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정보가 쉼없이 증가하고 있다. 정보가 늘어나는 비율 또한 기하급수적이다. 그러나 정보/콘텐츠의 증가가 항상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장마철 빗줄기처럼 쉼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개인의 정보처리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매일 매일 밀려오는 이메일, 메신저, 문자 메시지, 트윗, RSS 피드 그리고 여기에 페이스북의 업데이트 소식까지 더 하면, 각 개인은 정보의 과잉에 취해 그로기 상태에 쉽게 빠지게 된다.
이렇게 쏟아지는 정보 과잉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극복할 슬기로운 방법은 무엇일까?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상응하는 현명한 정보 소비 방식은 무엇인가? 소셜 미디어의 떠오르는 스타, 트위터는 사용자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트위터에 빠져 드는 것일까? 해야하는 것인가? 하면 좋은 것인가? 질문들이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간략한 답을 시도해 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트위터 계정을 만든지 한달이 채 못된 사람들이 많다. 영어로된 회원가입 과정을 지나면, 어렵지는 않지만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영어 단어들이 나타난다.
Tweet(트윗: 140자 메시지), Reply(리플라이: 답변), ReTweet(리트윗: 추천/전달하기), @(mention: 상대방/본인 언급), Direct Messages(DM: 비공개 개인 메시지) 등 모두 생소한 기능들이다.
그러나 트위터 각 기능에 대한 언어적인 문제는, 사실 사용 시간이 지날 수록 큰 장벽이 못된다. 오히려 트위터 초기 사용자가 대면하게 되는 도전은 다른 곳에 있다. 그 중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자.
첫 번째 고민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즉 무슨 내용으로 트윗(tweet)을 채울 것인가에 놓여 있다. 두 번째 질문은, 누구를 팔로잉(following)할 것인가, 즉 누구의 트윗을 정기구독할 것인가이다.
이 두 가지 고민에 대한 실마리는, 트위터의 '관계망'과 '대화 방식'을 이해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누구와 대화하는지 알고 난 이후에야 '할 말'-트윗(140자 메시지)-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트윗, 즉 '대화 거리'가 주어지면 이것을 시발점으로 하는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팔로잉과 팔로워라는 '관계'를 형성하는데는 거칠게 정리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열심히 트윗하는 사람들을, 가능하다면 다양한 사람들을 팔로잉-그들의 트윗을 구독하는 것-이다. 유명 정치인의 트윗, IT 분야에서 이름 꽤나 날리는 이들의 트윗, 글발 좋은 블로거들의 트윗, 현업 전문기자들의 트윗 등 구독할 트윗은 무한하다. 이를 도식화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A-1이 사용자 자신이다. A-1은 이제 막 트위터를 시작한 (실 생활) 친구들과 관계망-위의 그림에서는 A그룹-을 형성한다. A그룹에 속한 각 개인은,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들을 팔로잉한다. 구독관계-팔로잉-를 통해 다량의 정보가 A그룹에 쏟아져 들어온다. 이 넘쳐나는 정보를 소화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A 그룹 내에서는 RT(리트윗: 추천)보다는 @(맨션) 위주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즉 A 그룹의 트윗(140자 메시지)은 '사적 대화(personal communication)'가 주를 이루면서 차츰 A그룹 성원들이 늘어나게 된다. A그룹이 어떻게 진화, 발전할지는 구성원들 각자의 행위와 추가 구성원들의 관계망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에, 일반화시켜 예측할 수는 없을 듯 하다. A그룹은, 그 안에서 나름 유익한 대화들이 오가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들어온 알찬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모르는 그 누군가를 찾아 팔로잉, 팔로우 '관계'를 맺기 보다는 처음부터 다수의 (실 생활) 친구들과 사적대화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사적대화가 일어나는 곳은 '공적 영역(public space)'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싸이월드'와 비교할 때 결정적 차이점이다. 이러한 공적인 영역에서의 사적 대화가 누적되어 가다보면, 아래 그림 A, B, C처럼 나름 탄탄한 개별 그룹들이 형성되기도 한다.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각 개별 그룹의 성원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간다. 개별 그룹내에서 형성되는 이러한 신뢰관계를 이른바 '강한 연결(strong ties)'이라 칭할 수 있다.
또한 서로 다른 그룹을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들 사이에서는, 위 그림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 연결을 이른바 '약한 연결(weak ties)'이라 칭할 수 있다. 이 약한 연결을 타고, 각 집단에서 이야기되던 주제와는 다른 주제의 정보들이 흘러든다. 즉 또래 집단의 관심거리 목록에 없었던 이야기들 또는 동일 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을 담은 트윗들이 외부로 부터 들어온다. 만약 빨간 선을 통해 이 외부정보를 처음으로 받은 그룹 구성원이 이 외부정보를 '추천', 즉 RT하는 순간, 해당 그룹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이 외부정보가 매우 빠르게 유통된다. 왜? 그 동안 형성/성장한 그룹 성원들간의 신뢰도가 그룹 내 정보유통에 로케트와 같은 추진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룹 성원들은 '사적 대화'를 지속하면서도, 색다른 정보 또는 색다른 시각들을 서로 나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성원들은 각자의 사고를 살찌워 나간다. 이것이 트위터의 주요한 '매력'이다. 새로운 정보, 색다른 시각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각 개인의 사고를 살찌우는 정보와 시각이 각 개인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드러온다. 이것이 트위터가 선사하는 '매력'이다.
