이제 어렴풋이 이해가 갑니다. 블로그래픽에 주목하신 이유도 조금은 느껴지고요.. 항상 깊이 있는 글 정말로 감사합니다.

  2. joll 2009/05/06 13:24 # M/D Reply Permalink

    미국 북동부의 유력 일간지였던 boston globe가 곧 폐간될 위기에 처해 많은 논쟁이 벌어지는 시점에서 재밌게 읽었음. 근데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공론장과 관련된 몇 가지 생각의 파편들:

    하버마스 공론장 개념의 문제는 3에서 잘 지적했듯 그것의 규범적 지향과 역사적 분석 간의 괴리에서 발견되는 것 같은데, 깨놓고 나는 공론장 개념이 어느 정도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분석적 개념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가 많음. "sphere"가 제시하는 공간성은 말 그대로 소통을 매개로 한 상호작용의 공간적 차원을 드러낼 뿐, 상호작용의 주체나 이들 간의 상호작용, 이 상호작용을 제약하는 조건과 과정을 드러내지는 못하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2에서 지적하신 대로 공론장 내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의 틀과 그 동학--즉, 공론장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데, 문제는 그렇게 분석해들어가면 "공론장"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분석력 뿐 아니라 개념적 적실성 마저도 약해지는 느낌이 들곤 해. 왜냐면 굳이 "공론장"이라는 개념을 쓰지 않고서도 가능한 분석이거든.

    소통의 측면이 강조되긴 하지만, 문제는 소통이 전제되지 않는 사회적 혹은 공적 영역은 없다는 것이고.. 그래서 권력이나 자본의 행사를 통한 소통이 아닌 "합리적" 소통의 영역으로 공론장을 개념화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하버마스가 분석했던 공론장도 "모두에게 열려있"던 건 아니라는 게 분명하고 (부르주아 공론장이 "차이"를 억압하면서 여성이나 평민, 이주자들을 체계적으로 배제시켰다는 비판이 두고두고 제기되었지).. 투기성 자본은 아니더라도 광고수입에 대한 의존성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신문사든 언론사든 자본과 이윤의 논리를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종교나 규범철학에서 가르치는 삶의 방식처럼 그냥 이상적이고 관념적이고 규범적인 개념일 뿐 현실에선 찾아볼 수 없는 공간/영역이라 말한다면 어찌 답해야 할까?

    마지막 시민사회와의 개념적 관계. 하버마스는 공론장을 통해 시민사회가 형성되었다 말하는데, 시민사회도 궁극적으로 영역적 개념으로 국가나 정치사회와 대별되는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소통과 상호작용의 공간이잖아? 이 둘은 어찌 개념정립해야 할까?

    내 워낙 개념이나 이론에 관심이 많아 이래 끄적이는데 트집잡는 것 같아 미안허이. 답할 필요는 없음. 어차피 누가 머리 한두번 굴린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들도 아니고. 혹여나 되씹어볼 문제들이라 생각된다면 다행.

    참, 글의 문체 전혀 거만해보이지 않음. (근데 워낙에 내가 거만해서리 이런 코멘트하기가 쑥쓰럽구먼.. ^^)

  3. 민노씨 2009/05/09 09:10 # M/D Reply Permalink

    일독으로 통독했을 때는 별 내용이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독으로 찬찬히 읽으니 흥미롭게 잘 읽히네요. : )

    추.
    거만의 표지로 생각하는 특정한 수사나 표현들이 계신가요? (궁금해서요)
    제가 보기에도 전혀(혹은 별로) 거만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4. 김원철 2010/02/24 20:24 # M/D Reply Permalink

    안녕하십니까. 평소에 강정수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제 석사 학위논문 결론에 하버마스를 갖다 붙이려고 (…) 이 글 인용했습니다. 참고하세요. ^^;

    http://wagnerian.textcube.com/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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