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법칙'에 해당되는 글 5건

  1. 03:05:02 Jeong-Soo KANG 세계 금융위기: 문제는 '정치'다! 젠장!
  2. 2008/08/10 Jeong-Soo KANG 하워드 진: 불확실성의 낙관 (1)
  3. 2008/08/07 Jeong-Soo KANG 힘내세요, 기륭전자 노동자분들! (1)
  4. 2008/06/25 Jeong-Soo KANG 촛불시위가 내게 주는 교훈
  5. 2008/04/10 Jeong-Soo KANG 18대 총선 결과가 내게 던지는 질문들... (2)
지난 10월 5일 밤, 유동성 위기에 빠져 파산 직전에 처한 독일 주택담보 은행 'HRE'에 대해 독일 정부와 은행들이 약 500억 유로에 이르는 지급보증을 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또한 지난 토요일 독일 메어켈 총리는, "사기업(HRE)만 지급 보증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여러분들이 가진 모든 저축성 예금에 대해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하겠다, 그러니 넘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독일 전 국민을 '뭐야 은행에 있는 내 돈도 위험하다는 거야'라는 불안감에 빠트렸다. 메어켈 독일 총리의 이 한마디는 '시장불안'을 악화시켰고, 그 결과는 뻔했다. 월요일 독일 주식시장은 악몽의 하루를 보내야 했고, 독일 언론도 '당신의 예금통장은 안전한가?'를 주요기사로 다루면서 '시장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무엇이 지금 도대체 문제인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정치'가 자기 역할을 못하고 있고, '정치집단' 특히 각국의 집권 정치집단들이 자신들의 무능함을 아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1. '미국'의 금융/경제위기가 아니다
레만 브라더즈가 도산하던 지난 9월 15일, 독일 재무장관은 현재 금융 위기는 '미국 금융시스템'의 위기며 독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자랑스럽게 떠벌였다. 그러나 채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독일 언론들은 '도산한 레만 브라더즈에 독일 국책은행이 3억유로를 실수로 이체했다'를 특종으로 알렸다. 그 뒤에도 메어켈 총리는 '독일 금융시스템은 미국과 달리 건실하다'를 주술처럼 외쳤다. 그러나 언론들은 연일 독일 각 주정부 은행들 및 독일 저축은행들의 천문학적 손실을 보도했다. 9월 말 있었던 한 기자회견에서 '유럽차원의 대응책이 필요하지 않나'라는 질문에 자신감 있게 '아니요'라고 답했던 메어켈 총리는, 며칠도 지나지 않아 프랑스 사코지 대통령이 긴급 요청한 유럽 4개국(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법유럽 구제금융 펀드 조성회의를 위해 부랴부랴 프랑스로 달려가는 우스운 꼴을 보여야 했다.
이번 위기는 '미국'의 금융위기도, 독일의 위기도, 한국의 위기도 아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다. 정치권은 이러한 때, 국민들에게 이번 위기의 '원인, 영향 그리도 대처방안'을 솔직하게 그리고 종합적으로 알려야한다. 정치적 개입이 경제에 유익하지 않다라는 일부 미국 공화당 의원들의 잔소리를 귀담아 들을 여유가 없다. '유익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현재 경제가 정치적 행위를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유동성 위기가 아닌 은행이 은행을 믿지 못하는 신뢰 상실이 문제다
미국 정부의 7천억 달러 구제금융 펀드 조성안이 어렵게 미국 상/하원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현재 위기를 '돈'으로만 해결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돈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명성이 전혀없는 투기자산을 형성한 것에 기인한다 (이에 대해서는 lawfully의 글 참조). 실물 경제에 기반하지 않은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금융시스템이 이번 위기의 본질이다. 각 은행들이 자신들이 구매한, 그리고 자신들이 발행한 채권을 믿지 못하면서 '돈의 흐름이 멈춘 것'이 현 위기의 '현상'이다. 각 은행들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은행을 믿기란 불가능하다. 즉 혈관이 꽉 막혀 버린 것이다. 여기서 구제금융은 임시방편일 뿐, 결코 막힌 혈관을 뚫을 수 없다. '불신'이라는 '이물질'을 걸러주는 장치가 없다보니 혈관이 막히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다. 정치권은 이를 '방임'함으로 자신의 과제를 의도적으로 그리고 악의적으로 저벼렀다.

