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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과 부르조아지 공론장의 탄생: 이룰 수 없는 '참여 공론장'의 꿈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기 전 프랑스 사회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자. 이 여행을 동반하는 책은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1962)'이다.
하버마스가 이야기하는 공론장은, 왕과 그의 귀족들이 만들어 낸 '궁정 공론장'이 아니라 당시 태동한 시민계급(=부르조아지)이 만들어낸 공론장이다. 이 공론장은 도시를 중심으로 모여살기 시작한 새로운 인간사회를 통해 태동하기 시작한다.

파리 또는 아비뇽 등 도시에서 부를 창출하기 시작한 새로운 시민계급은 그 부를 늘려가기 위해 그리고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시민계급에 의해 요구된 노동력은, 당시 봉건영주 밑에서 반노예 상태로 살고 있었던 농노들이 그들의 예속을 벗어나면서부터 비로소 채워질 수 있었다. 봉견영주의 예속을 벗어난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새롭게 유입된 노동력에 힙입어 당시 프랑스 부르조아지에게는 부가 증대되었고 그리고 '여유(=시간)'가 늘어났다. 그리고 늘어난 '부'와 '시간'만큼 '걱정'도 함께 늘어갔다. 늘어난 도시 인구는 이들 시민계급에게 '사회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던 도시는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도시에는 부르조아지 자식들을 위한 교육시설이 없었고, 부르조아지 가족들이 다닐 성당도 없었다. 거리에는 악취와 소음이 가득했고  아프고 병든 자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바로 이 때, '부'를 늘려가기 시작했던 수공업자 그리고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심각하고 끔직한 상태'에 대한 불만들이 오고 갔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들 자식들의 미래에 대한 근심이 담겨 있었다. 몇몇 상인들은,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며 이 새롭게 추가될 노동자들을 머물게할 공간이 없다고, 도시를 확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한 그들이 처한 도시 문제에 대해 무관심한 왕과 귀족에 대한 성토대회가 열리기 시작한다. 이들의 열띤 논쟁이 시작된 곳, 이것이 당시 프랑스 파리와 아비뇽의 '커피집=카페'다. 여기가 바로 하버마스가 분석한 '부르조아지 공론장'의 탄생지다.

공론장은 바로 '문제가 있는 곳'에 그리고 바로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이 모일 때' 형성된다. 여기서 근대 자유의 개념과 민주주의의 태동한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부르조아지 공론장는 동시에 '배제의 공론장'이기도 하다. 도시로 몰려 들었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끔찍한 노동조건 속에서 일을 했고, 이들 대부분은 글을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들에겐 한가로이 카페에 모여 이야기할 시간도 돈도 없었다. 물론 계급을 떠나 '여성' 모두는 이 공론장에서 배제되었다.

공론장과 저널리즘의 관계:  저널리즘 독립의 중요성
이러한 부르조아지 공론장의 탄생과 더물어 주목할 사실 하나는 저널리즘의 탄생이다. 지리적으로 떨어진 '커피집=카페'를 연결하기 위해, 시간적으로 떨어진 '토론 내용' 사이의 간격을 극복하기 위해 각 커피집과 토론 내용을 연결하는 '중계자'가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이 중계자들의 의해 각기 서로 다른 공론장은 '신문'을 통해 기록되고 전파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하버마스는 당시 존재했던 '아주 작은 규모의 신문과 다수 저널리스트'의 '경쟁'에 주목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다양한 중계자들의 경쟁을 통해 부르조아지 공론장은 건강성을 유지한다. 때문에 당시 나의 33세의 하버마스는 그의 교수자격 논문 '공론장의 사회변동'에서 국가에 의한 1. '매체 다양성'과 2. '편집국의 내부 민주주의' 보장을 주장한다. 다수 저널리스트와 다수 신문 사이의 갈등과 긴장 만이 공론장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왜곡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과 긴장이 사라질 때, 하버마스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없다.
최근 신문 산업이 위기에 처하자, 2009년 만 80세의 노인이 된 하버마스는 신문 산업을 지원하는 대대적인 국가의 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관련 글 보기).

브레히트의 꿈: 관계 미디어
현재 미디어 지형을 이해하기 이전 소개하고픈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20세기 독일 최고의 문인이요 예술가요 실천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라디오 이론'이다. 그는 1927년(!) '라디오'의 가능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참고로 독일에 첫 라디오 방송국이 생긴 해는 1923년이다.
라디오는 전달장치(distribution-device)에서 소통장치(communication-device)로 전환되어야 한다. ... 이 엄청난 전환은 라디오가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을 이해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다시 말해 청취자가 듣는 것만이 아니라, 청취자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를 통해 그들은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속에 머물게 된다.
청취자가 이야기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청취자 서로가 듣게되어 이들 사이에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을 브레히트는 라디오라는 새로운 미디어에서 보았다. 그러나 그의 꿈과 희망도 연이어 등장한 히틀러 정권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다.

자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에 의한 새로운 참여 공론장의 꿈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2부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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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6 09:52 2010/05/0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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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자료-이른바 PPT- 또는 오디오슬라이드쇼 제작을 하면서 만나는 여러 어려움 중 하나는, 사진과 배경음악을 손쉽게 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합법적으로 말이다. 방송 화면을 일부 편집해서 사용하고 싶은가?여의도에서 바라 본 회색도시 서울의 석양 사진이 필요한가?
합법적으로 이러한 자료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CC 표시가된 저작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CC란 Creative Commons의 약칭으로 '창조적 공유재'를 뜻한다.