그럼 이제, 많은 사람을 팔로잉할 때의 문제, 즉 각 개인이 실시간(realtime)으로 수용하는 정보가 많아질 때의 문제에 대한 대응 방법을 이야기해보자.
여기서 던져야하는 핵심 질문은, 구독하는 트윗 모두를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는가이다.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사용자 각자에게 전달되는 트윗/정보는 그 사용자가 최종(!) 목적지가 아닌 트윗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들 트윗을 스쳐 보내도 된다. 트윗은 모두 읽어야 하는 중요한 '개인 이메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팸 메일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구독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클 때, 그리고 각 개인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읽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좋은 트윗을 발견하면, 이 트윗이 다른 곳으로도 흘러갈 수 있도록 'RT(리트윗: 추천/전달)'를 통해 '다리'를 놓으면 된다.
정보/트윗이 최종 목적지 없이 흘러가는 그 무엇임을 이해하는 새로운 소비습관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른바 실시간 소통(realtime communication)의 시대가 요구하는 정보 소비습관이다.
1. 네트워크에 존재하고 그곳에 흐르는 정보는, 개인에게 전달되는 (연애) 편지가 아니다. 꼼꼼히 읽을 필요 없고, 반복해서 읽으며 가슴을 설레일 필요 없다.
2. 각 개인에게 전달되는 또는 각 개인을 찾아가는 모든 정보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에 목숨 걸 이유없다.
3. 정말 중요한 정보/트윗은 여러번 반복해서 등장한다. RT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의 관계망 속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RT를 통해 트윗에 멋진 날개를 달아준다. '나' 또한 매력있는 트윗을 만날 때, RT하는 에티켓! 정보/트윗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하고, 구성원 전체를 살 찌우게 하는 RT를 잊지 말자.
4. 그래도 쉼없이 쏟아지는 많은 트윗/정보가 '그대'를 힘들게 하는가? 그럼 잠시 휴식을 취하자. 잠시 웹/네트워크에 등을 돌리자. 그리고 휴식에서 돌아왔을 때는, 정보의 흐름을 역류하여 과거의 트윗/정보를 찾아 읽는 수고를 하지말자. '오늘' '그대'에게 흐르는 정보/트윗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커넥팅=그냥 일촌간 단문 소통 / 팬=약한 연결의 강함
제 생각에 커넥팅은
싸이월드 일촌(엄밀히.. 일촌뿐 아니라 네이트온 친구까지 묶여지는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들에게 단문 메세지를 한번에 뿌릴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수준의 서비스이구요.
(강한 연결을 더 강하게..!)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새로 추가된'팬'
예전부터 글이 길다는 내/외부의 압박(?)을 생각해오던 차에 글의 부피와 관련해서 '추가'에 옮기신 말씀이 새삼스레 인상적입니다. ㅎㅎ. 트위터시대(?)에 이렇게 친절하게 풀어놓은 글, 찬찬히 생각을 하나씩 들려주는 글은 미덕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정말 트위터가 독자들의 관극틀을 적극적으로 바꾸고 있는건지 생각해보면... 저는 여전히 글의 요구에 따라 긴 글은 마땅히 더(?) 길어져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찬란하게 이룩했던 '시민 저널리즘'의 신화가 차츰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 2007년 블로그의 급속한 확산은 '1인 미디어 시대(!)'를 노래케 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아직도 외쳐 부르는 이는 없다. 북미대륙과 유럽에서 2008년 부터 본격화된 '신문의 위기'는, 한편에서는 '저널리즘의 위기'로 이해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구 권력'의 붕괴와 새로운 '언론 미디어'의 탄생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새로운 그 무언가는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블랙베리'와 '아이폰'은 '모바일 웹'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아직 아장아장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무엇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거친 물결을 건너야할지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변화가 더딘 것일까? 도대체 미디어는 어떤 변화의 과정을 지금 통과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미디어 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최근 클레이 서키(Clay Shirky)가 제시하고 있다.
클레이 서키는 지난 3월 중순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렸던 SXSW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처보기).
"Institutions will try to preserve the problem to which they are the solution. 기관/조직/기업은 자신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를 추구한다(의역)."
마치 선문답을 하는 듯한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
그 의미를 해석해 보자. 핵심은, '문제(problem)'가 없다면 '해답(solution)'도 필요없다는 점이다.
문제 A를 가진 사람이 있고, 이에 대한 해답 A를 가진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업에게 해답 A는 이른바 '비지니스 모델'이다. 이 해답 A는 이 기업에게 매출과 이윤을 창출하는 근거이자 존재 기반이다. 당연히 이 기업은 문제 A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기업에 의해 해결되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만이 유일한 해결책 A를 갖고 있기를 원한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 A가 계속해서 존재하기를 원한다.
이 기업에게, 해결책 A를 제시하는 다른 사람/기업이나 문제 A를 사라지게 하는 환경의 변화는 비타협적으로 싸워야할 대상이다. 이 기업은 변화를 원치 않는다.