2.1 채권발행 시스템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CDO, CDS 등 실물경제에 근거하지 않은 '가상채권' 발행이 재검토되어야 하고, 각 은행들의 가상채권 소유상태가 점검되어야 한다. 한국과 같은 가상채권의 '순구매 국가'들도 할 일은 많다. 보자. 이번 금융위기는 유독 스페인 은행들을 피해갔다. 스페인에서는 정부가 일찌감치 자국 은행들의 가상채권 구매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2.2 각국 '금융감독기구'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대규모 자금이 '투기성 자산'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었던 배경을 분석하고, 필요하다면 이를 방임했던 '금융감독시스템'을 새롭게 짜야한다. 한국의 경우, '금융위원회'가 '가상채권'에 대한 위험성을 자체 예상하고 있었는지, 각 은행 및 소비자들에게 이에 대한 경고를 시의적절하게 했는지 등을 점검해야 한다. 책임 소재를 확인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2.3 중앙은행과 정부가 함께 해결해야
'물가안정'을 존재근거로 삼고 있는 유럽중앙은행이 현 경제위기를 자체적으로 정확히 진단하고 시중에 돈을 풀 것이라고 기대하고 마냥 기다릴 때는 아닌 듯 하다. 유럽정치권은 '룰'을 어겨서라도 유럽중앙은행과 '직접 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 '물가안정', '중앙은행 독립'은 절대진리는 아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위기로 확산되고 있고, 이를 억제하기 위한 금융정책과 재무정책의 통합적 대응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관치'로 중앙은행에 영향을 주려하지 말고, 1대1 구성원칙으로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가 '금융위기 대책위'를 구성해야 한다. 위기를 위기로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3. 한국언론에의 유감: 이데올로기 논쟁
한국 보수언론들(조중동, 문화, 국민 등)은 '미국 금융시스템' 비판을 '체제 비판'으로 간주하는 모습이다 (참조글 보기). 또 그 반대쪽은 '신자유주의 몰락'을 주장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이러한 논쟁도 필요하다. 이번 위기는 '은행/금융'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 시장경제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 절신한 것은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 배경, 이후 파장에 대한 '사실 확인'과 이에 기초한 공감대 형성이다. 예를 들어 10월 6일자 조선일보의 한 기사를 보면 (기사원문 보기), 미국의 '부동산 담보대출 부실'이 이번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전제되어 있다. 이런류의 기사는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악의적인 기사가 되기 쉽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 문제인가? 마치 길거리에 가판대 설치해 놓고 신용카드 발급해 주듯, 주택담보 대출을 해준 미국 은행들은 바보들로 가득찼을까? 그들이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면서 주택담보 대출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른바 '부동산 대출 부실'이 전혀 없다는 독일의 위기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 걸까? 상황은 조선일보에서 한겨레, 프레시안 또는 오마이뉴스에 이르기 까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겨레에서 '아 이래서 미국발 경제위기가 발생했구나'라는 지식을 주는 기사를 유감스럽게도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미국 한 온라인 뉴스 '기자'가 만든 웹사이트를 보자. "The Monday Meltdown"이라는 제목의 웹사이트는 이번 위기의 배경, 주요 사실, 향후 전망 등에 관련된 글/기사(유감스럽게도 모두 '영어')들을 깔끔하게 '모아 놓았다'. 훌륭하다. 특히 이 웹사이트를 만든 '맷 톰슨' 기자가 첫번째로 추천하는 기사 "The Giant Pool of Money"를 들어보자 ('여기'를 클릭, ''도 내려받을 수 있어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본질에 대한 이해와 고찰을 바탕으로 할 때 위의 논의들은 값진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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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불확실성의 낙관

힘의 법칙 2008/08/10 09:28 Jeong-Soo KANG
지난 2004년 11월은, 다시 시작되는 독일의 긴 겨울을 두려워하며 또한 조지 부시의 미국 대통령 재선 결과에 씁쓸해하며, 마음둘 곳 없었던 시기였다. 이때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번역한 하워드 진(Howard Zinn)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지금도 가끔 내 앞길이 두려워지고, 유혹이 찾아올 때면 읽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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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낙관 (Howard Zinn, 2004년 11월 8일) (원문보기)

권력을 가진 이들에 비해 우리네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의 행위의 결과가 너무나 초라한 이 개같은 세상에서 난 어떻게 이런저런 많은 일들에 열성을 쏟을 수 있고 또 행복해보일 수 있는가? 나는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 백프로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카드들이 끝까지 다 오픈될 때까지 우리는 게임을 포기해선 안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심사숙고 끝에 도달한 메타포: 인생은 도박이다. 그렇기에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길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게임을 한다는 것,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거다. 우리들 사이에 지금과 같은 현실이 지속될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가 갑작스레 체제가 붕괴하고, 사람들의 생각에 있어서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에 대항한 예상치 못한 대규모 봉기가 발생하고, 도저히 망할 것 같지 않던 시스템들이 급작스레 몰락하고 하는 따위의 현상들을 보고 얼마나 놀라와했는지 종종 잊는다는 것이다.