카타르 방송국 알 자지라, 영국의 BBC, 독일의 공영 방송 NDR 등이 CC 방송자료를 제공한다. 미국 백악관네덜란드 정부가 CC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의 롹 밴드 Nine Inch Nails가 CC를 자신들의 음악에 적용하고, 한국의 RecAndPlay.net이 CC를 사용한다. 다른 누가 또 CC를 사용하고 있는지 관심있다면 '여기'를 클릭하시라.

CC의 뜻을 쉽게 정리해보면,
CC는 All Rights Reserved가 아니고 No Rights Reserved도 아니고 Some Rights Reserved다. 그리고 '열림open'과 '나눔share'이 CC의 기본정신이다. CC는 예술가, 작가, 그리고 블로거 등이 자신의 지적 재산을 어디까지 보호하고 그리고 어떻게 확산시키고 나눌 것 인지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움을 주는 '도구'이다. 상업적 사용을 반대하는 CC 라이센스는 네가지 기준점에 따라 총 6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여기'를 참조하시라.

CC는 2001년 미국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CC가 비판하는 전통적인 지적 재산권은 1883년 파리 국제협약과 1886년 베른 국제협약을 통해 만들어졌다. 당시 작디 작은 유럽과 북미 시장을 배경으로 지적 창작물에 들어간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노력을 '경제적으로 환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적 재산권이 과연 지금과 같은 세계 시장 규모에서 타당한지 의문을 던져 볼만하다. 여기서 지적해야할 사실은, 지적 재산권을 통해 가장 많은 이익-약 80%-을 취하는 집단이 미국 기업들과 유럽기업들이다라는 점이다(참조보기: James Boyle의 PDF자료).

CC를 쉽게 설명한 동영상을 소개한다.

Creative Commons "Wanna Work Together" from Ryan Junell on Vimeo.

그리고 CC의 선구자는 스탠포드에서 지금은 하버드 법대로 자리를 옮긴 Lawrence Lessig이다. CC와 관련된 그의 대표적 저작 Remix는 '여기'서 내려받기 가능하다. 그리고 그의 명연설 동영상도 아래에 추천한다.


참,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CC를 사용하여 뭔가를 재 창조할 때는 반드시 '저작자' 또는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것은 인터넷 문화가 '열림', '나눔' 그리고 '투명성'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승환님(@NdeModel)의 '네티즌도 개념은 필요하다-_- Goodbye old Korea'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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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5 23:33 2010/05/05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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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찬란하게 이룩했던 '시민 저널리즘'의 신화가 차츰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 2007년 블로그의 급속한 확산은 '1인 미디어 시대(!)'를 노래케 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아직도 외쳐 부르는 이는 없다. 북미대륙과 유럽에서 2008년 부터 본격화된 '신문의 위기'는, 한편에서는 '저널리즘의 위기'로 이해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구 권력'의 붕괴와 새로운 '언론 미디어'의 탄생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새로운 그 무언가는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블랙베리'와 '아이폰'은 '모바일 웹'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아직 아장아장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무엇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거친 물결을 건너야할지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변화가 더딘 것일까? 도대체 미디어는 어떤 변화의 과정을 지금 통과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미디어 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최근 클레이 서키(Clay Shirky)가 제시하고 있다.

클레이 서키는 지난 3월 중순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렸던 SXSW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처보기).
"Institutions will try to preserve the problem to which they are the solution. 기관/조직/기업은 자신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를 추구한다(의역)."
마치 선문답을 하는 듯한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

그 의미를 해석해 보자. 핵심은, '문제(problem)'가 없다면 '해답(solution)'도 필요없다는 점이다.
문제 A를 가진 사람이 있고, 이에 대한 해답 A를 가진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업에게 해답 A는 이른바 '비지니스 모델'이다. 이 해답 A는 이 기업에게 매출과 이윤을 창출하는 근거이자 존재 기반이다. 당연히 이 기업은 문제 A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기업에 의해 해결되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만이 유일한 해결책 A를 갖고 있기를 원한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 A가 계속해서 존재하기를 원한다.
이 기업에게, 해결책 A를 제시하는 다른 사람/기업이나 문제 A를 사라지게 하는 환경의 변화는 비타협적으로 싸워야할 대상이다. 이 기업은 변화를 원치 않는다.

한 명의 음악가가 있다. 멋진 음악을 만들었지만, 그는 이 음악을 다수의 청중에게 전달할 능력이 없다. 이것이 이 음악가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음악기업의 몫이다. CD 등의 전달매체에 음악을 담아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고, 방송을 통해 이 음악을 홍보하는 형식을 통해 음악기업은 돈을 번다. 그런데 음악기업의 이러한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없어진다면? 그리고 음악가에게 자신의 음악을 유통시키고 홍보하는 것이 더이상 '문제'가 아니된다면? 음악 유통과 홍보에서 기존 음악기업들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사라진 것이, 2008년 마돈다가 Warner Music을 떠났고 최근 락그룹 Ok Go가 EMI를 떠난 이유이다.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가 음악가들에게 훌륭한 유통과 홍보 채널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언론산업과 기업홍보/광고 영역에서 연출되고 있다. 방송과 출판 영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통 미디어 기업의 문제 해결능력이 더 이상 필요 없게되는 미디어 질서가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 이것이 전통 미디어 기업들이 새로운 미디어 질서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유다. 이것이 저작권법을 구시대적 방식으로 강화하고, 삼진아웃제 등으로 파일공유를 억제하려는 이유이다. 이것이 실명제와 명예훼손이라는 낡은 수법으로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이유이다. 수십년 간 이어져온 그들의 '비지니스 모델'을 지키기 위함이다.

