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도 '성장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분배'가 '성장'과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외에는 그리 할 말이 많지 않다. '성장주의'의 무모함을 비판하는 위의 글도 그리 새로운 시각을 전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평등이 성장을 잡아먹고 있다는, 꿈을 심어주지 못하는 자본주의는 이미 죽은 것이라는 표현들이 읽는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경제학을 전공하면 배우게 되는 성장이론. 신고전학파의 '성장이론'이나 (포스트) 케인주의학파의 '성장이론' 등에서 보이는 '성장 가능성'이라는 '블랙박스'에 대한 그 무한한 '신뢰'를 비판할만한 능력은 내게 없다. 그러나 죽기 전에 기회가 된다면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주제이다.
하지만 성장의 폐해를 "수리"하는 방식 또한 자본주의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듯한 느낌. 케인즈주의가 초기 자본주의 폐해 "수리"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면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폐해를 "수리"하는 방식은 또다른 양상을 보여주는 듯. 물론, "수리"는 우선적으로는 축적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본가의 이해에 기반한 것이고 20세기 초중반의 자본주의 "수리"는 조직된 노동자의 이해와 우연히 맞아떨어졌던 것이고. 하지만 박정희의 경제발전은 자본주의의 폐해를 "수리"하는 것이랑은 관계가 없었지. 되려 정치 정당성의 부재와 자본주의 저발전의 폐해를 "수리"하려는 것이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남한에서의 자본주의는 이제서야 제대로 된 "수리"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봐야할 듯. 물론, 그 방식은 성장과 분배가 어느 정도는 같이 갔던 6-70년대의 방식을 뒤집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성장중심주의가 그러한 것처럼 성장과 분배가 배치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하나의 이데올로기. 무엇이 더 옳거나 효율적이라 말할만한 제대로 된 연구도 합의도 없고.. 결국은 현실 싸움의 문제!
정보환경의 근본적인 변화: 브라우저가 사라진다 온라인 기사 하나를 읽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리던 수고는 고속 인터넷 망(DSL) 도입과 함께 끝이났다.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 고속 인터넷 망은, 인터넷 내용 서비스의 중심을 문자(예: PC 통신 / 온라인 뉴스)에서 음성과 영상 영역으로 확대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이른바 '브라우징' 방식이다.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것은 항상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를 클릭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다행스럽게 파이어폭스 등 다른 브라우저 사용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브라우저를 작동시킨 이후, 즐겨찾기를 통하거나, 네어버, 다음 등의 시작사이트를 통하거나, 또는 주소(URL)를 직접 입력함을 통해 이른바 '웹 서핑'을 하며 정보를 소비 또는 생산한다. 이것이 지난 10년간 변하지 않았던 인터넷 사용법이다.
작은 변화는 '위젯(widget)'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위젯은 소비자가 선호하는 웹 사이트 또는 웹 서비스를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아이펏 터치(iPod Touch)는 위젯을 통한 정보 소비 (및 생산)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다 (예: tweetie). 그러나 '바로 사용'하는 웹 사이트나 웹 서비스도 기본적으로 '브라우저'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위젯'같은 작은 소프트웨어를 세상의 모든 사람, 사물, 동물 등이 하나씩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때 필요한 '브라우징' 도구는 카메라다. 카메라가 브라우저가 된다. 휴대폰 카메라에 사물을 담으면 그 사물의 정보가 전달된다. 예를 들어, '남대문'을 카메라에 담으면 남대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전달된다. 못보던 외제 자동차가 눈 앞에 들어온다. 그 정체(?)가 궁금한 사용자가 휴대폰 화면에 이 자동차를 담으면 그것의 기본정보를 알 수 있다. 백화점에 가서 맘에 드는 옷을 하나 발견한다. 이를 카메라에 담으면 그 옷의 기본 정보뿐 아니라, 다양한 '가격비교'가 동시에 가능해진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의 한 단면이다. 그리고 남대문을 카메라에 담으면, 화재로 전소한 남대문에 대한 과거 동영상 뉴스를 함께 볼 수 있다, 영화 포스터가 카메라에 들어오면, 그 영화의 예고편도 함께 사용자의 휴대폰 화면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이해하는 LTE(Long Term Evolution)라는 4세대 (4G) 이동통신이 가능케할 정보소비의 새로운 양식이다.
한 인간이 다룰 수 없는 수준의 다량의 정보가 인간 일상을 에워싸고 있는 상태를 일찍이 1970년 토플러(Alvin Toffler)는 자신의 책 '미래충격(Future Shock)'에서 '정보의 홍수(Information Overload)'라 칭했다. 혹자는 트플러가 '인터넷 시대'를 예견했다고 한다.