지난 백년간 역사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역사의 철저한 예측불가능성이다. 기술적 진보로 인해 누군가 달에 착륙하는 시점을 정확히 계획/예측해내고, 또 길을 걸으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시대에 이런 소리 한다는 게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치만 한 백년 뒤로 가보자. 반봉건 제국들 중 가장 낙후했었던 러시아의 짜르를 무너뜨릴 혁명은 가장 발전된 제국 권력들 뿐만 아니라 레닌까지도 놀라게 만들어 그로 하여금 황급히 기차를 타고 페테로그라도로 향하게 만들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엔 누가 또 스탈린에 의해 혁명이 불구화될 것이라, 혹은 흐루시쵸프가 스탈린을 까발릴 것을, 혹은 고르바쵸프의 깜짝쇼의 연속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누가 나찌-소련 협약(그리고 떠올리기도 쪽팔린 폰 리벤트롭과 몰로토프의 악수)에 의한 2차세계대전의 골때리는 전환을, 그리고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아만 보이던 독일군의 러시아 진격과 독일군의 패배로 인해 레닌그라드의 입구에서, 모스크바 서쪽에서,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의 거리에서 그들이 되돌아가야만 했던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아무도 미리 알 수 없었던 방식으로 세계가 재편되던 때: 스탈린조차 그 가능성을 낮게 여겼던 중국에서의 공산혁명, 소련과의 결별, 난리법석을 떨었던 문화혁명, 그리고 포스트-마오 중국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받들었던 생각과 제도들을 버리고 모두를 놀래키는 가운데 서방과의 문호를 열고.. 전후 서방제국들의 급작스런 붕괴, 그리고 탄자니아 나이레레의 연성 사회주의에서부터 바로 옆 우간다 이디 아민의 광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 역시 아무도 예측 못했다.

스페인도 경악의 대상이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파시스트 프랑코의 승리로 막을 내렸던 내전에서 백만명이 죽었다. 내전에 참가했던 누군가로부터 스페인의 파시즘을 또하나의 혈전없이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프랑코가 죽고 난 후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모두에게 열려진 의회민주주의가 세워졌다. 폴투갈, 알헨티나, 필리핀, 이란 등 다른 곳에서도 깊게 뿌리 내린 독재체제들이 무너졌다.

냉전 하 양대 권력축이었던 막강한 화력과 파워의 미국와 소련... 치만 이들 슈퍼파워에 관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크기, 부, 다른 나라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축적된 핵무기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 심지어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여겨졌던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당한 개쪽..은 수소폭탄을 가진 거대 권력 조차도 싸우기로 작정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지배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미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인도차이나에 대한 총력전, 어느 조그만 반도에 대한 세계사에 유래없는 폭탄투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물러나야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 미국은 쿠바에서의 혁명을 막을 수 없었으며 칠레에서 알헨티나를 거쳐 엘살바도르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지원했던 독재제들은 무너졌다. 매일의 헤드라인에서 우린, 노동자와 빈자들의 풀뿌리운동이 자본권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을 뽑은 브라질의 경우에서 보듯, 약자에 대한 강자의 권력행사가 실패한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놀라운 사건들의 카탈로그를 들여다보노라면, 총과 돈을 가지고 절대로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이들의 거대한 파워 때문에 정의를 위한 싸움이 포기되어선 안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보인다. 이런 권력체들이 폭탄이나 달러로는 측정될 수 없는 인간의 어떤 속성 앞에 약점을 드러내었다는 점은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보여졌다. 알라바마와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이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혹은 베트남의 농민들이건,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소련의 노동자와 지식인들이건..