소셜 미디어는 '유통'의 문제를 해결한다. 페이스북의 Fanpage, 기업 트위터, 기업 블로그 등이 기업과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만큼 기업의 기존 언론과 방송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다.

클레이 셔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새로운 미디어 질서의 결과를 예측하고 있다.
"Abundance breaks more things than scarcity does. 풍요함이 결핍보다 더 많은 것을 파괴한다."
인터넷과 웹을 통한 사회 관계망에서 절대 '다수' 사용자는 스스로 유통의 몫을 담당할 수 있다. 이들이 넘쳐날 때, '소수' 미디어 기업이 담당했던 유통의 역할은 파괴된다.

(1) 언론기업, 출판기업, 방송기업, 음악기업 등이 과거식 희소성에 근거한 비지니스 모델을 지속하고, (2) 절대 다수의 사용자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통의 몫을 담당할 때, 즉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만족될 때, 미디어 기업의 과거 비지니스 모델은 철저하게 무너질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미디어 질서가 태동하고 이 질서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교란이 일어나고 있는 과도기다. 그리고 이 과도기에 생겨난 다른 '문제'가 있다.

전통적 미디어 산업에서 내용/콘텐츠 생산은, 유통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윤전기와 배급소가 없는 신문은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유통과정에서 창출된 수익, 즉 광고수익은 생산비용을 감당했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유통과 생산이 분리된다면, 생산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 질문에 답을 찾는 자,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경제적 강자'로 군림할 것이다.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찾는 시대, 새로운 실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실험, 실험, 실험" 이것이 새로운 미디어 질서를 열망하는 이들의 크레도(cred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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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15:32 2010/03/2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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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앱스토어(App Store)는, 아이튠즈(iTunes)와 함께 21세기 디지털미디어 산업역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다. 과연 그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아이폰(iPhone)의 열품이 뒷받침되었기에 앱 스토어의 성공은 가능했을까?

한번 개발된 앱이 77개국에 배포되고-참조글 보기-, 99달러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앱 검사 및 등록비, 앱 개발자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판매가격, 판매가 중 70%가 개발자 수중에 떨어지는 상대적으로 공평한 수익분배구조 등 앱 스토어의 훌륭한 비지니스 모델이 성공 요인일까?

또는 5800만 명에 이르는 전세계 앱 사용자 규모가 앱 스토어 성공의 든든한 배경일까? 2009년 12월 기준, 3400만 명의 아이폰 사용자 숫자와 2400만 명에 이르는 아이팟 터치(iPod touch) 사용자 규모는 개발자들에게 거대한 소비자 시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료 출처 보기-.

또는 개발환경의 단순함 때문일까? 다양한 단말기 사양, 크고 작은 디스플레이 크기 등 복잡한 변형을 고려할 필요 없이,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를 대상으로 '하나의 앱'만을 만들면 끝나는 훌륭한 개발환경을 애플은 제공하고 있다.

아니면, 지난 2008년 초 애플이 앱 개발자를 위해 조성했던 100만 달러 규모의 아이펀드(iFund)가 개발자들에게 '경제적 동기와 용기'를 가져다 주었을까? -출처보기-

위에 열거한 모든 것들이 애플 앱 스토어의 성공 요인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그런데 뭔가 더 있을 것 같다. 앱 스토어의 역사적 성공을 이끌었던 기막힌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개발자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고 있는 '사용자 위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다. 글쎄...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데이타일까? 그런데 일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용자 위치정보'는, 세상의 어떤 개발자도 평생동안 단 한번도 만저보지 못했고 다뤄보지 못했던 데이타다. 이 사용자 위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개발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포스퀘어(foursquare), 고왈라(gowalla) 등은 상상력의 시작일 뿐이다.

상상해 보자. 트위터(twitter) 계정을 통해서만 온라인 뉴스사이트에 댓글을 달 수 있는 상황을! 무엇이 달라질까? '링크의 질'을 분석할 수 있게된다. 어떤 뉴스에는 서울 강남구 사용자들이 댓글을 많이 달았고, 어떤 뉴스에는 제주도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등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광고주를 보다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

아이패드용 전자책을 공급하는 업체가 사용자들에게 위치정보를 물어본다면 무슨 이유일까? 답은 맞춤형 지역광고을 가능케하기 위해서다. 학습용 전자책을 구입한 고객이 자신의 위치정보를 알려준다고 상상해 보라. 맞춤형 지역 학원광고가 그 고객에게 발송될 수 있다.

이렇게 '사용자 위치 정보'는, '링크'의 성격을 구별시켜 주는 주요 지표로 발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콘텐츠-블로그 글, 온라인 뉴스, 전자책-는 이른바 '트래픽 압박'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트래픽을 창출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의미있는 트래픽을 만드는가가 중요해질 것이다.

