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정보가 쉼없이 증가하고 있다. 정보가 늘어나는 비율 또한 기하급수적이다. 그러나 정보/콘텐츠의 증가가 항상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장마철 빗줄기처럼 쉼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개인의 정보처리 능력의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매일 매일 밀려오는 이메일, 메신저, 문자 메시지, 트윗, RSS 피드 그리고 여기에 페이스북의 업데이트 소식까지 더 하면, 각 개인은 정보의 과잉에 취해 그로기 상태에 쉽게 빠지게 된다.

이렇게 쏟아지는 정보 과잉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를 극복할 슬기로운 방법은 무엇일까?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상응하는 현명한 정보 소비 방식은 무엇인가? 소셜 미디어의 떠오르는 스타, 트위터는 사용자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왜 사람들은 트위터에 빠져 드는 것일까? 해야하는 것인가? 하면 좋은 것인가? 질문들이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간략한 답을 시도해 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트위터 계정을 만든지 한달이 채 못된 사람들이 많다. 영어로된 회원가입 과정을 지나면, 어렵지는 않지만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영어 단어들이 나타난다.
Tweet(트윗: 140자 메시지), Reply(리플라이: 답변), ReTweet(리트윗: 추천/전달하기), @(mention: 상대방/본인 언급), Direct Messages(DM: 비공개 개인 메시지) 등 모두 생소한 기능들이다.

그러나 트위터 각 기능에 대한 언어적인 문제는, 사실 사용 시간이 지날 수록 큰 장벽이 못된다. 오히려 트위터 초기 사용자가 대면하게 되는 도전은 다른 곳에 있다. 그 중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자.

첫 번째 고민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즉 무슨 내용으로 트윗(tweet)을 채울 것인가에 놓여 있다. 두 번째 질문은, 누구를 팔로잉(following)할 것인가, 즉 누구의 트윗을 정기구독할 것인가이다.

이 두 가지 고민에 대한 실마리는, 트위터의 '관계망'과 '대화 방식'을 이해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누구와 대화하는지 알고 난 이후에야 '할 말'-트윗(140자 메시지)-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트윗, 즉 '대화 거리'가 주어지면 이것을 시발점으로 하는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트위터에서 팔로잉과 팔로워라는 '관계'를 형성하는데는 거칠게 정리하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열심히 트윗하는 사람들을, 가능하다면 다양한 사람들을 팔로잉-그들의 트윗을 구독하는 것-이다. 유명 정치인의 트윗, IT 분야에서 이름 꽤나 날리는 이들의 트윗, 글발 좋은 블로거들의 트윗, 현업 전문기자들의 트윗 등 구독할 트윗은 무한하다. 이를 도식화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출처: @npool>

A-1이 사용자 자신이다. A-1은 이제 막 트위터를 시작한 (실 생활) 친구들과 관계망-위의 그림에서는 A그룹-을 형성한다. A그룹에 속한 각 개인은,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들을 팔로잉한다. 구독관계-팔로잉-를 통해 다량의 정보가 A그룹에 쏟아져 들어온다. 이 넘쳐나는 정보를 소화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A 그룹 내에서는 RT(리트윗: 추천)보다는 @(맨션) 위주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즉 A 그룹의 트윗(140자 메시지)은 '사적 대화(personal communication)'가 주를 이루면서 차츰 A그룹 성원들이 늘어나게 된다. A그룹이 어떻게 진화, 발전할지는 구성원들 각자의 행위와 추가 구성원들의 관계망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에, 일반화시켜 예측할 수는 없을 듯 하다. A그룹은, 그 안에서 나름 유익한 대화들이 오가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들어온 알찬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다.
 
두 번째 방법은, 모르는 그 누군가를 찾아 팔로잉, 팔로우 '관계'를 맺기 보다는 처음부터 다수의 (실 생활) 친구들과 사적대화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사적대화가 일어나는 곳은 '공적 영역(public space)'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이 '싸이월드'와 비교할 때 결정적 차이점이다. 이러한 공적인 영역에서의 사적 대화가 누적되어 가다보면, 아래 그림 A, B, C처럼 나름 탄탄한 개별 그룹들이 형성되기도 한다.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대화를 통해 각 개별 그룹의 성원들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간다. 개별 그룹내에서 형성되는 이러한 신뢰관계를 이른바 '강한 연결(strong ties)'이라 칭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림 출처: @npool>