한 명의 음악가가 있다. 멋진 음악을 만들었지만, 그는 이 음악을 다수의 청중에게 전달할 능력이 없다. 이것이 이 음악가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음악기업의 몫이다. CD 등의 전달매체에 음악을 담아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고, 방송을 통해 이 음악을 홍보하는 형식을 통해 음악기업은 돈을 번다. 그런데 음악기업의 이러한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없어진다면? 그리고 음악가에게 자신의 음악을 유통시키고 홍보하는 것이 더이상 '문제'가 아니된다면? 음악 유통과 홍보에서 기존 음악기업들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사라진 것이, 2008년 마돈다가 Warner Music을 떠났고 최근 락그룹 Ok Go가 EMI를 떠난 이유이다.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가 음악가들에게 훌륭한 유통과 홍보 채널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언론산업과 기업홍보/광고 영역에서 연출되고 있다. 방송과 출판 영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통 미디어 기업의 문제 해결능력이 더 이상 필요 없게되는 미디어 질서가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 이것이 전통 미디어 기업들이 새로운 미디어 질서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유다. 이것이 저작권법을 구시대적 방식으로 강화하고, 삼진아웃제 등으로 파일공유를 억제하려는 이유이다. 이것이 실명제와 명예훼손이라는 낡은 수법으로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이유이다. 수십년 간 이어져온 그들의 '비지니스 모델'을 지키기 위함이다.
소셜 미디어는 '유통'의 문제를 해결한다. 페이스북의 Fanpage, 기업 트위터, 기업 블로그 등이 기업과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만큼 기업의 기존 언론과 방송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다.
클레이 셔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새로운 미디어 질서의 결과를 예측하고 있다.
"Abundance breaks more things than scarcity does. 풍요함이 결핍보다 더 많은 것을 파괴한다."
인터넷과 웹을 통한 사회 관계망에서 절대 '다수' 사용자는 스스로 유통의 몫을 담당할 수 있다. 이들이 넘쳐날 때, '소수' 미디어 기업이 담당했던 유통의 역할은 파괴된다.
(1) 언론기업, 출판기업, 방송기업, 음악기업 등이 과거식 희소성에 근거한 비지니스 모델을 지속하고, (2) 절대 다수의 사용자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통의 몫을 담당할 때, 즉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만족될 때, 미디어 기업의 과거 비지니스 모델은 철저하게 무너질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미디어 질서가 태동하고 이 질서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교란이 일어나고 있는 과도기다. 그리고 이 과도기에 생겨난 다른 '문제'가 있다.
전통적 미디어 산업에서 내용/콘텐츠 생산은, 유통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윤전기와 배급소가 없는 신문은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유통과정에서 창출된 수익, 즉 광고수익은 생산비용을 감당했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유통과 생산이 분리된다면, 생산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 질문에 답을 찾는 자,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경제적 강자'로 군림할 것이다.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찾는 시대, 새로운 실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실험, 실험, 실험" 이것이 새로운 미디어 질서를 열망하는 이들의 크레도(credo)다.
이야기가 '개인들(?)의 유통'에만 집중되어 그 유통채널에서 소화해야할 '상품성있는 콘텐츠'의 거의 대부분이 전통적 미디어 "산업"에 의해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는 점이 너무 가벼이 다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흔히 말하는 주식시장의 개미투자자들처럼 새로운 미디어환경의 개미유통자들도 결국은 '전통적 미디어 산업'이 창출해내는 콘텐츠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존하기 힘들다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닐런지요.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서 '전통적 미디어 산업'의 대체재인 듯 너무도 쉽게 말해지는 (실체가 불투명한) 일군의 뉴미디어 제군들은 본질적으로 '기존 미디어'의 콘텐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일종의 '기생산업'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전통적 미디어 산업은 '콘텐츠의 유통수익'으로 생산비용을 확보한다기보다는 '콘텐츠 자체의 가치를 판매함으로써 생산비용을 조달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건 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통의 지배력이 약화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생존전략의 일환이 되겠습니다만.
그런 점에서 기술발전에 따라 혹은 새로운 마케팅 시도에 따라 우후죽순 나타났다 사그라드는 뉴미디어 유통채널들이 과연 기존 산업의 총체적 '대체재'가 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물론 콘텐츠의 직접 생산자가 아닌 유통업자들에겐 심각한 도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기존 미디어산업'이 사양산업화되어가는 추세라는 건 분명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뚜렷이 대두되는 대체재가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 같아 저 또한 앞이 갑갑하네요. ㅠ.ㅠ
몸으로 부딪히며 느낀 현장의 단상일 뿐인지라 제 생각이 짧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최근의 미디어 변화에 대한 글을 읽을 때 마다 드는 느낌이지만 대부분의 글들이 '기술결정론'적인 시각, 또는 그에서 비롯된 낙관론을 깔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행동 패턴이나 사회제도에 변화를 가져오며 최근의 디지털 미디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이런 변화가 기존의 것을 깡그리 무너뜨리고 새로운 거탑을 세울 지는 의문입니다. 기존의 제도 역시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지고 유지되어 온 것입니다.
저 역시 기존 미디어 제도의 나태와 오만, 독선, 역기능에 질려하는 사람의 하나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주류 미디어에 대한 원망, 질시, 의도적 무시 등의 주관을 담아 쓰는 이른바 뉴미디어 프런티어의 글을 읽는 것도 썩 시원한 느낌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변해야 한다는 당위만 소리높여 외치고 패치한 정보들을 소개하며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보이려 하기 때문이지요.
저널리즘은 사람들끼리 알리고 정보를 공유하고 하는 것과 또 다른 사회적 기능과 특징을 가진 제도 입니다. 그 것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개인적 의견과 신변잡기를 공유하거나, 블로거로 나름 전문성 있는 얘기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것 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이 상황에서 어떤 비지니스 모델이 되어야 하는 지는 전세계적으로 아무도 답을 못내고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얘기만 무성하지요...
