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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과 부르조아지 공론장의 탄생: 이룰 수 없는 '참여 공론장'의 꿈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기 전 프랑스 사회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자. 이 여행을 동반하는 책은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1962)'이다.
하버마스가 이야기하는 공론장은, 왕과 그의 귀족들이 만들어 낸 '궁정 공론장'이 아니라 당시 태동한 시민계급(=부르조아지)이 만들어낸 공론장이다. 이 공론장은 도시를 중심으로 모여살기 시작한 새로운 인간사회를 통해 태동하기 시작한다.

파리 또는 아비뇽 등 도시에서 부를 창출하기 시작한 새로운 시민계급은 그 부를 늘려가기 위해 그리고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시민계급에 의해 요구된 노동력은, 당시 봉건영주 밑에서 반노예 상태로 살고 있었던 농노들이 그들의 예속을 벗어나면서부터 비로소 채워질 수 있었다. 봉견영주의 예속을 벗어난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롭게 유입된 노동력에 힙입어 당시 프랑스 부르조아지에게는 부가 증대되었고 그리고 '여유(=시간)'가 늘어났다. 그리고 늘어난 '부'와 '시간'만큼 '걱정'도 함께 늘어갔다. 늘어난 도시 인구는 이들 시민계급에게 '사회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던 도시는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도시에는 부르조아지 자식들을 위한 교육시설이 없었고, 부르조아지 가족들이 다닐 성당도 없었다. 거리에는 악취와 소음이 가득했고  아프고 병든 자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부'를 늘려가기 시작했던 수공업자 그리고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심각하고 끔직한 상태'에 대한 불만들이 오고 갔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들 자식들의 미래에 대한 근심이 담겨 있었다. 몇몇 상인들은,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며 이 새롭게 추가될 노동자들을 머물게할 공간이 없다고, 도시를 확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한 그들이 처한 도시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왕과 귀족에 대한 성토대회가 열리기 시작한다. 이들의 열띤 논쟁이 시작된 곳, 이것이 당시 프랑스 파리와 아비뇽의 '커피집=카페'다. 여기가 바로 하버마스가 분석한 '부르조아지 공론장'의 탄생지다.

공론장은 바로 '문제가 있는 곳'에 그리고 바로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모일 때' 형성된다. 여기서 근대 자유의 개념과 민주주의의 태동한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부르조아지 공론장는 동시에 '배제의 공론장'이기도 하다. 도시로 몰려 들었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끔찍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을 했고, 이들 대부분은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들에겐 한가로이 카페에 모여 이야기할 시간도 돈도 없었다. 물론 계급을 떠나 '여성' 모두는 이 공론장에서 배제되었다.

공론장과 저널리즘의 관계:  저널리즘 독립의 중요성
이러한 부르조아지 공론장의 탄생과 더물어 주목할 사실 하나는 저널리즘의 탄생이다. 지리적으로 떨어진 '커피집=카페'를 연결하기 위해, 시간적으로 떨어진 '토론 내용'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기 위해 각 커피집과 토론 내용을 연결하는 '중계자'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이 중계자들의 의해 각기 서로 다른 공론장은 '신문'을 통해 기록되고 전파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하버마스는 당시 존재했던 '아주 작은 규모의 신문과 다수 저널리스트'의 '경쟁'에 주목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다양한 중계자들의 경쟁을 통해 부르조아지 공론장은 건강성을 유지한다. 때문에 당시 나의 33세의 하버마스는 그의 교수자격 논문 '공론장의 사회변동'에서 국가에 의한 1. '매체 다양성'과 2. '편집국의 내부 민주주의' 보장을 주장한다. 다수 저널리스트와 다수 신문 사이의 갈등과 긴장 만이 공론장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왜곡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과 긴장이 사라질 때, 하버마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없다.
최근 신문 산업이 위기에 처하자, 2009년 만 80세의 노인이 된 하버마스는 신문 산업을 지원하는 대대적인 국가의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관련 글 보기).

브레히트의 꿈: 관계 미디어
현재 미디어 지형을 이해하기 이전 소개하고픈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20세기 독일 최고의 문인이요 예술가요 실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라디오 이론'이다. 그는 1927년(!) '라디오'의 가능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참고로 독일에 첫 라디오 방송국이 생긴 해는 1923년이다.
라디오는 전달장치(distribution-device)에서 소통장치(communication-device)로 전환되어야 한다. ... 이 엄청난 전환은 라디오가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청취자가 듣는 것만이 아니라, 청취자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속에 머물게 된다.
청취자가 이야기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청취자 서로가 듣게되어 이들 사이에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브레히트는 라디오라는 새로운 미디어에서 보았다. 그러나 그의 꿈과 희망도 연이어 등장한 히틀러 정권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자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에 의한 새로운 참여 공론장의 꿈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2부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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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10/05/06 09:52 2010/05/0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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