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아픈 글이다. 막 레디앙을 다시 보니, '신자유주의는 자연 해체되지 않는다'라는 글도 보인다. 필자 김정호씨에게 묻자. "구 소련과 중국의 지난 80-90년간의 경제역사를 보며, 한마디로 '맑스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라고 이야기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또는 "구 소련과 중국의 지난 80-90년간의 정치/사회사를 보며, 한마디로 '인권을 유린한, 인간을 살해한 맑스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라고 이야기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김정호씨의 케인즈주의 비판에서 가슴 아픈 것은,
1. 그 '뭉뚱그림'이다. 정확히 말해 글의 '몰역사성'이다. 그럽게 쉽게 유럽의 70, 80년대 경제사를 '케인즈주의'로 정리할 수 있는가? 사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바로 '네오 클래식' 경제이론에서 유럽의 지난 경제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2. 조세저항부터 그의 글의 많은 근거들이 '네오 클래식'의 경제이론에서 나오고 있다. 이부분....
지난 수년간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개인적으로 독일에 와서 경제학 학부부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내가 배운 것 중 무엇이 네오 클래식 이론이고 무엇이 케인즈주의인가"이다. 이는 네오 클래식이나 케인즈주의가 뭐 오묘한 학문이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두가지 학파에서 나온 서로 상극인 경제이론을 마치 '진리'인양 아무런 구별없이 그냥 '일반 경제학'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 구별없음은 바로 '(케인즈주의를 일부 인정하는 척하는) 계몽화된 네오 클래식'의 특징이기도 하다. 미시경제학의 '균형이론'에서 출발하고 있는 '(국가)재정학'은 100% 네오 클래식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는 사실(그렇다고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은...)을 혹 김정호씨는 알고 있을까?
공급주의는 네오 클래식이고, 수요 중심주의는 케인즈주의다.... 이처럼 두 경제학파를 정리하는 것은 정확히 네오 클래식의 시각이다. 그리고 (나처럼)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대다수 기자들의 시각이다 ('선순환' 어쩌고 하면서...).
경제'이론'은 말그대로 '이론'이다. 이론은 '현실'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반영/압축해서 묘사하려는 '모델'들의 연속이다. 그 논리적 적합성 자체가 문제일 수 있고, 반영의 대상인 '현실'이 변동한다면 해당 '이론'의 타당성이 문제될 수 있다.
네오 클래식이 '공적 개입'을 주장하지 않나?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와 이에 대한 '공적 조정(regulation)'이론도 100% 네오 클래식 이론이다.
케인즈주의가 '공급자 중심의 경기부양책'을 이야기하지 않나? 사회복지 강조가 '소비자 중심주의'인가? 사회복지의 축소가 일면 가계의 '가용 자산'의 축소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 이 '가용 자산' 축소는 시장규모의 축소와 이에 따른 '공급자'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럼 여기서 나타나는 '소비시장'과 '공급시장'의 결합/연관성을 주장하는 케인즈주의는 그래도 '소비중심'인가?
아직까지 개인적으로 케인즈주의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점시장 분석에서는 네오클래식 이론을 비판할 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네오 클래식 지지자들이 거시분석을 내놓는 것을 보면 많은 부분 동의하지 못한다. 요것이 나의 수준이고, 앞으로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정호씨의 글처럼 케인즈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싶다.
Posted by 강정수 @np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