허접한 의견이지만 글 잘 읽은 값으로 쳐 주셨으면 감사 하겠습니다.
애플의 앱스토어(App Store)는, 아이튠즈(iTunes)와 함께 21세기 디지털미디어 산업역사에 길이 남을 역작이다. 과연 그 성공의 비결은 무엇일까?
아이폰(iPhone)의 열품이 뒷받침되었기에 앱 스토어의 성공은 가능했을까?
한번 개발된 앱이 77개국에 배포되고-참조글 보기-, 99달러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앱 검사 및 등록비, 앱 개발자가 직접 결정할 수 있는 판매가격, 판매가 중 70%가 개발자 수중에 떨어지는 상대적으로 공평한 수익분배구조 등 앱 스토어의 훌륭한 비지니스 모델이 성공 요인일까?
또는 5800만 명에 이르는 전세계 앱 사용자 규모가 앱 스토어 성공의 든든한 배경일까? 2009년 12월 기준, 3400만 명의 아이폰 사용자 숫자와 2400만 명에 이르는 아이팟 터치(iPod touch) 사용자 규모는 개발자들에게 거대한 소비자 시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료 출처 보기-.
또는 개발환경의 단순함 때문일까? 다양한 단말기 사양, 크고 작은 디스플레이 크기 등 복잡한 변형을 고려할 필요 없이,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를 대상으로 '하나의 앱'만을 만들면 끝나는 훌륭한 개발환경을 애플은 제공하고 있다.
아니면, 지난 2008년 초 애플이 앱 개발자를 위해 조성했던 100만 달러 규모의 아이펀드(iFund)가 개발자들에게 '경제적 동기와 용기'를 가져다 주었을까? -출처보기-
위에 열거한 모든 것들이 애플 앱 스토어의 성공 요인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그런데 뭔가 더 있을 것 같다. 앱 스토어의 역사적 성공을 이끌었던 기막힌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개발자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하고 있는 '사용자 위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다. 글쎄...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데이타일까? 그런데 일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용자 위치정보'는, 세상의 어떤 개발자도 평생동안 단 한번도 만저보지 못했고 다뤄보지 못했던 데이타다. 이 사용자 위치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개발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포스퀘어(foursquare), 고왈라(gowalla) 등은 상상력의 시작일 뿐이다.
상상해 보자. 트위터(twitter) 계정을 통해서만 온라인 뉴스사이트에 댓글을 달 수 있는 상황을! 무엇이 달라질까? '링크의 질'을 분석할 수 있게된다. 어떤 뉴스에는 서울 강남구 사용자들이 댓글을 많이 달았고, 어떤 뉴스에는 제주도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등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광고주를 보다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
아이패드용 전자책을 공급하는 업체가 사용자들에게 위치정보를 물어본다면 무슨 이유일까? 답은 맞춤형 지역광고을 가능케하기 위해서다. 학습용 전자책을 구입한 고객이 자신의 위치정보를 알려준다고 상상해 보라. 맞춤형 지역 학원광고가 그 고객에게 발송될 수 있다.
이렇게 '사용자 위치 정보'는, '링크'의 성격을 구별시켜 주는 주요 지표로 발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콘텐츠-블로그 글, 온라인 뉴스, 전자책-는 이른바 '트래픽 압박'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트래픽을 창출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의미있는 트래픽을 만드는가가 중요해질 것이다.
개발자들에게 부여된 '사용자 위치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은, 서두에서 나열한 애플 앱 스토어의 성공요인들 서로가 폭발적인 화학작용을 할 수 있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끝으로, 애플의 앱스토어 그리고 아이폰은 기술발전에 대한 '생텍쥐페리'의 통찰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어린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Saint-Exupéry)는 성공하는 기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기술은 언제나 원시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복잡한 것을 거쳐 단순한 것으로 발전하다. Technology always evolves from the primitives over the complicated to the simple."
Tracked from 시답잖은 지식과 개똥철학 2010/03/16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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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oid Developer Challenge 1차전이 끝나고 상위 50개 응용프로그램이 25,000달러 (약 23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되었다. 총 지원 응용프로그램수는 1,788개로 Acceptance ratio는 2.8%에 불과했다. (약 36:1의 경쟁률) ABC 순으로 올라온 50개의 프로그램과 간략한 설명 http://code.google.com/android/images/adc1r1_deck.pdf 에서 얻을 수 있다. 간단하게 설..
먼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예측치를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시장조사기관인 Research2Guidance에서 내놓은 세계 스마트폰 성장 예상치(!)다 (출처보기). 가히 놀라운 성장세다.
주의할 점: 시장조사기관의 '예상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면 곤란하다. 정확한 수치로 이해하기 보다는 '경향'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다수의 조사기관에서 발표하는 예상치들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스마트폰 시장 그리고 이와 연동된 엡(App)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어 보인다 (Gartner 시장전망에 대한 기사보기). 위의 스마트폰 시장전망에 기초한다면, 전 세계 엡 시장은 2009년 약 19억4천만 달러에서 2013년 약 156억5천만 달러로 약 80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무료 엡'의 규모까지 합산한다면, 가히 '엡 이코노미(App Economy)'가 단숨에 모든 소프트웨어 시장을 점령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Gartner는 2013년 엡 시장 규모를 300억 달러로 예측하고 있다.
