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분분하다. 그러나 위기의 원인에 대한 속시원한 설명을 들을 수 없다. 현재 위기는 마치 이름을 알수 없는 전염 병균이 빠른 속도로 널리 퍼져가고 있는 꼴이랄까?
그러나 지난 주부터 언론과 블로그계는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보다는 그 '해법'을 본격적으로 논쟁하기 시작했다. 앞뒤가 뒤바뀐 느낌이지만, 실물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금융위기의 들불을 끄려하는 다급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관론: '금리 인하'는 또 다른 위기의 시작을 의미
위기에 대한 다양한 해법들은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 부재 또는 방임을 이번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진단하고 '정부 규제 강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다.
다른 하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이번 위기는 세상에 '돈'이 지나치게 많아서 생긴 구조적 위기로 특별한 해결책이 없다는 '비관론'이다. 장기간 지속된 미국 연준의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은행 이자율보다 높은 수익성을 찾는 세계의 금융자본이 기이한 채권시장을 만들었다. 여기에 넘쳐나는 석유 산유국의 오일달러가 가세했고, 규모면에서 세계적으로 급성장한 연금 기금과 보험 자본이 수익성을 찾아 혈안이다. 갈 곳을 잃은 돈이 기이한 채권시장으로 흘러들었고, 결국 자기파괴에 이르렀다는 논리다. 이러한 자본주의 체제 모순으로 이번 금융위기를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최근 미국 연준, 유럽중앙은행 그리고 아시아 각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하'는 다음 위기의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낙관론: 금융시장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자
그럼 다시 정부의 금융시장 규제강화를 요구하는 전자의 '낙관론'에서는 어떤 해법들이 논의되는지 살펴보자. 우선 이번 논의들의 발화점들은 1. 어렵게 미국 상/하원을 통과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Bailout) 자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와 2. 영국정부가 자국 은행들에 제공한 구제금융의 댓가로 해당 은행들을 '부분 국유화'한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다. 독일정부도 약 4000억 유로라는 구제금융 자금조성을 내각에서 결정한 단계라 이 자금의 쓰임새를 놓고 많은 주장들이 쏟아지고 있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리스트 크루그만(Paul Krugman)은,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자금을 이번 위기의 화근이 된 불량채권들을 구입하는데 사용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이 불량채권을 소유하고 있는 금융기관들에 직접 자금지원을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것은 자금지원에 대한 댓가로 영국정부처럼 금융기관들의 지분을 받아내라는 요구다. 이를 통해 1. 은행간 대출업무(interbank lending)가 정상화되도록 은행들에게 직접 압력을 가하고, 즉 시장에 자금을 풀어 '신용 경색 (credit crunch)'을 치료하고, 2. 정부의 금융시장 규제력을 빠른 속도로 확보하라는 이야기다. (원문 보기)
크루그만의 주장과 비슷한 의견을 표하는 인물은 '신자유주의'의 대변자 중 한명인 올리버 캠(Oliver Kamm, 인물정보 보기)이다. 캠은 보수적인 영국 타임즈의 칼럼리스트이며 스스로 투자은행(IB)에서 오랜 기간 일을 했고, 헤즈펀드를 운영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캠은 '구제금융 댓가로 국가가 은행 지분을 획득'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몰락과 공산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며, 영국 보수층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역시 신용 경색을 극복하는 것이 이번 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임을 강조하며, 국가의 시장 개입과 규제가 절심함을 역설하고 있다. (캠의 블로그 보기)
좀더 색다른 주장은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 맨큐(Greg Mankiw)에게서 들을 수 있다. 이른바 '계몽된' 신자유주의 옹호 학자 맨큐는, 정부가 아닌 민간 금융기관(은행, 보험회사)들이 7000억 달러 구제금융을 집행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맨큐는, (갑) 은행이 (을) 은행에서 자금 100을 빌려오면, 정부가 (갑) 은행에 동일한 규모의 100을 대출해 주는 '보너스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 멘큐는, 1. (갑) 은행과 (을) 은행의 거래를 통해, 두 은행 모두 '죽은 은행(zombie)'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서로가 서로를 검증할 수 있다. 2. (갑), (을) 은행의 거래, 즉 시장 거래를 통해 대출 이자, 즉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 경제의 질서가 회복될 수 있다 등을 보너스 프로그램의 유용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맨큐에게 있어서 국가가 민간 은행의 지분을 획득하는 것은 다분히 '사회주의적 조처'이다. 그러나 위의 보너스 프로그램이 은행이 은행을 서로 믿지 못하는 현재의 '신용 경색'을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원문 보기)
다른 각도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는 글은 스티븐 호비츠(Steven Horwitz)의 '좌파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다. 이번 금융위기의 큰 책임은 미국 정부에게 있다. 장기간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고, '자기자본' 없이 채권 발행을 가능하게 한 무능하고 부패한 미국 정부가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등이 호비츠의 정부개입 무용론을 주장하는 근거들이다. 민간 기업들과 정부가 '더러운 협력'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했으니, 이 협력의 끈을 끊어 내는 것이 중요하니 정부 간섭은 더욱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 호비츠의 논리 핵심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더러운 협력'을 함께 구성했고, 어쩌면 더욱 큰 이익을 취했던 기업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원문 보기)
이러한 낙관적인 해결론들은 결국 1. 정부의 시장 규제를 강화하거나 또는 2. 정부의 시장 개입을 절대적으로 제거하자는 두개의 서로 다른 주장으로 나뉘고 있다.
공공의 힘을 믿는다
원인에 대한 진단도 각양각색이고, 그 해법 논쟁에서도 명쾌한 답을 찾을 길 없어 보인다. 그럼 우리네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무능한 정부를, 무책임한 (투자)은행을 계속 믿어야 할까?
어렵고 복잡한 학자들의 논리 보다는 몇가지 사건 및 소식들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면 어떨까? 금융위기가 시작되자 헤지펀드 등 투기자본들이 각국의 공채(government bond)를 사들이고 있다고 한다. 공채가 가장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투자은행들이 미국과 독일의 상호저축은행에 예금 계좌를 개설하고 대규모 자산예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상호저축은행의 민영화를 주장해온 이들이 역설적으로 '저축성 예금'에 대한 국가보증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상호저축은행의 민영화를 주장한 근거는 '민간 은행이 넘처나는 시대, 비효율적인 공공 은행은 불필요하다'였다. 그럼 반문해 보자.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지게 하고, 툭하면 파산하는 민간 은행은 왜 필요한가? 보수 경제일간지 독일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 Deutschland)는 1990년부터 이번 금융위기 직전까지 전세계 주식투자 수익률을 계산해 보았다(원문 보기). 물가상승률을 감안했을 때, 15년 넘게 주식에 투자하면 약 3퍼센트 미만의 실질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주식의 장기 수익률을 알지 못하지만, 주식에 투자하는 것 보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국채를 구입하는 것이 더욱 유용하지 않을까? (관련기사 보기) 이렇게 국가는, 공공의 힘은 '대박'을 보장하지는 못해도 신뢰와 안전한 수익을 보장할 수 있다. 산업은행을 민영화하기 보다, 국민의 건강한 저축/투자를 유도하는 '산업은행 국민 장기채권 계좌'로 그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IMF 구제금융 위기가 한국 사람들의 의식을 '개인주의'로 확실하게 바꾸었다고 한다. 이번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또 다시 '발상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힘을 합칠 때, 각 개인의 이익은 작지만 안전하고 오래간다는 것을 우리가 이번 기회에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하는 깊은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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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백 잘 받았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번 사태가 그나마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