개발자들에게 부여된 '사용자 위치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은, 서두에서 나열한 애플 앱 스토어의 성공요인들 서로가 폭발적인 화학작용을 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끝으로, 애플의 앱스토어 그리고 아이폰은 기술발전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통찰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Saint-Exupéry)는 성공하는 기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기술은 언제나 원시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복잡한 것을 거쳐 단순한 것으로 발전하다. Technology always evolves from the primitives over the complicated to the simple."
바로 애플이 이룬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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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6 01:46 2010/03/16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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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예측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시장조사기관인 Research2Guidance에서 내놓은 세계 스마트폰 성장 예상치(!)다 (출처보기). 가히 놀라운 성장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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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할 점: 시장조사기관의 '예상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면 곤란하다. 정확한 수치로 이해하기 보다는 '경향'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다수의 조사기관에서 발표하는 예상치들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스마트폰 시장 그리고 이와 연동된 엡(App)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Gartner 시장전망에 대한 기사보기). 위의 스마트폰 시장전망에 기초한다면, 전 세계 엡 시장은 2009년 약 19억4천만 달러에서 2013년 약 156억5천만 달러로 약 80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무료 엡'의 규모까지 합산한다면, 가히 '엡 이코노미(App Economy)'가 단숨에 모든 소프트웨어 시장을 점령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Gartner는 2013년 엡 시장 규모를 300억 달러로 예측하고 있다.
과연 파죽시제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엡 시장은 모든 소프트웨어 생산기업에게 장미빛 미래를 말하는 것일까? 어떤 시장의 변화들이 예상될까?

1. 가치사슬(Value Chain) 변화 1: 소프트웨어 공급단계의 간소화
우선 기존 대형 소프트웨어 공급자 중심의 질서에 금이 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업형 소프트웨어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IBM, Oracle, Accenture 그리고 독일의 SAP은 잘개쪼개져 원자화된 엡 형식의 소프트웨어 생산에 짧지 않은 적응기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적응기 동안, 1.1 구글은 기업형 소프트웨어 시장에 대한 공세를 본격화할 것이며 (출처기사보기), 1.2. 엡 시장의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진 덕에 중소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물밀듯이 새로운 엡들을 선보일 것이다. 이러한 조정기를 겪게 되면, 소프트웨어 가치사슬에서 대형 공급자들에게 일반화되었던 오랜 기간의 기획, 개발, 검증, 기업 컨설팅 단계들이 사라지거나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위의 대형기업들은 소프트웨어 판매에서도 돈을 벌었지만, 예의 '컨설팅'으로 적지않은 돈을 벌어 왔다. '아주 작은 문제' 또는 '아주 작은 과제'를 위한 '아주 작은 프로그램'이 바로 '엡'이다. 이러한 엡을 사용하기 위한 사전 교육은 불필요하다. 따라서 복잡한 대형 소프트웨어 운영에서와 같은 '전문가 상담/컨설팅'에 대한 수요는 급감할 것이다. 이는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에게 커다란 영업손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만큼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엡 시장이 앞으로 급팽창한다면 어딘가에선 일자리가 생겨야한다. 그곳이 어딜까?

2. 가치사슬의 변화 2: 엡 홍보 및 중계업자가 개발자의 개발이익을 가져간다
분명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에서는 엡 개발자들의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겨날 것이다. 또한 매우 작은 규모의 밴처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애플 엡스토어나 구글 안드로이드 엡 마켓에서 각각 순위 100위 밖에 있는 엡이 소비자들에게 팔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현재 약 20만 또는 2만에 이르는 엡의 숫자는 스파트폰 시장의 팽창과 함께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러한 '엡의 홍수' 속에서 '엡'  개발자 또는 소규모 개발회사가 자신의의 엡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 엡을 다양한 소셜 미디어 속에서 '홍보'하거나, 별도의 엡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형태의 '엡 중계서비스' 기업들이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기업들이 엡 개발자들의 개발이익 중 많은 부분을 가져갈 것이다. 특히 무료 엡을 제공하는 개발자들에게 이들 중계자의 역할은 더욱 절실하다. 영어 무료엡을 사용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겠지만, 무료 엡의 수익원은 '광고'다. 소비자가 없는 무료 엡?  아예 무료 엡에 광고를 중계하고, 무료 엡을 다시 소비자에게 홍보하는 일 모두를 맡는 '엡 중계업자'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중계업자는 이에 상응하는 수수료를 요구할 것이다.

3. 가치사슬의 변화 3: 이동통신사업자의 역할은 축소되고
현재 휴대전화 가치사슬에서 이동통신사업자의 역할은, 언론의 역할과 유사한 이른바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다. 모바일 게임 개발기업에게 쉽지 않은 시장관문은  바로 SK와 KT다. 일단 이 관문을 통과하면 시장에서 '최소한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렇게 KT와 SK는 이른바 '가두리 양식장 Walled Garden'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작지 않은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런데 KT와 SK의 '양식장'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일시에 사라진다. 소비자들이 다른 양식장으로 이동해 버린다. 그들이 새로 찾은 양식장이 '애플 엡스토어'이고 '아드로이드 엡 마켓'이다. 특히 애플(Apple)은 이동통신사업자가 했던 주인장 역할도 떠맡으려 한다 (관련기사보기). 새로운 공룡 '게이트키퍼(Gatekeeper)'의 탄생이다.