과연 파죽시제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엡 시장은 모든 소프트웨어 생산기업에게 장미빛 미래를 말하는 것일까? 어떤 시장의 변화들이 예상될까?
1. 가치사슬(Value Chain) 변화 1: 소프트웨어 공급단계의 간소화
우선 기존 대형 소프트웨어 공급자 중심의 질서에 금이 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업형 소프트웨어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IBM, Oracle, Accenture 그리고 독일의 SAP은 잘개쪼개져 원자화된 엡 형식의 소프트웨어 생산에 짧지 않은 적응기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적응기 동안, 1.1 구글은 기업형 소프트웨어 시장에 대한 공세를 본격화할 것이며 (출처기사보기), 1.2. 엡 시장의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진 덕에 중소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물밀듯이 새로운 엡들을 선보일 것이다. 이러한 조정기를 겪게 되면, 소프트웨어 가치사슬에서 대형 공급자들에게 일반화되었던 오랜 기간의 기획, 개발, 검증, 기업 컨설팅 단계들이 사라지거나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위의 대형기업들은 소프트웨어 판매에서도 돈을 벌었지만, 예의 '컨설팅'으로 적지않은 돈을 벌어 왔다. '아주 작은 문제' 또는 '아주 작은 과제'를 위한 '아주 작은 프로그램'이 바로 '엡'이다. 이러한 엡을 사용하기 위한 사전 교육은 불필요하다. 따라서 복잡한 대형 소프트웨어 운영에서와 같은 '전문가 상담/컨설팅'에 대한 수요는 급감할 것이다. 이는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에게 커다란 영업손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만큼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엡 시장이 앞으로 급팽창한다면 어딘가에선 일자리가 생겨야한다. 그곳이 어딜까?
2. 가치사슬의 변화 2: 엡 홍보 및 중계업자가 개발자의 개발이익을 가져간다
분명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에서는 엡 개발자들의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겨날 것이다. 또한 매우 작은 규모의 밴처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애플 엡스토어나 구글 안드로이드 엡 마켓에서 각각 순위 100위 밖에 있는 엡이 소비자들에게 팔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현재 약 20만 또는 2만에 이르는 엡의 숫자는 스파트폰 시장의 팽창과 함께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러한 '엡의 홍수' 속에서 '엡' 개발자 또는 소규모 개발회사가 자신의의 엡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 엡을 다양한 소셜 미디어 속에서 '홍보'하거나, 별도의 엡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형태의 '엡 중계서비스' 기업들이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기업들이 엡 개발자들의 개발이익 중 많은 부분을 가져갈 것이다. 특히 무료 엡을 제공하는 개발자들에게 이들 중계자의 역할은 더욱 절실하다. 영어 무료엡을 사용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겠지만, 무료 엡의 수익원은 '광고'다. 소비자가 없는 무료 엡? 아예 무료 엡에 광고를 중계하고, 무료 엡을 다시 소비자에게 홍보하는 일 모두를 맡는 '엡 중계업자'가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중계업자는 이에 상응하는 수수료를 요구할 것이다.
3. 가치사슬의 변화 3: 이동통신사업자의 역할은 축소되고
현재 휴대전화 가치사슬에서 이동통신사업자의 역할은, 언론의 역할과 유사한 이른바 '게이트키핑(Gatekeeping)'이다. 모바일 게임 개발기업에게 쉽지 않은 시장관문은 바로 SK와 KT다. 일단 이 관문을 통과하면 시장에서 '최소한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다. 이렇게 KT와 SK는 이른바 '가두리 양식장 Walled Garden'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작지 않은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런데 KT와 SK의 '양식장'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일시에 사라진다. 소비자들이 다른 양식장으로 이동해 버린다. 그들이 새로 찾은 양식장이 '애플 엡스토어'이고 '아드로이드 엡 마켓'이다. 특히 애플(Apple)은 이동통신사업자가 했던 주인장 역할도 떠맡으려 한다 (관련기사보기). 새로운 공룡 '게이트키퍼(Gatekeeper)'의 탄생이다.
짧게 정리하면,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관련 시장의 재편을 수반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 관련자 모두가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시장 참여자들의 '저항' 또한 예견된다.
저는 2번에서 말씀하신 것 중 추가적으로 SNS가 결합된 커뮤니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시장 형성 시 가장 많은 영향과 가장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킬 수 있는 것은 트위터와 같은 SNS이면서 전문커뮤니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좋은 글 자주 써주셔서 좋은데 한동안 바쁘시다고 하시니 아쉽네요 ㅠㅠ
영화 '페이퍼(The Paper, 1994년 작)'에 나오는 기자 '헨리'는 현직 기자 뿐 아니라 많은 기자 지망생들에게 영원한 로망이다. 잘못된 정보를 담은 신문을 인쇄하려는 언론사 사장의 의지에 맞서 주인공 헨리는, "윤전기를 멈춰라 Stop the presses!"라고 외치며 독자들에게 진실을 전달하려는 기자의 사명의식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웅변한다. 이 영화를 본 청소년 또는 대학생이 정의감에 불타 장래희망으로 기자를 꿈꾸는 것은 이 영화가 사회에 주는 멋진 선물이다. 때문에 영화 '페이퍼'는 대학 교양수업이나 신방과 수업에서 단골 리포트 소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 '페이퍼'는, 진실을 전달하려는 모범적인 기자상을 전달할 뿐 아니라, 신문의 전통적 생산방식이 어떠한지를 관객 모두에게 각인시킨다. '사건'에 대한 취재, 주어진 정보에 대한 의심과 검증 등을 통과한 '이야기(Story)'는 기자의 손을 타고 흘러내려 컴퓨터 자판에 전달된다. 컴퓨터 망을 통해 교정과 편집에 넘겨진 '기사'는, 편집장의 오케이 사인을 받은 이후 윤전기 앞에서 세상으로 나가는 최종 허가를 기다린다. '인쇄' 버튼이 눌려지는 순간, 기나긴 제작과정을 거친 기사는 종이위의 잉크로 변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신문'이 된다. 인쇄는 이렇게 신문이라는 결과물(product)을 낳는다. 한편 신문인쇄는 기사에 보도된 사건에 진실이라는 가치를 부여하고, 윤전기의 작동은 거친 일과에 지친 기자에게 잠시나마 휴식을 선사한다.
