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이슈들
'투기자본의 규제', '자본의 국제 이동에 대한 감시 및 통제', '건물의 친환경적 개보수',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규모 투자' 등의 주장들을 최근 독일 언론들이 이구동성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지난 시절에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들이었으나, 언제나 '비현실적이다', '과거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등의 이유로 배척받아 왔다. 이러한 류의 주장을 했던 부류에는 세계화/지구화 비판단체인 아탁(Attac), 독일 좌파당, 독일 녹색당, 독일 사민당 좌파진영 등이 속한다. 그런데 2008년을 지나면서 위의 주장들을 어느새 독일 보수당인 기민당(CDU)의 주요 슬로건이 되어 버렸다. 사민당 우파진영에 속하는 독일 재무장관이 '케인즈의 귀환'을 떠들고 있을 때 사민당 좌파블럭과 독일 업종노조들은 꿀먹은 벙어리 행세를 했다.
개인적으로 사민당/좌파당보다 애정을 가지고 지난 10년간 지켜보았던 독일 녹색당은 더욱 초라하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동서냉전의 최대 갈등지역이었던 서독 땅에 핵무기 반대를 외치며 온몸으로 저항했던 그들, 구 소련과 미국의 세계 주변부 국가에 대한 무력 개입에 반대하는 정신을 당 강령에 추가했던 그들, 남녀평등을 당 조직운영의 원칙으로 만들어 냈던 그들-이와 대비해서 독일 사민당 및 좌파당은 여전히 남성주의가 강한 정당들이다-, 지난 98년 사민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하며 이후 30년이내 독일내 모든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중지/해체를 법률화했던 그들,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막대한 정부투자를 일찌감치 이뤄냈던 그들, 그들 녹생당원들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99년 나토군의 유고 공습에 찬성하는 당론이 확정되면서, 2001년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녹색당이 참여한 독일정부가 동조하면서 당내 좌파진영은 당을 떠나 뿔뿔히 흩어져 '녹색 시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재쟁에너지 산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당내 우파진영 상당수 인사들이 환경 산업으로 일자리-녹색 컨설턴트, 환경기업 이사 등-를 바꾸었고, 남겨진 일부가 앙상한 '녹색 깃발'을 외롭게 들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녹색 및 환경'은 더이상 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이 과거 간단치 않은 상황속에서 힘들게 싸워왔음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기 때문이고, 그들이 이룩한 성과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지금도 아무런 급여없이 '아탁' 회원으로 활동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여 보수진영에 빼앗긴 그들의 이슈들을 보면, 경제위기에 직면해 차별화된 주장 또는 대안을 풀어내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 그져 아쉬운 마음 뿐이다. 조금은 슬프기도 하고....
경제에 대한 보충수업이 필요하다
좀 느닷없는 이야기지만, 독일대학 경제학 흐름에서 교훈을 끌어내 볼까 한다. 80년대 말까지 베를린 자유대학 경제학부에는 약 40명이 넘는 경제학 교수들이 있었고 이들 대부분이 이른바 케인지안 또는 대안 경제학자들이었다. 현재는 교수진이 16명으로 축소되었는데 1명을 제외하면 모두 신고전학파에 분류될 수 있다. 80년대 말까지 경제학 석사 졸업생들의 취업 선호도를 보면 독일노총, 금속연맹, 그리고 중앙은행 및 재무부가 상위 그룹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학 전공자가 급감했을 뿐 아니라 취업 선호 기업군 1위는 이른바 '투자은행'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대학의 단면에는 독일 사회의 흐름이 투영된 것이다. 지난 10년간 과거의 페러다임으로 세계화/지구화를 비판하는 책들이 간간히 출판되었지만, 독일노총, 사민당, 좌파당, 녹색당 등이 개최한 수많은 학술행사들 중에서 '경제'를 주제로 한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나마 약 5년 전에 결성된 독일어권 좌파 케인지안 학회가 나름대로 조금씩 학술적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시장주의자들과 보수파들은 신고전학파에 대한 막대한 물적, 인적 지원을 하였고, 결과적으로 독일 경제학 대학들과 연구소들을 두루 자신들의 영향권아래 두고 있다. 이들 독일 신고전학파 학자들의 글들은 대부분 정교하고 세련되어 비판거리를 찾기도 쉽지 않다.
이번 경제위기가 진보진영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것이다. 한국에서 '미네르바'가 경제학 학습 열풍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는데, 독일에서도 이번 구조적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시도되고 있다. 그리고 아탁과 녹색당이 남긴 교훈도 중요하다. 이들의 역사가 '전문성'이 확보된 사회운동이 정치적 성과도 거둘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경제 전문성 확보에서 진보진영이 보수진영에 그리 뒤쳐진 것은 없어 보인다. 이번 경제위기에 대한 뚜렷한 답이 없기는 양쪽 다 매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강정수 @npoo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