또한 서로 다른 그룹을 구성하고 있는 각 개인들 사이에서는, 위 그림에서 빨간색으로 표시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 연결을 이른바 '약한 연결(weak ties)'이라 칭할 수 있다. 이 약한 연결을 타고, 각 집단에서 이야기되던 주제와는 다른 주제의 정보들이 흘러든다. 즉 또래 집단의 관심거리 목록에 없었던 이야기들 또는 동일 사건에 대한 다른 시각을 담은 트윗들이 외부로 부터 들어온다. 만약 빨간 선을 통해 이 외부정보를 처음으로 받은 그룹 구성원이 이 외부정보를 '추천', 즉 RT하는 순간, 해당 그룹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이 외부정보가 매우 빠르게 유통된다. 왜? 그 동안 형성/성장한 그룹 성원들간의 신뢰도가 그룹 내 정보유통에 로케트와 같은 추진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룹 성원들은 '사적 대화'를 지속하면서도, 색다른 정보 또는 색다른 시각들을 서로 나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성원들은 각자의 사고를 살찌워 나간다. 이것이 트위터의 주요한 '매력'이다. 새로운 정보, 색다른 시각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각 개인의 사고를 살찌우는 정보와 시각이 각 개인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드러온다. 이것이 트위터가 선사하는 '매력'이다.

그럼 이제, 많은 사람을 팔로잉할 때의 문제, 즉 각 개인이 실시간(realtime)으로 수용하는 정보가 많아질 때의 문제에 대한 대응 방법을 이야기해보자.

여기서 던져야하는 핵심 질문은, 구독하는 트윗 모두를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는가이다.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사용자 각자에게 전달되는 트윗/정보는 그 사용자가 최종(!) 목적지가 아닌 트윗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들 트윗을 스쳐 보내도 된다. 트윗은 모두 읽어야 하는 중요한 '개인 이메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스팸 메일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구독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클 때, 그리고 각 개인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읽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좋은 트윗을 발견하면, 이 트윗이 다른 곳으로도 흘러갈 수 있도록 'RT(리트윗: 추천/전달)'를 통해 '다리'를 놓으면 된다.

정보/트윗이 최종 목적지 없이 흘러가는 그 무엇임을 이해하는 새로운 소비습관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른바 실시간 소통(realtime communication)의 시대가 요구하는 정보 소비습관이다.

1. 네트워크에 존재하고 그곳에 흐르는 정보는, 개인에게 전달되는 (연애) 편지가 아니다. 꼼꼼히 읽을 필요 없고, 반복해서 읽으며 가슴을 설레일 필요 없다.

2. 각 개인에게 전달되는 또는 각 개인을 찾아가는 모든 정보를 수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에 목숨 걸 이유없다.

3. 정말 중요한 정보/트윗은 여러번 반복해서 등장한다. RT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의 관계망 속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RT를 통해 트윗에 멋진 날개를 달아준다. '나' 또한 매력있는 트윗을 만날 때, RT하는 에티켓! 정보/트윗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게 하고, 구성원 전체를 살 찌우게 하는 RT를 잊지 말자.

 4. 그래도 쉼없이 쏟아지는 많은 트윗/정보가 '그대'를 힘들게 하는가? 그럼 잠시 휴식을 취하자. 잠시 웹/네트워크에 등을 돌리자. 그리고 휴식에서 돌아왔을 때는, 정보의 흐름을 역류하여 과거의 트윗/정보를 찾아 읽는 수고를 하지말자. '오늘' '그대'에게 흐르는 정보/트윗이면 족하기 때문이다.


x 추가: 학교에서 새롭게 만난 많은 분(?)들이 트위터를 어려워하셔서 쓴 글인데, 1) 글이 길어져 버렸고 2) 너무 추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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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10/03/31 17:32 2010/03/3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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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찬란하게 이룩했던 '시민 저널리즘'의 신화가 차츰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 2007년 블로그의 급속한 확산은 '1인 미디어 시대(!)'를 노래케 했다. 그러나 이 노래를 아직도 외쳐 부르는 이는 없다. 북미대륙과 유럽에서 2008년 부터 본격화된 '신문의 위기'는, 한편에서는 '저널리즘의 위기'로 이해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구 권력'의 붕괴와 새로운 '언론 미디어'의 탄생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심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아도 새로운 그 무언가는 봄날의 아지랑이와 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블랙베리'와 '아이폰'은 '모바일 웹'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아직 아장아장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무엇이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거친 물결을 건너야할지 알 수 없다.