그렇다, 인터넷은 이른바 '정보의 홍수'를 극대화시켰다. 인터넷에서 정보가 넘쳐나자 일부에서는 '정보의 희소성'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인터넷 또는 웹 비지니스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이 넘쳐나는 정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선별해 주는가이다. 검색서비스가 그러하고 e마켓들의 상품(가격)선별 서비스가 그러하다. 최근에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친구나 지인의 추천'이 '선별(filtering / recommendation)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정보의 홍수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그러나 과연 인터넷이 '정보 홍수'의 원인인가? 아니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감당할 수 없을 수준으로 정보와 지식이 범람한 것은 인류에게 도서관이 존재했던 이후, '서점'이 -특히 한국에선- 잠시나마 동네 동네 자리를 잡은 이후, '신문'과 '방송'을 쉽게 접할 수 있게된 이후, 인간은 넘쳐나는 정보와 항상 맞닥뜨려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 2평 남짓 규모의 자그마한 책방은 내게 삶의 도전이었다. 책장 대부분은 각종 참고서가 차지했고, 귀퉁이 작은 구석에 시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작은 책방의 시집들도 내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정보요 지식이었다. 책장 사이 어렵게 쪼그려 앉아 오랫동안 이 시집, 저 시집을 뒤적거리다 아쉬운 마음으로 시집 한권 씩을 사곤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대학가 서점에 대학 1학년 때 처음 들어서는 순간 느꼈던 묘한 흥분을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를 앞도하는 듯한 책장의 높이며, 아니 몽땅 처음보는 책들이 아닌가!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도 놀라울 정도로 늘어났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며 물어본다. 그렇게 많았던 정보와 지식이 공포스러웠나? 정말? 이메일 계정에 쌓여있는 스팸에 늘 놀라고 있나? 그럼 대형서점에 쌓여있는 수많은 '처세술'책에도 스팸을 보듯 놀라야하나? 인간의 시선이 닿을 곳을 모두 계산한 듯, 지하철(역) 곳곳에 촘촘하게 붙어 있는 광고들을 보며, '윽, 넘쳐나는 정보야!'라며 화들짝 놀라고 있나? 아니다.
양적으로 팽창하는 정보는 그 질적 성장과도 함께 한다. 정보의 양적, 질적 팽창과 함께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도 향상되었다. 또한 정보/지식은 스스로 팽창하지 않는다. 아니, 어찌보면 높아진 정보처리 효율성 때문에 정보의 양과 질이 증가한 것이다. 스팸성 정보가 너무 많아졌다고? 스팸성 정보를 다루는 능력도 함께 늘어나지 않았나.
최근 나의 RSS-Reader는 '1000+'를 표시하고 있다. 이 숫자를 처음보았던 순간, '이를 어쩌나' 안절부절했다. 독일에서 생활할 땐, RSS를 읽고 흝어보는데 하루 평균 2시간 이상의 정성을 쏟았다. 그럴 시간이 이젠 내게서 사라졌다. 마음의 훈련을 시작했다. '그러면 어때! 다 읽을 필요는 없는거야. 못 읽는다고 초조해하지 말자, 실망하지 말자!'
나를 실망케 하는 것은, 고등학교 앞 동네 서점이 사라진 것, 대학가 서점이 사라진 사실이다. 멋지고 훌륭한 블로그 글들이 사라져 버린다? 이것 안된다. 내가 다 읽지 못해도 이러한 글들이 넘쳐나야 한다. 이러한 '정보의 홍수'를 난 언제나 반긴다. Welcome to Information Overload!
애시당초 사람은 bounded rationality 성향이 있기 때문에 information을 완벽하게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하죠... 제한된 정보 속에서 그 나름의 판단을 하고 결정을 내리는 게 사람이라고 합니다.
근데, 정보가 지나치게 많아진 최근(그래봐야 perfect information은 아니지만요) 내가 소유하고 흡수할 수 없는 정보가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나가는 걸 보면서 그 '불안감'만 잔뜩 커진게 아닌가 싶네요.
말씀하신대로, information overload는 원래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심리적인 정보홍수는 최근들어 생긴게 아닌가 싶습니다.
(서점에 가질 않는 이상, 도서관에 가질 않는 이상 정보가 쏟아지고 있는지 애시당초 알리가 없죠...근데 요즘은 클릭질 한두번이면 정보가 내 앞에서 왔다갔다하는 걸 '지켜볼'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머독의 한국방문과 중국에서의 행동을 보면 노련한 여우-결코 폄하하는 말은 아니다-를 보는 것 같다. (1) 아시아 방송시장에 대한 진출 의지와 (2) 세계 시장에서 구글(google)과 대적하고자 중국이라는 정치적 힘을 이용하려는 그의 꿈과 행동들은(참조기사 보기) 그러나 무모하다. 어쩌면 이 무모함이 그의 전설적인 성공담의 밑바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무모함은 역으로 그의 몰락의 원동력이 될 듯하다. 이를 증명하는 너무나 멋지고 흥미진진한 글이 하나있어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의 핵심은 루퍼트 머독의 사업감각 또는 머독식의 미디어 기업은 '시대에 뒤쳐진 낡은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미국 저널리스트 Michael Wolff다. 동시에 그는 루퍼트 머독의 전기작가이기도 하다-책 제목은 The Man Who Owns the News다. 이 책을 위해 Wolff는 머독을 6개월간 밀착취재-머독 본인과 그의 주변 사람들과 많은 인터뷰도 진행- 했다. 어쩌면 아래에 소개할 글은 이 책의 후기쯤 될 듯하다.