짧게 정리하면,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관련 시장의 재편을 수반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 관련자 모두가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시장 참여자들의 '저항' 또한 예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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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10/03/12 00:59 2010/03/1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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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현실이 과할 때: 삶이 피곤타

런던에서 건축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일본인 Keiichi Matsuda의 작품이다. 그는, 증강현실이 과할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망가질 수 있을지를 아래의 두 동영상에서 표현하고 있다. 뛰어난 상상력이다.
 
먼저 증강현실이 없는 평범한 삶을 그린 동영상을 감상해 보자. 조금 지루할 수 있지만, 짧은 동영상이니 인내심을 가져보자.

그럼 위와 동일한 일상에 증강현실이 추가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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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10/03/06 00:27 2010/03/06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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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는 관계로 짧은 정리를 시도해 본다.)
(이 글의 발화점은 '와이어드Wired의 "Golden Games for Social Media"다.)

SBS가 이번 벤쿠버 올림픽 공중파 방송 중계 한국 독점권을 가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다. 1개 방송에 의한 독점적 중계를 '시청자'의 볼 권리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논의다. 그러나 '선택권' 운운해도 이러한 논의에서 '시청자'는 언제나 수동적으로 인식된다. 방송사가 전송하는 내용을 '보고 들을 수 밖에 없는' 절대 다수가 시청자(audience)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동계 올림픽은 이러한 '방송사와 시청사'의 일방적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첫번째 올림픽이 되었다. 이는 그러나 유감스럽고 슬프게도 한국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미디어 환경과 관련하여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가장 큰 특징은, 올림픽 보도에 대한 독점적 중계권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올림픽 보도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특징으로 하는 올림픽조직위원회(IOC)의 중계권 정책에 금이 갔다. 올림픽조직위원회 스스로가 '경기 참여자에 의한 보도'을 허가한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허가'한 것이 아니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경기에 참여한 운동선수들이 - 아쉽게도 대부분이 미국, 캐나나, 영국 선수 들이다 -,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유튜브로 경기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달한 것이다. 또한 경기 관객으로 참여한 다수의 블로거들에 의한 보도들도 눈에 띈다. 몇가지 예를 살펴보자.

Julia Mancuso는 트위터를 통해 '장애물 활강 스키(Giant Slalom Skiing)'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도했고, 직접 카메라로 녹화한 경기 내용을 그녀의 실망과 기쁨을 함께 담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벤쿠버 올림픽에 흠뻑 빠진 사람들의 수는 각각 14700여명과 28000여명이다.

여기 트위터로 벤쿠버 올림픽 생중계에 참여한 이들의 명단이 있다 (명단 보기).

미국 아이스하키팀 선수 Angela Ruggiero도 훌륭한 비디오케스팅을 했다 (그녀의 웹사이트 보기). 잠시 감상해 보자.

또 다른 특징은,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애플의 올림픽 앱을 허가(?)하였다는 점이다. 인기를 끌었던 애플의 앱을 내려받아 설치해 보시라 (링크는 여기). 위치정보도 훌륭하게 적용되었고 나물랄데 없는 훌륭한 엡이다. 메달을 받은 선수들의 트위터 계정도 소개되고 있다. 다음 올림픽 때는 각 경기장면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들이 경기 정보, 선수 정보, 경기장 정보 등에 담겨질 것이고, 각 경기 규칙, 경기 역사에 대한 위키피디아 정보들이 연결될 것으로 예상 또는 기대된다.

선수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팬들과 직접 대화하고, 자신들의 기쁨과 애환을 매개로 팬-페이스북 팬과 트위터 팔로워-들과 같이 감동하고 함께 비판의 날을 세운다. 이렇게 새로운 미디어 관계가 한쪽에서 꽃을 피울 때, 다른 한쪽에서는 '상업적 중계 독점권'이 하나 둘 씩 무너지고 있다.

(급하게 쓴 글, 맞춤법에 문제가 있어도 양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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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1 08:06 2010/03/01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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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뉴스) 유료화! 2010년 전 세계 언론사들을 사로잡고 있는 단어다.
“온라인 광고수입은 과거 신문산업이 누렸던 수입에 턱없이 모자란다. 보라 2008년과 2009년 경기침체에 따른 광고수입 감소를, 그리고 그에 따른 언론사들의 줄도산을! (정말?) 또한 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언론은 상업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아하?) 열심히 일한 것은 우리 언론사들이나, 그 과실을 따먹은 것은 네이버, 구글 등 검색서비스업체가 아닌가? (혹 언론사들이 인터넷 생리를 잘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사회적 공기인 언론이 위기에 빠져있다. 정부는 보조금을 통해 언론산업을 도울 것이고, 독자는 부도덕한 ‘공짜주의’를 벗어던지고 이제 그만 ‘양지’로 나오라!”