그런데 영화 '페이퍼'가 2010년 다시 만들어진다면 어떤 스토리를 가질 수 있을까? 여전히 '인쇄'를 필요로 하는 신문이 존재하지만, 이와 함께 '웹(web)'을 통한 기사소비가 지난 15년간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또한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무선 웹'을 통한 기사소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독일의 한 시장조사기관(GfK)의 2009년 12월 통계에 따르면, 아이폰 보급이 2년이 넘어선 독일에서는 아이폰, 블랙베리 또는 아드로이드폰 등 '무선 웹'을 통한 뉴스소비의 양이 '개인용 컴퓨터(PC)'를 통한 뉴스소비의 양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언론 환경변화는, 기사의 제작과정과 소비과정에 대해 끝없이 이어지는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한번 보도된 기사의 수정은 불가능할까? 윤전기를 멈추게 하지 않더라도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제한된 지면'을 넘어 독자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진실을 전달할 방법은 무엇일까? 기사를 만들기 위한 취재노트나 동영상 녹취기록을 독자들에게 전달할 방법은 어떨까? 혹 이러한 방법은, 사건의 실체에 대한 접근보다는 정보의 범람으로 독자들에게 혼란만 일으키지 않을까? 현재 기자의 글쓰기는, 마감시간과 한정된 지면이라는 '인쇄를 통한 제작방식'에 지나치게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댓글을 남기는 것 이외에 웹(web)은 독자들의 뉴스소비형태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2010년 한국은,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포탈을 통한 뉴스소비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선정적인 기사제목들이 경쟁하는 포탈 뉴스사이트가 뉴스유통 및 뉴스소비의 피할 수 없는 미래일까? 모바일 웹은 뉴스소비형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애플의 '아이패드'을 통해 진정 포탈에 빼앗긴 독자들을 각 언론사의 뉴스사이트로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언론 제작방식 및 제작문화의 변화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해외 언론사들과 기자들의 크고 작은 노력들이 최근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인쇄를 정점으로 하는 뉴스 제작과정의 변화다. 다른 하나는 이른바 '독자 융합(convergence with readers)'으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독자와 기자 또는 독자와 뉴스의 새로운 관계 맺기 시도들이다.
먼저 제작과정의 변화를 살펴보자. 2008년 7월 4일 유럽 최대 언론기업인 악셀-쉬프링어(Axel-Springer)의 최고경영자(CEO) '되프너(Döpfner)'가 유튜브(YouTube)에 등장했다. 그는 동영상을 통해 만여 명에 이르는 자사 직원들의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폰을 애플의 그것으로 모두 교체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자사 직원들을 향한 '사내 방송' 성격의 소식을 공개적으로 유튜브에 올린 것이다. 이러한 방식과 규모로 애플 컴퓨터와 아이폰을 도입하는 것은 세계 어느 기업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악셀-쉬프링어 직원 및 기자들에게 최고경영자의 공개적인 메시지는 제작 장비 교체를 넘어서는 의미로 받아졌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되프너 최고경영자는, 애플 컴퓨터와 휴대폰의 장점을 "보는 것이 이해하는 것(What to see is what to get)"이라고 설명하면서 이 장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이번 결정이, 사실상 '제작과정'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며 이는 단순한 "기술변화가 아니라 문화의 변화"임을 강조하고 있다. 악셀-쉬프링어가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로운 언론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는 블로그와 방송을 통해 빠르게 외부로 알려졌다. 이렇게 이 동영상은 효과적인 기업홍보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 동영상이 공개된 2008년 여름 이후 악셀-쉬프링어 소속 언론사들에서는 예상 밖의 커다란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편집국 기자를 제외하고 모든 기자에게 자사 '신문'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신문접근 제한 조치는, 기자들이 자신이 쓴 기사를 웹을 통해서 확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기자들이 '마감시간'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벗어나게 돕고 있다. 한편, 신문지면 구성에 대한 편집국 회의는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외부로 전달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면의 빈 공간을 채울 몇 가지 기사들이 후보군에 있다. 독자들에게 어떤 사건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할까 고심하는 편집진들의 모습이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외부로 흘러나간다.