글은 먼저 머독의 장점과 사업수안을 빠른 템포로 요점정리한다. 그러나 바로 뒤이어 머독식 기업전략이 현 시대에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깊은 통찰력으로 파해친다. 그리고 글 전체에서 일관되게 루퍼트 머독이 얼마나 인터넷에 대해 문외한인지를 매우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곁들여서 설명한다. 그리고 그 '무식'이 바로 머독의 '용기'임을 지적하고, 머독이 말하면 마치 '황제'의 말인양 믿는 전통 미디어 기업들의 대표들을 살짝 비꼬고 있다.
잠깐 원문을 즐겨보자.
머독은 혼자서도 복잡한 신문기업을 쪼개고 다시 붙이고-번역주: 그의 기업 사냥식 성장전략을 비꼰 듯 하다- 하면서 훌륭하게 요리해 먹지. 그런데 디지털 기술에 대한 통찰력이나 이해력은 그냥 꽝이야. 사실 없다고 봐야지. 루퍼트 머독의 신문에 대한 그 일편단심은 사실 인터넷에 대한 반감의 다른 표현일 뿐이야. 그는 인터넷을 포르노, 도둑질, 해커들의 집합장소 쯤으로 생각하고 있지. 2005년 어느 날 - 머독의 News Corp.에서 MySpace를 구입하는 그 멋진 비지니스를 성사시킨 직후, 참 MySpace는 News Corp. 경영진의 그 무능때문에 결국 망해가고 있지만 말이야 - 내가 머독에게 축하인사를 했지. 그랬더니 머독이 뭐라 답했는지 알어? "흥, 우린 지금 스토킹 비지니스를 시작했어"라는 거야, 글쎄...
Murdoch can almost single-handedly take apart and re-assemble a complex printing press, but his digital-technology acumen and interest is practically zero. Murdoch’s abiding love of newspapers has turned into a personal antipathy to the Internet: for him it’s a place for porn, thievery, and hackers. In 2005, not long after News Corp. bought MySpace, when it still seemed like a brilliant purchase—before its fortunes sank under News Corp.’s inability to keep pace with advances in social-network technology—I congratulated him on the acquisition. “Now,” he said, “we’re in the stalking business.”
머독과도 개인적 친분이 있다는 저널리스트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Wolff의 글솜씨도 뛰어나지만, 그 용기는 더욱 훌륭하다 - 나같은 겁장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Wolff는 이른바 '사주'를 씹고 있는 거다. 그것도 '내부정보'를 이용해서 잘근잘근.... 글 중반에 보면 머독의 아내에게서 전해들은 '머독이 인터넷과 관련해서 얼마나 무식한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에서 이 정도면 바로 '명예훼손 소송'감이다.
왜, 머독의 News Corp. 같은 이른바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모범적인 '미래 기업'이 될 수 없는지 Wolff는 아래의 문장으로 정리한다.
인터넷 비지니스는 전통 미디어 기업들이 할 수 없는 일이야 - 문맥적인 번역임 ^^ -. 인터넷 비지니스는 그 미디어 기업들이 이미 가지고 있는 사업체들과 충돌할 수 밖에 없거든 - 번역 주: 머독의 News Corp.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그 결과는 간단해. 회사가 딱 멈춰버리는 거야.
Internet business strategies are often an intractable issue for media companies because they involve turf wars among contrary skill sets, business models, and corporate cultures. The result is usually bureaucratic stasis.
이른바 '융합'이 만병통치약인양 주장하는 그 누군가는 Wolff의 글을 필독하길 진심으로 권한다.
끝으로 Wolff는 머독이 인터넷과의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참 얄미운 것은 머독의 나이가 78세임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머독은 무료 뉴스 매체로써의 인터넷의 성장을 더욱 방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머독은 더 많은 신문사 경연진들이 자신의 전략-온라인 뉴스 유료화-을 따르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다시 '신문'을 읽게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건 머독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그리고 머독의 자식-현재 영국사업을 책임지고 있다-이 머독의 전략을 아마도 방해할거야. 그리고 머독을 은퇴시키겠지. 사실 인터넷과의 전쟁에서 이기던 지던 머독에게는 어차피 상관없거든-번역주: 괜히 '황제' 머독이 전쟁 시작했다고 그 전쟁터로 뛰쳐 나가지 말라는 뜻.
The more he can choke off the Internet as a free news medium, the more publishers he can get to join him, the more people he can bring back to his papers. It is not a war he can win in the long term, but a little Murdoch rearguard action might get him to his own retirement. Then it’s somebody else’s problem.
그런데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머독의 이야기를 여과없이 전달하는 한국 기사들-예 보기-이나, 머독식 '신방 겸영'이 한국 미디어기업의 미래라고 주장하는 글들을-예 보기- 보면 가슴이 꽉막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