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밤 클래식 음악 공연을 즐기는 것이 꼭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이른바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기 위해서는 결코 작지 않은 경제적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에 살면서 누렸던 여러 즐거움 중 하나는 오페라 등 클래식 음악 공연을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약 60여 개에 이르는 상설(!) 오페라하우스 -많은 경우 연극/춤 공연장으로 함께 사용된다-중 대부분을 연방정부, 주정부 또는 시정부가 직접 운영하고 있어 입장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더우기 학생은 나이제한 없이 약 50퍼센트에 이르는 할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클래식 음악 공연을 소비하는 것은 이른바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별시키는 사회적 장치라고 했다 (참조보기). 최소한 가격측면에서 볼 때, 독일에서 부르디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오페라 등 클래식 음악 공연을 보며 느낀 점이 있다면, 음악은 귀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가수가 호흡을 길게 끌며 노래할 때면, 어느새 주먹을 불끈 쥐고 그의 다음 호흡을 애타게 기다린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지휘자가 작은 몸짓으로 애틋한 소리를 이어갈 때면, 어느새 내 몸도 따라 움츠려 든다.

저렴한 가격에 클랙식 음악 공연을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이 함께 즐거운 멋진 기억을 오늘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만들 수 있다면 훌륭하지 않을까? 그 첫번째 가능성을 베를린 필하모니가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작년 12월 베를린 필하모니는 디지털 콘서트 홀(Digital Concert Hall)을 '개관'했다. 여기서는 녹화된 과거 공연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로 '오늘' 열리는 공연을 라이브로 즐길 수 있다 (1회 요금은 9유로90센트, 1년 정액권은 149유로다). 소리, 영상 모두 흠잡을 것이 없다. 약 4분 길이의 '맛보기' 동영상이 모든 공연에 제공되고 있고, 유튜브(YouTube)를 통한 홍보도 진행된다.

지난 5월에 있었던 공연을 잠시 감상해 보자. 지휘는 아바도. 그의 애잔한 손놀림을 보라.

그런데 이러한 베를린 필하모니의 새로운 시도에 불만이 쌓여가는 집단이 있다. 바로 클래식 음반사들이다. 자신들을 쏙 빼놓고 음악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를린 필하모니 뿐 아니라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들이 하나 둘 씩 소비자와 직접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ondon Symphony Orchestra)는 현재 약 100여 개의 공연 녹화를 자체 '레이블'인 LSO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CD 판매, 내려받기 형식). 휴대폰 벨소리도 직접 판매하고 있다.

최근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성장한 네덜란드 왕립 콘서트허바우 오케스트라(위키 정보)도 자신들의 공연을 직접 녹화, 판매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무료 내려받기가 가능하다.

미국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자체 디지털 뮤직 스토어(Digital Music Store)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곳에는 MP3 이외의 다양한 압축방식을 제공하고 있다. 압축 기술에 따라 클래식 음악의 질이 크게 차이나고 있음을 고려한 듯 하다. 서라운드 방식에 적합한 WMA 방식도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클래식 음악도 차근차근 인터넷 시대에 적응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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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09/07/31 10:30 2009/07/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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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facebook)의 위기감: 트위터(twitter) 열풍이 무섭다
2009년, 페이스북 경영진은 두 개의 힘겨운 과제와 씨름하고 있는 듯 하다. 하나는 수익모델 창출이고, 다른 하나는 마이스페이스(myspace)에서 페이스북으로 넘어왔던 커뮤니티 제왕자리가 다시 페이스북에서 트위터로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트위터는 커뮤니티 서비스가 아니다).
이 두번 째 과제의 결과물이 최근 윤곽을 보이고 있다. 바로 'Everyone Button (전체 공개)'이다 (참고자료 1 보기). 곧-이 '곧'이 언제쯤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페이스북 '담벼락'에 쓰는 글들을 '나 자신'과 '친구들' 이외에도 페이스북 회원 모두에게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것이 가능하다. 약 2억2천5백만 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회원들에게 '트위터' 기능이 제공되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곧 도입되는 '전체 공개(Everyone)' 기능

개인적으로 이러한 페이스북의 트위터 따라하기 전략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이는 여타의 훌륭한 '부가 기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2. 페이스북 회원들에게 지금까지 익숙했던 '사적 공간'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는 일종의 강요다. 3. 페이스북을 '친구들 사이의 커뮤니티 공간'에서 '공적 수다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의미, 즉 서비스의 '기본 성격'이 변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기업의 경영전략에 대해 더 이상 왈가불가하고 싶지는 않다.