위의 논리는 언론사의 일부 주장을 지나치게 극단화한 것이다. 그들 또한 나름 자기개혁을 통해 인터넷 네트워크의 기본 원리를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신문 ‘정기구독’ 방식에 기초한 온라인 뉴스 유료화는 안타깝게도 불가능에 가깞다 (참조글 보기). 개인적으로 유료화를 반대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즈와 같은 ‘월 정액제’ 유료화 방식을 뉴스사이트에 적용하는 것은, 해당 언론사의 자유다. 그러나 그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다(참조글 보기). 이런식의 유료화는 인터넷 네트워크에서 ‘고립’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또한 네트워크에서 고립된다는 것은 소비자로 부터 잊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유료화에 대한 찬/반 논쟁보다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어떻게 유료화가 가능한지 새로운 지평에서 새롭게 논의되어야 한다.
블로그계라고 사정이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다. 민노씨(@minoci)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한국 블로그계는 기업들의 잘못된 ‘블로그 마케팅’으로 점차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블로거가 경제적 동기를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뉴스와 블로그의 경제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다만 정답을 찾기 위한 ‘실험, 실험, 실험’이 절실하다.
최근 등장하는 일렬의 ‘유료화’ 실험들 중 가장 나를 매료시키는 것이 있다. 그 이름은 플래터 (Flattr)-'펄럭이다'를 의미-다. 이 서비스를 이해하기 위해, 유사 서비스를 먼저 살펴보자.

1. 캐칭글(Kachingle): 캐칭글(Kachingle)은 온라인 뉴스 콘텐츠를 위한 이른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 시스템이다 (위키 보기). 작동원리를 위해하기 위해 아래 그림을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를 들어 한 소비자는 한달에 5천원을 뉴스 및 블로그 콘텐츠 소비에 ‘자발적’으로 지불하기로 결정한다. 캐칭글에서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자신의 컴퓨터에 설치하고, 자신이 즐겨보는 뉴스사이트와 블로그를 등록한다. 이 소프트웨어는, 소비자가 등록한 사이트 중 어느 사이트에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래 머무르는지를 계산한다. 캐칭글은 이 계산에 기초하여 5천을 해당 사이트에 배분한다. 또한 캐칭글은 이 5천원 중 20페센트를 비용/수수료로 받아간다.
이 시스템의 장점은 클레이 서키(Clay Shirky)가 이야기한 ‘정신적 거래비용 mental transaction cost’를 줄일 수 있다. 소비자는 개별 뉴스나 블로그 포스트의 ‘가치’ 또는 ‘가격’이 얼마일까 일일이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바로 개별 소비자의 이러한 ‘가치 평가’의 고민을 줄여주는 ‘지불 편의성’이 캐칭글의 장점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두개의 결정적 단점을 가지고 있다. 위의 소비자가 A라는 뉴스사이트를 방문하여 다양한 기사를 읽는다고 가정하자. 이 소비자는 어떤 기사는 유익하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다른 어떤 기사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기사 소비를 구별없이 ‘통’으로 계산할 경우, ‘지불 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단점은 바로 소비자에 대한 ‘빅 브라더(Big Brother)’다. A라는 뉴스사이트에서 ‘여배우 뒷태 사진’을 제공한다고 가정하자. 이 소비자는 이러한 낚시성 사진들을 싫어한다. 그런데 그 소비자가 ‘클릭’하는 것이 모두 ‘기록’되고 있다면? 캐칭글 모델은 바로 여기서 실패를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캐칭글 모델은 클레이 서키의 ‘정신적 거래비용 mental transaction cost’라는 디지털 미디어 경제의 중요한 요소를 처음으로 구체화했다는 성과를 가진다.

2. 팁조이(Tipjoy):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팁조이(Tipjoy)는 소비자가 유익하다고 평가하는 개별 기사/블로그 포스트에 소비자가 ‘팁(tip)’을 쉽고 편하게 줄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다. 작동방식은 다음과 같다. 기사/포스트 밑에 팁조이 버튼이 달려 있다. 이 버튼을 클릭한 이후 소비자는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한다. Tipjoy는 한 달에 한 번 이메일 주소를 집계하여 ‘계산서’를 해당 소비자에게 보낸다. 페이팔(Paypal) 형식과 유사하다. 팁조이는 자사 서비스를 ‘simple, social payments’라 홍보하고 있다. 소비자의 자발적 ‘팁=소액 기부금’을 모아, 온라인 뉴스 및 블로그 생산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가 팁조이다.
그러나 팁조이는 두가지 지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첫째, 팁조이는 뉴스사이트와 블로그에 팁조이 버튼을 다는데 집중하는 공급자 중심 정책을 전개했다. 이와 반대로 소비자의 ‘자발성’을 끌어올리는 작업에는 소홀했다. 즉 소비자에게 ‘지불동기’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둘째, ‘이메일 주소’를 매번 입력해야하는 불편함이 존재한다. 물론 소비자는 자신의 신용카드 번호를 남길 필요가 없고, 페이팔처럼 아이디(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메일주소 입력’은 매우 은밀한 소비자 정보 공개일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인지 팁조이버튼을 클릭하는 소비자들은 소수에 불과했고, Tipjoy는 서비스 시작 1년만인 2009년 여름 회사문을 닫았다 (관련기사 보기). 그러나 팁조이는, 아마존과 앱스토어처럼 ‘원클릭(One-Click)’시스템 도입과 API를 통한 원클릭 ‘집계’라는 매우 유익한 실험을 진행했다.

3. 마지막으로 지난 2010년 2월 10일 세상에 첫 모습을 선보인 플래터(Flattr): 먼저 동영상을 감상해 보자.