힘관계에 대한 계산이 엄혹한 것으로 드러날지라도, 이는 자신들의 싸움의 명분이 정당하다 믿는 사람들을 지체시키진 못한다. 내 친구들의 (단지 내 친구들 뿐일까?) 비관에 맞장구쳐주려고 나도 꽤나 노력했지만, 여기저기 절망적인 일들만 생기는 것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특히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계속 자꾸만 만나게 된다. 내가 어디엘 가든, 그런 사람들은 꼭 있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활동가들 뒤로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주류에 저항하는 건강한 생각들에 마음을 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몰라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꿋꿋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마치 시지프스가 산꼭대기로 돌을 끊임없이 밀어올리듯 절망적인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 당신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당신처럼 거대한 운동의 부재로 인해 가슴아파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바로 그런 운동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의 변화야말로 정말로 나를 북돋아주는 힘의 원천이다. 인종적 편견과 성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전쟁과 폭력이 여전히 우리의 문화를 짓누르고 있고, 가난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 많고, 또 변화를 무서워하고 있는 그대로에 만족해하는 사람들 분명 있다. 그러나 이런 측면만 보는 것은 역사적 관점을 놓치는 거구, 이건 마치 어제 태어나서 오늘 아침신문과 저녁뉴스의 힘빠지는 이야기들만 아는 꼴이 다.

단지 몇십년 사이 이뤄졌던 엄청난 변화들, 인종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 여성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자리를 요구하는 당당한 모습, 동성애자들이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확산, 그리고 잠깐의 광기 이후 찾아온 군사적 개입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우려를 보라.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보아야할 것은 바로 이러한 장기적 변화들이다.

비관주의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 비관주의는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음으로써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혁명적 변화는 한순간의 대격동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라 (치만 그 순간을 놓치지 말지어다!), 더욱 나은 사회를 향해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놀라운 사건들의 끊임없는 연속으로 다가온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대단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찾을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들도 수백만에 의해 더해진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승리"하지 못할 때 조차도, 우리는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고 단지 우리가 그 과정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동참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낙관론자라고 꼭 가벼운 사람은 아니라, 우리 어둠의 시대에 좀더 꿈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좆같은 시대에 희망적일 수 있다는 걸 멍청한 낭만주의로 봐선 안된다. 그런 태도의 밑바탕에는 인간역사가 단지 잔인함의 역사가 아니라 연민과 희생과 용기와 친절함의 역사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복잡다단한 역사 속에서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결정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최악만을 보게 된다면, 그건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마저 파괴시킬 것이다. 만약 우리가 역사 속에서 거대한 민중이 정말 기가 막히게 어떤 역사를 만들어냈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린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네르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을 바뀌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것이나마 우리가 직접 행동할 수 있다면, 우린 머 대단한 어떤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일 따름이다. 그리고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현재를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건 놀라운 승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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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 사건을 '알고 있다'는 것과 '마음에 담다'는 것은, 한사람의 '기억'을 구성하는 형식들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에 주는 영향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이를 알려준 건, 오늘 아침 일어나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보게된 동영상 뉴스 한편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투쟁 (고공투쟁 등) 소식들은 오래전 부터 뉴스를 통해 간간히 접해 왔다. 비정규직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하면서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기륭전자 노동자들에 대한 이 동영상 한편은 마음 깊이 담아둘 기억을 내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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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가 내게 주는 교훈

힘의 법칙 2008/06/25 05:37 Jeong-Soo KANG
1997년 독일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빌레펠트(Bielefeld)에서 외국에서의 첫 삶을 시작했던 내게, '외식'과 맥도널드 또는 버거킹을 찾는 것이 동의어이었던 때가 잠시 있었다. 특히 맥도널드의 감자튀김 하나를 달랑 구입해 아내와 나눠 먹던 기억 때문에 그 맛에 대한 좋은 추억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2000년 베를린으로 생활의 거처를 옮기면서 약 4년만에 처음보는 '케이에프씨 KFC' 간판은, 유난히 닭요리를 좋아하는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다가왔다. 그 지나친 기름 맛 때문에 즐겨 찾지는 않았지만, 1년에 한두번씩은 케이에프씨를 찾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곳을 나올때면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찜찜한 마음이 가득했다. '나, 가난해요'라고 얼굴에 적고 살아가는 듯한 아랍사람들이 가족별로 모여앉아 닭고기를 먹고 있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했다. 특히 그곳에서 본 갓 4-5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입주면에 묻었던 기름기를 떠올릴 때면, 뭔가 찜찜한 양식의 가책이 마음 한편에 생겨나곤 했다.