뉴스사이트들이 배울 점: '실시간 집단 수다'의 성장 위력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지난 3월부터 시작되었던 '친구'들의 '담벼락' 기록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서비스는 페이스북이 트위터를 닮아가는 전략의 1단계였다. 2단계는 바로 '전체공개(Everyone Button)'를 통해 '페이스북=트위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춘다면, 세계 최대규모의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경영진의 '사고능력'이 의심받게 된다. 그들이 밝히는 멋진 3단계 전략은 Live Stream Box(참고자료 2 보기)다. Live Stream Box를 통해 실시간 수다가 집단화되고, 이 집단화된 수다가 일어나는 공간은 페이스북 울타리 밖이 된다. 구체적 예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식을 페이스북과 함께 '라이브'로 전달한 CNN이다 (아래 그림 참조).
 
사용자 삽입 이미지

CNN과 페이스북의 오바바 미국 대통령 취임식 라이브

페이스북에 Live Stream Box 서비스를 신청하면 원칙적으로 모든 뉴스사이트는 이 서비스를 결합시킨 '실시간 사건/공연 보도' 또는 '실시간 토론회'를 할 수 있다: Live Stream Box는 Facebook API 중 하나다.

위의 참고자료 2를 보면, 시험평가차원에서 미국 밴드 Jonas Brothers의 공연 실황중계에 Live Steam Box가 사용되었다. 약 1백만 명에 이르는 페이스북 회원들이 1분당 23000 여개의 글을 쓰면서 그 공연을 함께 즐겼다고 한다.

어디 공연중계에서만 '실시간 집단 수다'가 가능하랴. 스포츠 중계에서부터 방송 드라마까지. 시사 토론회부터 각종 시상식까지. 대통령 선거 유세장 중계부터 개표방송까지. 청문회 부터 각종 집회 생중계까지. 현재는 Live Steam Box에 'Everyone Watching'과 'Friends' 구분만 가능하지만, 그곳에 '검색어' 구분이 가능해 진다면, 즉 내가 좋아하는 '배우/선수 이름'이나 지지하는 '특정 후보 이름'과  관련된 수다들만 보여진다면? 회원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수다 떨고, 서로 친구맺고, 후원금도 모으고, 함께 '구호'도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뉴스 생산, 소비 및 재가공의 르네상스가 유쾌한 온라인 공론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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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09/07/12 08:33 2009/07/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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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테제는 아래의 질문에서 시작해 보자.
트래픽은 진정 온라인 저널리즘의 '가치평가 도구'인가?
트래픽 저널리즘, 클릭 저널리즘
(저열한 수준의) 속보경쟁과 낚시성 기사제목의 폭발적 증가가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효과로 이야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실증적 분석들도 이어지고 있고, 해결책에 대한 글들도 존재한다 (추천: 최진순님의 '네이버 뉴스캐스트 냉정한 평가 필요'). 그러나 과연 이러한 트래픽 중독이 각 뉴스사이트의 무책임한 편집때문일까? 또는 이를 조장하는 네이버 뉴스캐스트 자체가 문제일까?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다. 대답의 근거는, 첫째, 낚시성 기사제목 남발은 트래픽 중독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하여 "온라인 저널리즘의 경쟁력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언론사의 심기일전"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트래픽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언론사 기사를 공급(?)하는" 네이버식 온라인 뉴스 "유통"은 피할 수 없다. 이는 온라인 뉴스의 '다중소비(Multi-Homing)'라는 소비속성이 네이버식 온라인 뉴스 중계업자가 생성할 수 있는 자양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네이버 자리를 '구글 뉴스' 또는 이른바 "언론사들의 공동포털"이 대신한다고 해서, 온라인 뉴스의 유통 및 소비의 기본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온라인 뉴스의 질적 성장을 차단하는 걸림돌", 즉 트래픽 중독은 네이버 뉴스캐스트로 대변되는 온라인 뉴스의 유통 구조 때문이 아니다.