가정해 보자. 소비자는 한 달에 5천원을 디지털 콘텐츠에 지불하기로 결심한다. 블로그 포스트, 팟케스팅, 음악, 뉴스/기사 밑에는 이른바 Flattr 버튼이, 페이스북, 트위터, 디그(Digg) 등 다양한 소셜 북마크(social bookmarks)와 함께 나타난다. 해당 콘텐츠가 맘에 들 경우, 소비자는 플래터 버튼을 클릭한다. 클릭수는 디그(Digg)처럼 누적되어 해당 콘텐츠 밑에 보여진다. 위의 소비자가 한 달 동안 열번을 클릭했다면, 클릭한 각 콘텐츠에 5백원씩 전달된다. 백번 클릭했다면 50원씩이 전달된다. 천번 클릭했다면 5원씩 전달된다. 유익한 글에 ‘고맙다’는 댓글을 남기듯, 멋진 글을 ‘Retweet’ 하듯, 자신의 생각과 통한 유쾌한 글에 Digg 버튼을 클릭하듯, 소비자들은 글쓴이/블로거/제작자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플래터 버튼으로 전한다. 소비자 개인들의 플래터 버튼 클릭이 모여, 글쓴이/블로거/제작자에게는 재정지원이 이루어진다. 집계된 버튼 클릭수는 다른 소비자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찾을 수 있는 길잡이, 즉 필터링 기능을 수행한다. 플래터 버튼은 리트윗(Retweet) 버튼과 통합될 수도 있다. ‘원 클릭’으로 두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
플래터의 장점은, 1. 소비자의 정신적 거래비용(mental transaction cost)를 0에 가깝도록 만들수 있다. 한 달에 5천원 또는 만원을 정하는 선택과 결단은 필요하지만, 각 블로그 포스트, 음악, 뉴스를 매번 가치평가할 필요가 없다. “맘에 들어...” 그럼 클릭이다. “000 기자/블로거가 쓰는 글은 언제나 훌륭해...” 그럼 클릭이다. “나의 팔로워(follower)가 리트윗한 글, 나의 팔로워가 펄럭인-flatter- 글...” 그럼 나도 클릭하며 펄럭인다. “어머,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었어, thank you!” 클릭이다.
플래터의 또 다른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은 2. 플래터는 (간접)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한 서비스라는 점이다. 가능한 많은 수의 블로거와 뉴스사이트 등이 플래터버튼을 달아야 한다. 그리고 수십만, 수백만의 소비자들이 플래터 버튼을 클릭해야 한다. 즉 초기 자원(install base)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면, 다른 유사 서비스의 도전을 쉽게 따돌리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
분명 플래터는 온라인 콘텐츠의 경제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유료화 가능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이러한 소셜 마이크로패이먼트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특히 ‘고마움’을 표현하는데 넉넉한 한국 네트즌들이 있기에, 한국에서 플래터 유사서비스의 성공 전망은 다른 어떤 나라에서보다 높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강물을 이룬다 Many small streams will form a large river’는 말 처럼, 수많은 작은 펄럭거림을 통해 우리 소비자들과 우리 생산자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의 기초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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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6 22:25 2010/02/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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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구글 검색 서비스 등 구글에서 제공하는 많은 서비스-예: 이메일, 리더 등-를 좋아한다. 루퍼트 머독과 유럽의 언론사들이 구글을 '강도(?)'로 몰아세울 때도 구글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구글의 모습을 보면서, 대형기업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독점기업의 한계를 보는듯 하여 씁쓸하다. 그 근거를 간단히 아래에 정리해 본다. 물론 이 근거들은 정확한 분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단상'들이다.

1. 구글, 슈퍼볼 광고는 왜 했나?
올해 미국 슈퍼볼 중간광고로 제작된 구글 광고가 화제다. 광고 '내용'은 너무 멋지다 (광고보기). 이번 구글 광고는,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언어의 장벽이 중요하지 않다는 고전적 메시지와 사랑을 찾아가는 길에 구글이 함께한다는 상업적 메시지를 멋진 배경음악과 함께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나의 짧은 기억에는 순수 웹(web)기업이 슈퍼볼 광고를 경쟁적으로 내보냈던 좋지 않던 기억이 있다 - Go Daddy는 예외로 하자.
1999년과 2000년, 이른바 닷컴 거품시절 신생 닷컴 회사들이 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비싼 슈퍼볼 광고를 경쟁적으로 내보냈던 시절이었다. hotjobs.com, buy.com, pets.com, computer.com 등의 광고가 그것이다 (관련 위키정보; 관련동영상). 당시 닷컴사의 슈퍼볼 광고는 'cash burn'을 위한 대표적 수단이었다.
그렇다고 2010년 구글 광고를 낭비가 심했던 닷컴사들의 광고들과 비교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내겐 왜 구글이 이렇게 비싼 광고를 내보낼까라는 의문이 자리잡고 있다. 매우 정교한 기업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구글이 헛된 곳에 돈을 쓸리 없다는 가정 아래, 최근 구글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과 이에 대한 구글의 대응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본다.

2. 마이크로소프트 '빙 Bing'의 위협
구글은, 미국 검색시장에서 '빙'의 시장잠식을 드디어 '위협' 수준으로 평가한 것 같다. 이것이 '슈퍼볼 구글 광고'의 배경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래의 '비지니스 인사이드'의 기사를 잠시 보자.
2010년 1월 구글의 미국 검색시장 점유율은 약 65%로 정체를 보이고 있는 반면, '빙'은 성장의 탄력을 서서히 받고 있다. 빙의 성장은, 구글에게 자신들이 목슴 걸고 지켜야하는 수입원인 '검색 광고 시장'이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이다.