왜 이렇게 변화가 더딘 것일까? 도대체 미디어는 어떤 변화의 과정을 지금 통과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미디어 질서는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최근 클레이 서키(Clay Shirky)가 제시하고 있다.

클레이 서키는 지난 3월 중순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렸던 SXSW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출처보기).
"Institutions will try to preserve the problem to which they are the solution. 기관/조직/기업은 자신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를 추구한다(의역)."
마치 선문답을 하는 듯한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

그 의미를 해석해 보자. 핵심은, '문제(problem)'가 없다면 '해답(solution)'도 필요없다는 점이다.
문제 A를 가진 사람이 있고, 이에 대한 해답 A를 가진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기업에게 해답 A는 이른바 '비지니스 모델'이다. 이 해답 A는 이 기업에게 매출과 이윤을 창출하는 근거이자 존재 기반이다. 당연히 이 기업은 문제 A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기업에 의해 해결되기를 원치 않는다. 자신만이 유일한 해결책 A를 갖고 있기를 원한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 A가 계속해서 존재하기를 원한다.
이 기업에게, 해결책 A를 제시하는 다른 사람/기업이나 문제 A를 사라지게 하는 환경의 변화는 비타협적으로 싸워야할 대상이다. 이 기업은 변화를 원치 않는다.

한 명의 음악가가 있다. 멋진 음악을 만들었지만, 그는 이 음악을 다수의 청중에게 전달할 능력이 없다. 이것이 이 음악가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음악기업의 몫이다. CD 등의 전달매체에 음악을 담아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고, 방송을 통해 이 음악을 홍보하는 형식을 통해 음악기업은 돈을 번다. 그런데 음악기업의 이러한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없어진다면? 그리고 음악가에게 자신의 음악을 유통시키고 홍보하는 것이 더이상 '문제'가 아니된다면? 음악 유통과 홍보에서 기존 음악기업들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사라진 것이, 2008년 마돈다가 Warner Music을 떠났고 최근 락그룹 Ok Go가 EMI를 떠난 이유이다.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가 음악가들에게 훌륭한 유통과 홍보 채널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이 언론산업과 기업홍보/광고 영역에서 연출되고 있다. 방송과 출판 영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통 미디어 기업의 문제 해결능력이 더 이상 필요 없게되는 미디어 질서가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 이것이 전통 미디어 기업들이 새로운 미디어 질서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이유다. 이것이 저작권법을 구시대적 방식으로 강화하고, 삼진아웃제 등으로 파일공유를 억제하려는 이유이다. 이것이 실명제와 명예훼손이라는 낡은 수법으로 젊은이들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이유이다. 수십년 간 이어져온 그들의 '비지니스 모델'을 지키기 위함이다.

소셜 미디어는 '유통'의 문제를 해결한다. 페이스북의 Fanpage, 기업 트위터, 기업 블로그 등이 기업과 소비자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만큼 기업의 기존 언론과 방송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고 있다.

클레이 셔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새로운 미디어 질서의 결과를 예측하고 있다.
"Abundance breaks more things than scarcity does. 풍요함이 결핍보다 더 많은 것을 파괴한다."
인터넷과 웹을 통한 사회 관계망에서 절대 '다수' 사용자는 스스로 유통의 몫을 담당할 수 있다. 이들이 넘쳐날 때, '소수' 미디어 기업이 담당했던 유통의 역할은 파괴된다.

(1) 언론기업, 출판기업, 방송기업, 음악기업 등이 과거식 희소성에 근거한 비지니스 모델을 지속하고, (2) 절대 다수의 사용자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유통의 몫을 담당할 때, 즉 이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만족될 때, 미디어 기업의 과거 비지니스 모델은 철저하게 무너질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미디어 질서가 태동하고 이 질서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교란이 일어나고 있는 과도기다. 그리고 이 과도기에 생겨난 다른 '문제'가 있다.

전통적 미디어 산업에서 내용/콘텐츠 생산은, 유통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윤전기와 배급소가 없는 신문은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유통과정에서 창출된 수익, 즉 광고수익은 생산비용을 감당했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유통과 생산이 분리된다면, 생산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이 질문에 답을 찾는 자,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경제적 강자'로 군림할 것이다.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을 찾는 시대, 새로운 실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실험, 실험, 실험" 이것이 새로운 미디어 질서를 열망하는 이들의 크레도(cred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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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10/03/26 15:32 2010/03/2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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