또 다른 변화는, 초소형 동영상 녹화기와 아이폰을 통한 이른바 '모바일 저널리즘'의 시작이다. 2009년 하반기부터 악셀-쉬프링어 소속 일간지 '빌트(Bild)', '벨트(Die Welt)' 등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초소형 동영상 녹화기인 플립(Flip)과 동일한 기능의 녹화기를 중국에서 자체 주문·제작하여 모든 기자들과 시민기자들에게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기자가 취재 중에 만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관련사건 기사에 추가된다. 쟁점 사안에 대한 '찬반'의 목소리가 동영상 형식으로 댓글처럼 달리기 시작하고, 각 동영상은 '링크'와 '임베드' 기능을 통해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과 서로 연결된다. 이러한 악셀-쉬프링어가 진행하고 있는 언론 제작방식 및 제작문화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을지 쉽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는 1만 여명의 직원을 가진 한 거대 언론기업의 더 이상 과거로 되돌릴 수 없는 자기혁신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악셀-쉬프링어와 유사한 언론 제작방식 혁신실험은, 최근 미국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다양한 '하이퍼로컬 뉴스(hyperlocal news)' 프로젝트들에서 찾을 수 있다. '엘에이 타임즈(L. A. Times)'와 '유에스 로컬 네트워크(U.S. Local Network)'는 지난 1월 지역뉴스, 지역 블로그, 지역광고 그리고 모바일 위치기반 서비스를 연결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또한 뉴욕시대학교 언론대학원(City University of New York's Graduate School of Journalism) 학생들과 함께 "The Local"이라는 유사한 서비스의 닻을 올렸다. 나아가 뉴욕 타임즈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모바일 위치기반 서비스인 '포스퀘어(Foursquare)'와 공식협력을 시작하면서 지역의 독자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언론모델들을 실험하고 있다.
'하이퍼로컬 뉴스'는, 지역 주민, 지역 뉴스 그리고 지역 광고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 뿐 아니라, 동일 사건 또는 동일 지역에 시간의 차이를 두면서 끊임없이 추가되는 정보들을 '하나'의 뉴스단위로 종합하는 방식을 통해 뉴스 제작방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독자 네트워크와 뉴스의 융합
윤전기를 통과한 신문은 정보와 기자 그리고 독자로 양분된 세계를 이어주는 훌륭한 소통의 끈이다. 수많은 사건과 정보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지면에 멋지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독자는 이를 통해 '어제'의 세계를 보다 깊고 폭넓게 이해하며 오늘을 살아간다. 이렇게 신문은 그 나름의 독특한 제작방식과 이에 기초한 독자와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웹(web)'은, 신문 제작 및 소비문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뉴스와 독자의 새로운 관계를 강제하고 있다. 독자들은 서로 다른 뉴스사이트의 기사들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주소창에 뉴스사이트 주소를 입력하고 마우스를 클릭하는 등 나름 수고를 들여야 하는 '기사 비교'를 손쉽게 해 준 것은 포탈의 뉴스서비스다. 한편 독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댓글이라는 형식으로 관련 기사에 첨가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기사와 독자 사이의 대화가, 하나의 기사를 매개로 독자와 독자 사이의 대화로 발전한다. 동감을 주는 댓글에 환호하고, 반감을 주는 댓글에 으르렁거린다. 이렇게 같이 기뻐하고 서로 싸우면서 독자들은 어느새 그들 스스로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뉴욕 타임즈'의 뉴스를 함께 즐기는 '팬(fan)'들이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지난 여름 '가디언(Guardian)'에서 이란 대통령선거 보도를 보며 댓글을 통해 울분을 함께하던 독자들은 페이스북에 '자유 이란 free iran'이라는 또 다른 '팬 클럽'을 탄생시킨다. 이 곳에는 다양한 출처의 이란 관련 뉴스들이 모이고 회원들의 토론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트위터(twitter)의 지인들(following)이 추천하는(retweet) 기사들만 읽어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읽을거리는 넘쳐난다. 아이폰으로 대변되는 스마트폰은, 이러한 독자들의 '네트워크 중심' 뉴스소비형태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Forrester)에 따르면, 미국 성인 남녀 중 약 16퍼센트가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소비를 하고 있다. 애플 앱스토어(AppStore)에 경쟁적으로 뉴스사이트 앱들이 제공되고 인기를 끌고 있지만,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모바일 앱을 거친 뉴스소비를 따라잡고 있지는 못하다. 이러한 뉴스사이트 외부에 형성되는 다양한 '독자 네트워크'에 다가가는 전략을 훌륭하게 전개하는 곳은 뉴욕 타임즈다. 뉴욕 타임즈는, 페이스북에서 약 54만 명의 팬들과 함께 자사의 뉴스를 매개로 대화하고 있으며, 트위터에서 약 240만 명의 독자(followers)들과 연결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뉴욕 타임즈와 포스퀘어(Foursquare)의 협력은, 모바일 위치기반 서비스에도 새로운 독자 네트워크를 형성하겠다는 뉴욕 타임즈의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바일 중심 Mobile First
지난 2월 18일 끝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0'에서 구글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가 던진 올해의 화두는 "모바일 중심(Mobile First)"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발머가 자사의 새로운 모바일 운영체계인 '윈도폰7'로 세계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면, "개인용 컴퓨터(PC)시대가 끝나고, 모바일 시대가 왔다"는 구글 슈미트의 선언은 새로운 인터넷 환경에서 생존 및 발전전략을 고민하는 세계 언론기업들을 향한 뜻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매년 30퍼센트씩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스마트폰 시장의 확대는 모바일 웹 소비의 폭발적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슈미트 구글 최고경영자도 "정확히 3년 이후에는 개인용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이 더욱 많이 팔릴 것이다. 또한 개인용 컴퓨터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 보다 스마트폰을 통해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다"라는 말을 통해 구글의 기업환경 변화를 진단했다. 때문에 "구글의 모든 프로그래머들은 앞으로 모바일 서비스 개발에 우선권을 둘 것이다"로 구글의 새로운 기업전략을 예고했다. 구글의 모바일 중심 기업전략, 세계 모든 언론기업들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의 언론환경이 신문에서 웹으로 빠르게 변화했다면, 앞으로의 10년 또한 이에 못지않은 속도와 규모의 변화가 언론기업과 기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 사이트라 그 내용이 한 눈에 쉽게 들어오지 않지만, 첫 느낌에 뭔가 멋져보이는 사이트다. 위의 질문에 답을 하자면, 이 사이트의 종류는 기업 홈페이지다. '뤼뷔통'으로 유명한 LVMH가 운영하는 사이트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기업홍보를 위해 독립(?!) 저널리즘 팀에 의해 운영되는 새로운 개념의 기업 홈페이지다. '내용'을 중심으로 그리고 기업 경영진의 영향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된 제작팀에서 기업홈페이지를 운영한다고 한다. 기업 홈페이지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다.