3. 구글의 딜레마: 독점적 지위
미국 검색시장에서 구글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는 것과 달리, 유럽 각국에서 구글은 '독점 기업'으로 자리 메김 받고 있다. 이도 구글에게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다. 아래의 도표를 보자.
위의 그림은 2008년 1월 상황이다. 2009년 여름, 독일과 프랑스에서 구글의 검색시장 점유율은 90퍼센트를 넘어섰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유럽연합 차원뿐 아니라 유럽 각국의 한국식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구글에게 검색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부여했다. 이는 구글에게 다음과 같은 제약을 낳고 있다.
3.1 구글의 모든 경제행위에 대한 체계적인 감시가 시작되었다. 특히 '검색광고' 수익 대부분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프랑스 대통령 사코지는 '구글 세(google tax)'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참조보기).

3.2. 구글을 제약하자는 경쟁기업들의 주장들이 사회적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스페인 통신사인 텔레포티카(Telefónica 위키정보)가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망 중립성(net neutrality 위키정보)'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이에 대한 정치, 사회적 지지 가능성을 염두해 두었기 때문이다 (참고보기). - 참고: 개인적으로 '망 중립성'을 지지한다.
이렇게 구글은 안으로는 '빙'의 위협과 밖으로는 '독점적 지위'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구글의 '초고속 인터넷 망' 사업을 이해할 수 있다.

4. 초고속 인터넷 망 사업
2월 10일, 초당 1 기가바이트 속도의 인터넷 망을 구글이 직접 설치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출처보기). 자신들이 직접 인터넷 망을 설치할 '수'도 있다는 전략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망 중립성'을 위협하는 시도에 가만히 앉아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계획이 구글에게 도움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인터넷 망 사업자들이 구글을 공격할 무기를 구글 스스로 제공한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5. 버즈(Buzz):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탐단다
버즈(Buzz)는, 구글이 인터넷을 사회적 공간(social space)으로 보고 있다는 점과 그러나 이 영역에서 크게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5.1. 지인들과 나누고 싶은 내용을 열린 인터넷 공간 속에 위치시키고,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찾고 조직하는 일에 버즈는 효과적일 것 같다. 특히 '링크'를 단순히 전달하는 것을 넘어, 링크와 함께 링크의 '티저teaser'를 함께 보여준다는 것은, 링크를 보다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또한 하나의 링크에 연결된 다른 링크들을 함께 보여주는 것도 훌륭한 시도다. 이렇게 인터넷과 웹에 대한 열린 자세는 애플(Apple)의 그것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데이비드 위너(David Winer)가 이야기했던 트위터 개선 희망사항(출처보기)도 많은 부분 이루어진 것 같다-물론 위너의 주장이 구글 개발팀에 전달되었을 가능성은 만무하다.

여기서 비판 몇가지.
5.2 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잘 하고있는 일들과 구글이 경쟁하려할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각 영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니 구글이 보다 훌륭한 서비스로 경쟁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일을 구글이 해야하는지는 여진히 의문으로 남는다.

5.3 왜 하필 지메일(gmail)에 버즈(buzz) 기능을 통합시켰을까? 버즈 기능을 독립적으로 가능케했다면, '버즈'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사용하기도 수월하고 지인들에게 '버즈'하자고 이야기하기도 편했을 것이다. 버즈를 위해서는 먼저 지메일 계정을 가져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가지 시사점은 있다. 이제 이메일이 순수 메일 기능만으로는 지루해 지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오랜 아웃룩(MS Outlook) 사용자다. MS의 메일 앱(App)이 딱 지루해지기 시작했을 때, 난 지메일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메일 서비스'의 발전 방향을 구글의 버즈가 제시하고 있는지 모른다.

2010년 애플과 경쟁하는 구글의 혁신이 기대되지만, 왠지 최근 구글의 기업행위들이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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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10/02/11 21:13 2010/02/1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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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얼마나 클까? 트위터에 푹빠진 우리들의 사회관계망 크기는 어떻게될까? 지구 한 편에 살고 있는 '나'와 반대 편에 살고 있는 '너'는 사회관계망 속에서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처음으로 학술적으로 답한 사람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위키정보)이다.

그의 '6단계 분리(six degrees of separation)' 가설(!)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시, 공간적으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들 사이에 있는 인간관계망 6단계를 거치며 서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이 '6단계 분리' 이론은 '작은 세상 현상(small world phenomen 또는 small world paradigm 위키정보)' 가설과도 연결된다.

영국 BBC2에서 최근 이를 42분짜리 다큐멘타리 영상으로 제작하였다. 특히 이 '작은 세상 현상' 이론이 웹/소셜 미디어에 적용될 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소상히 다루고 있다. 영어도 쉬운 편이다.
Documentary unfolding the science behind the idea of six degrees of separation. Originally thought to be an urban myth, it now appears that anyone on the planet can be connected in just a few steps of association. Six degrees of separation is also at the heart of a major scientific breakthrough; that there might be a law which nature uses to organize itself and that now promises to solve some of its deepest myst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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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10/02/10 19:29 2010/02/1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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