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글은 기성 신문사들의 새로운 매체 -인터넷-에 대한 애절한 고민을 담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한겨레 종이신문을 제작하는 다양한 주체들-회사운영자, 기자, 광고 담당자 등- 스스로가 신문산업 위기의 해결자이다. 그러나 답이 '교육'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새로운 매체에 대한 이해와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겨레 창간정신을 새로운 매체인 인터넷 또는 웹에도 적용해야한다"이다.
고3 때로 기억한다. 1988년 초 고3을 준비하며 이른바 자율학습을 하고있던 교실에 한 친구가 '한겨레 창간준비호'를 들고 왔다. 사회의식 제로였던 나였지만, 그 교실에 전해졌던 긴장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한글로만 쓰여진 신문, 가로쓰기 신문! '진질을 전하는 신문'! 진실이라.... 그럼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은 다 거짓이란 말인가라고 속으로 수차례 자문했다. 그리고 그 한글 신문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었던 묘한 흥분. 이것이 지금까지 많은 실망속에서도 내가 한겨레를 좋아하는 이유다. '기억'과 그 기억에 기초한 '기대'는 내가 한겨레를 바라보는 기본 입장이다.
내게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는 '한글전용 신문'의 정신이 왜 지금의 한겨레에서는 사라졌는가이다. 묻고 싶다. 당시 한글전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한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일부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던 신문을 절대 다수 국민들의 '읽을 거리'로 만드는 것! 이 얼마나 혁신적인 사고인가. 한글전용 신문은 '라틴어'로만 쓰여진 기독교 성경을 독일의 마틴 루터가 국민언어 독일어로 번역한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국민 다수와 함께하려는 정신을 왜 인터넷 매체에서는 찾을 길 없나?
가슴아프게도 이 아름다운 정신은 한겨레 인터넷판에서는 완전히 사라졌다.
1. 아름다운 한겨레 창간정신은 한글을 사랑하는 정신이 아니라, 독자 대중과 함께 하겠다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한글전용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과도한 상상인가?
2. 묻자. 현 한겨레 '신문' 기자들 중에서 자신의 글이 인터넷에도 출판되어진다는 것을 의식하며 '글쓰기'를 하는 기자는 몇이나 될까? 또한 인터넷에서 종이신문보다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글을 쓰는 기자는 몇이나 될까?
3. 묻자. 현 한겨레 '신문' 기자들 중에서 '한겨레 신문'이 아니라 '인터넷 한겨레'로 자신의 첫 기사를 접하는 사람, 자신의 기사 뿐 아니라 한겨레 뉴스를 주로 '인터넷 한겨레'를 통해서 접하는 기자가 몇이나 될까? 혹 있다면,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의 기사 왼쪽에 흉찍한 '잇몸' (임플란트 광고)이 따라다니는 것을 어떻게 참고 있는지? 기사를 무료로 읽기 위해 독자들이 느끼는 -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 이 굴욕감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자신의 한겨레 '신문' 기사의 테두리 문양이 이 잇몸 광고로 되어 있다고 상상해 보라! "최고의 잠자리"라는 글자들이 반복되며 자신의 기사 뒷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1988년 한겨레 창간 당시, 독자대상으로 여겼던 국민대중의 취향이 '종이 신문'을 좋아하는 이른바 '고상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창간때 처럼 인터넷 독자들에게 직접 찾아가는 한겨레 창간정신이 지금의 기자들에게도 이어진다면 '한겨레 인터넷'의 미래는 분명히 밝을 것이다.
Posted by 강정수 @np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