지금까지 기업 홈페이지는 대체적으로 기업소개, 상품정보 등 매우 정적인 정보를 담아왔다. 그리고 기업소개에 반드시 들어가는 것이 있다. 바로 '사장님 인사말'이다.
웹 에이전시에서 제작된 다수의 '시안'을 보면서, "음, 이것이 맘에 드는 군..." 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마케팅 담당 팀장의 몫이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그의 몫이 아니다. 그는 이 시안들을 '사장님'께 들고 간다.
"어떠십니까? 사장님",
"음, 우리-!? 사장인 나도!-도 이제 훌륭한 홈페이지를 가지게 되었군",
"야, 내 사진이 참 멋있게 나왔는 걸~"
허리를 곧추 세운 부하 직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회사의 홈페이지가 결정된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직원 어느 누구도 "회사 홈페이지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아주~ 가끔 '업데이트'될 뿐이다.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매우 저조한 '방문자 수' 통계를 기록한다. 없어서는 안되지만 있어도 큰 의미없는 사이트가 지금까지 기업 홈페이지였다.
그런데 소셜 미디어가 웹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면서, 기업 마케팅 담당자들이 자문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상품, 기업의 소비자 정책 등에 대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기업 홈페이지 '밖'-블로그, 게시판, 트위터 등-에서 이야기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손님은 왕이라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이러한 고민들이 이어지면서 최근 북미 및 유럽 기업들이 이른바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 중 새로운 시도는, 기업 홈페이지를 개편하여, 소비자들이 이야기할 '거리'를 꾸준히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웹 에지전시가 아닌 전문 내용생산팀을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내용생산에는 블로거나 저널리스트들이 참여하고, 회사나 제품 '찬양' 일색이 아닌 간접적으로 연관된 내용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아래에 소개된 코카콜라의 계획을 잠시 살펴보자.
SBS가 이번 벤쿠버 올림픽 공중파 방송 중계 한국 독점권을 가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다. 1개 방송에 의한 독점적 중계를 '시청자'의 볼 권리 입장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논의다. 그러나 '선택권' 운운해도 이러한 논의에서 '시청자'는 언제나 수동적으로 인식된다. 방송사가 전송하는 내용을 '보고 들을 수 밖에 없는' 절대 다수가 시청자(audience)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동계 올림픽은 이러한 '방송사와 시청사'의 일방적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첫번째 올림픽이 되었다. 이는 그러나 유감스럽고 슬프게도 한국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올림픽 미디어 환경과 관련하여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가장 큰 특징은, 올림픽 보도에 대한 독점적 중계권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올림픽 보도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특징으로 하는 올림픽조직위원회(IOC)의 중계권 정책에 금이 갔다. 올림픽조직위원회 스스로가 '경기 참여자에 의한 보도'을 허가한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허가'한 것이 아니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경기에 참여한 운동선수들이 - 아쉽게도 대부분이 미국, 캐나나, 영국 선수 들이다 -, 트위터로, 페이스북으로, 유튜브로 경기 현장을 실시간으로 전달한 것이다. 또한 경기 관객으로 참여한 다수의 블로거들에 의한 보도들도 눈에 띈다. 몇가지 예를 살펴보자.
미국 아이스하키팀 선수 Angela Ruggiero도 훌륭한 비디오케스팅을 했다 (그녀의 웹사이트 보기). 잠시 감상해 보자.
또 다른 특징은,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애플의 올림픽 앱을 허가(?)하였다는 점이다. 인기를 끌었던 애플의 앱을 내려받아 설치해 보시라 (링크는 여기). 위치정보도 훌륭하게 적용되었고 나물랄데 없는 훌륭한 엡이다. 메달을 받은 선수들의 트위터 계정도 소개되고 있다. 다음 올림픽 때는 각 경기장면을 담은 유튜브 동영상들이 경기 정보, 선수 정보, 경기장 정보 등에 담겨질 것이고, 각 경기 규칙, 경기 역사에 대한 위키피디아 정보들이 연결될 것으로 예상 또는 기대된다.
선수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팬들과 직접 대화하고, 자신들의 기쁨과 애환을 매개로 팬-페이스북 팬과 트위터 팔로워-들과 같이 감동하고 함께 비판의 날을 세운다. 이렇게 새로운 미디어 관계가 한쪽에서 꽃을 피울 때, 다른 한쪽에서는 '상업적 중계 독점권'이 하나 둘 씩 무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