2003년 쯤으로 기억한다. 독일의 저가 슈퍼마켓 체인점인 '알디 ALDI'와 '리들 LIDL'에서도 '고기'를 팔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등 신선한 육류를 시중 가격보다 20-30%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새롭게 생긴 습관은, 그 저가 체인점에서 육류를 구입할 때면 이제 가격표를 잘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렴하고 품질(? '원산지 독일' 표시 확실하다) 또한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만큼 육류소비도 증가했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내가 참으로 부끄러워지는 촛불시위 관련 글을 최근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참으로 훌륭한 글이라고 판단한다. 과거 '대량 및 저가 육류소비의 문제점'을 주제로한 독일어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 한편에 꼭꼭 숨겨 놓았던 '적게 먹으며 살자'라는 결심을 이제는 행동으로 옮길 때인 것 같다. 이것이 아래 글이 내게 주는 '진보'다.

'진정 춧불이 비추어야할 것은 무엇인가'


참 나도 이와 관련된 글을 2001년에 쓴 기억이 떠올라 찾아보았다.
'욕망이 낳은 재앙, 구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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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새벽 4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 9시경 눈이 떠졌다. 총선결과가 궁금해서다. 아니지, 아직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 (여긴 독일이니, 정오 12시가 한국시간으로 저녁 7시다) 이후 기다림의 3시간은 어렵지 않게 지나갔다. 이는 기대감때문이었다. 혹시나 심상정 후보의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말이다. 설레던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후 3시쯤, 심상정 후보와 노회찬 후보의 패배를 받아들이면서 컴의 파워를 껐다. 4월의 창밖으로는 차가운 (아직도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의 시작
낮은 투표율,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 친박 후보들의 선전, 자유 선진당의 약진 등등의 제목이 달린 기사들을 클릭하지 않았다. 내겐 그리 놀라운 소식들이 아니었다. 머리를 맴도는 것은, 얼마전 독일을 잠시 방문한 한 선배의 얘기다. 80년대 군사정부가 물가를 잡기위해 '임금 가이드라인'을 강제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사는 자녀 (대학) 학자금 전액지원 같은 형식으로 당시 임금인상을 대신했다고 한다. 학자금 전액지원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노동자들이 자녀 학원비 마련을 위해 주말야근을 한다고 한다. 학원을 열심히 보내 자녀가 의대에 들어간다고 하면, 자녀의 장래가 보장(?)되는 것을 떠나 노동자 입장에서는 입학금과 등록금에 해당되는 돈을 자동적으로 벌게되는 셈이다. 바야흐로 학원비마련을 위한 '잔업 경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노동(시간)을 나누자, 나눈 노동(시간)을 통해 비정규직을 정규화하자라는 주장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워진다. 내가 현대자동차 노동자 입장이라면 어떨까? 그래도 노동을 나누는 결정은 쉽지 않다. 잔업 수당도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 잔업 수당이 높은 수익률(?)의 '교육 투자(?!)'가 된다면? 알량한 대의를 위해 최소 3천만원을 난 포기할 수 있을까?

아파트값 상승과 투표행위
자고 일어나니 집값이 얼마가 올랐다는 얘기들을 가끔 듣는다. 몇년 동안 일하고 저축해야 만져볼까 말까한 금액이 하루 이틀 사이에 오르락 내리락한다? 독일에서 줄창 이른바 '월세'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 얘기다.  6년 전쯤인가,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X같은 회사 생활, 주택구입 대출금 상환 때문에 참는다"고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는 이유가 어디 대출금 상환뿐이었겠나 싶다. 송파에 위치한 아파트였으니, 남들이 보기에 훌륭한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그 친구에게, 월급의 일부만 은행에 저축해서는 만질 수 없는 재산이 되었을 것이다.
이번 총선 전에 불었던 서울 강북지역의 아파트 값 상승에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주장을 접한 적 있다. 뭐 전혀 음모스럽지 않다. 한나라당을 찍으면, 다음 날 아침 아파트 값이 오른다라는 '상상'만으로도 유권자들의 마음은 충분히 동했을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하루 아침에 1-2천만원을 벌 수 있다면?

영어교육과 투표행위
노회찬 후보를 이긴, 미국 대학 졸업한 홍정욱. 이제 당선되었으니, 1년에 100시간 지역에서 '영어교육' 약속을 지킬 것이다.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면 선거때 이러한 장점이 있을 줄이야.... 강남에서 홍정욱이 출마해 100시간 공약을 내걸었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경남 사천에서는? 100시간의 가치가 지역마다 차이를 보일 것이다. 노원이 강북의 '강남'이 되고자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내가 노원 구민이고, 내 자식이 영어 좀 하는 중학생이라면? 100시간으로 상징되는 '홍정욱표 영어교육'에 과연 매력을 느꼈을까?

온갖 잡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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