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해 기억을 잠시 뒤로 돌려보자. 2007년 1월 아이폰이 발표되었을 때, 아이패드에 대한 지금의 실망보다 더욱 큰 실망이 당시 IT블로거들의 지배적 반응이었다 (참조 1). 그리고 이후 6개월이 지나서도 아이폰 판매는 지지부진을 면하지 못했다 (참조 2).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아이폰 판매의 급성장은 정확히 1년 6개월이 지나서야 가능했다. 바로 앱스토어에 약 500여개의 앱이 제공되기 시작한 이후다 (참조 3). 2010년 1월 약 20만개를 넘어서는 앱의 규모와 비교한다면 500여개는 초라하게 보인다. 바로 이 때, 즉 2008년 여름 아이폰은 '기술 라이프사이클(Technology Lifecycle)'에서 이른바 '캐즘(Chasm)'을 통과하고 있었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그런데 애플은 '아이패드' 도입을 통해 위에서 설명한 '기술 라이프사이클' 전략 또는 가격전략과 거리를 확실히 두고 있다. 그 근거는,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과 다양한 보조금 정책이다. 이른바 테크노 기크(techno-geek)들이 주축을 이루는 얼리 어답터 소비자를 뛰어넘어 바로 '대중시장', 즉 'Early Majority' 시장을 공략하려는 것이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첫째는, 강력한 '마케팅 파워'을 뒷받침하는 막대한 '재력'이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하는 광고가 범람할 것이다. 또한 탄탄한 '애플 팬보이' 커뮤니티에 기반한 이른바 소셜미디어 마케팅 등 광범위한 마케팅 행위들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는, '단순한 기능'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아이패드의 '사용자 편의성(usability)'이다. 길게 적힌 기술 사양은 Early Majority에게 큰 의미가 없다. 사용하기 매우 편하고 들고 다니면 확실하게 뽀다구나는 제품, 대중이 지갑을 여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인들을 아이패드는 갖추고 있다.
셋째,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다. 바로 '앱 스토어'와 '아이북스'다. 앱 스토어의 커다란 성공과 쉽게 예상되는 아이북스의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애플이 '대중시장 공략'을 처음부터 내걸고 나선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 '아이북스(iBooks)'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를 살펴보자.
시작도 하지 않은 아이북스가 아마존의 북스토어를 상대로 최근 1승을 가볍게 거두었다 (참조기사). 독일계 영어출판사 맥밀란(macmillan)이 아마존을 상대로 e북의 가격을 올려달라고 요청했었고, 아마존은 북스토어에서 맥밀란 출판물의 판매를 막았다. 이 사건은 단 하루만에 아마존이 맥밀란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이를 애플에 의한 '(잠재적) 경쟁압력'으로 쉽게 해석할 수 있지만, 이 기회에 앞으로 전개될 'e북 플랫폼 경쟁'에서 아마존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 약점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는 한국 e북 플랫폼 시장에도 중요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먼저 아래의 그림을 보자. 아마존과 애플의 e북 관련 가치사슬(value chain, supply chain)을 그려보았다.

그런데 애플의 아이북스는 이와 다른 가치사슬을 보여주고 있다. 애플은 출판사와 소비자를 연결해 주는 중계자 역할을 하고, 중계료로 e북 판매가격의 30%를 출판사에 요구하고 있다. 거래되는 e북의 가격에 대한 가이드라인(예: 가격상한선)을 애플이 출판사에 강제할 수는 있으나, 책이 무료이던, 1000원이던, 5000원이던 아이북스에서 거래되는 e북의 가격은, 소비자의 지불의사를 고려한 출판사의 가격정책에 따라 결정된다. 출판사와 작가에게는 아마존에 비해 애플의 플랫폼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존이 기존 정책을 고집한다면 자연스럽게 애플의 아이북스에 e북 제공 업체들이 몰려들게 된다.
정리하면, 두 가지 지점에서 애플의 아이북스가 아마존의 북스토어보다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1. 가격결정의 많은 자율권을 출판사가 가지게 된다. 일시적으로 가격이 상승할 수 있으나, 아이북스 플랫폼 '내부 경쟁'으로 가격은 장기적으로 내려갈 수 있다. 그렇다고 출판사의 마진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존 북스토어와 비교해 수수료가 작기 때문이다.
2. 출판사는 소비자와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소셜 미디어의 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관계망 형성은 출판사에게 빼앗길 수 없는 (미래) 가치창출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마존은 자사의 플랫폼 개혁을 '킨들'의 새버전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애플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닫힌 플랫폼 구조'에도 비판적이다. 그러나 애플이 만들어내고 있는 혁신들은 결코 가볍게 평가하지 않는다.
Posted by 강정수 @np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