트래픽 저널리즘 또는 클릭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을 죽음에 이르게하는 ''의 이름이다: 대형 뉴스사이트의 '포토', '화보'란을 보라. 이를 눈감고 살아가는 기자들이 해당 언론사에 수백 명씩 존재한다. 그러나 죽음에 앞서 울려 퍼지고 있는 저널리즘 진혼곡은 그들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보다 깊은 곳에 트랙픽 중독의 원인이 있고, 이 원인을 찾아 중독을 해결하는 것은 '환자'들만의 몫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시장 투명성이 부재한 것, 이것이 트랙픽 중독의 원인이다
'신문고시'라는 제도가 있다. 그 (경제적) 목적은 신문시장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데 있다. 이 제도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논외로하자. 다만 한가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보수적인 신고전학파 경제학 입장에서, 신문고시는 '자유경쟁시장'의 성립과 효과적 작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이 장치에 저항하는 자가 시장에 존재하는데,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은 이를 '독점기업'이라 칭한다.

신문시장의 투명성을 원하지 않는 집단은 일반적으로 투명성으로 손해를 입게되는 시장 행위자, 즉 시장의 '비투명성'이 자신에게는 이익이 되는 행위자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온라인 뉴스시장에 적용되지 않는다. 먼저 온라인 뉴스시장에는 신문고시에 준하는 투명성 보장 장치가 부재하다: 코리안클릭이나 랭키닷컴에서 제공하는 뉴스사이트 통계수치, 즉 페이지 뷰와 이를 둘러싼 순위경쟁은 오히려 뉴스사이트의 트래픽 중독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또한 트래픽 통계에서 상위를 기록하는 뉴스사이트일수록 중독 증세는 더욱 심각하다. 온라인 뉴스시장의 '비투명성' 때문에 가장 손해보는 집단은 바로 대형 뉴스사이트다.

이제 네번 째 테제를 끌어내 보자.

네번 째 테제: 보다 적극적으로 광고계와 대화하자
4.1. 페이지 뷰를 대신할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국 ABC 협회에 준하는 독일의 IVW는, '페이지 뷰는 온라인 저널리즘 통계에 적당하지 않다'는 근거로 '뉴스사이트 페이지 뷰 발표'를 2010년 부터 전면 중단하겠다고 최근 -지난 6월 말- 발표했다 (소식보기-독일어-). 물론 그 때까지 새로운 '측정 기준'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밝히고 있다. 우리도 시급하게 관련 주체들이 모여, 온라인 저널리즘의 매체 영향력과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트래픽 중독을 이겨나갈 '최소한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4.2. 뉴스사이트에서 효과가 큰 광고형식을 개발해야
광고수입은 뉴스사이트의 수익모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물론 그 한계도 뚜렷하다.
4.2.1. 한국 전체 광고시장의 규모가 작다: 광고시장 규모는 해당 국가의 경제규모에 상응한다. GDP 수치로만 비교하면, 한국 경제 규모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보다 작다.
4.2.2. 온라인 광고시장이 커져도, 검색 또는 문맥광고가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편중현상은 당분간 해결될 전망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문맥광고는 소비자의 구매행위 직전에 이루어지는 매우 효과적인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를 능가할 온라인 광고형식은 현재 없다.
4.2.3. 한국 광고주-관공서 포함-에게 광고행위는 많은 경우 정치행위다: 삼성의 경향 및 한겨레 길들이기(?)가 그 대표적 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뉴스사이트에 맞는 새로운 광고형식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대부분의 뉴스사이트는 사라지거나, 남의 뉴스/기사를 짜집기하는 수준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의 언론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의 역동성에 벌써 멀미를 느끼는 듯하다. 아니면 애써 무시하고 있다. 신문 편집인, 논설위원 등 한국 언론사들의 이른바 '결정권자'들은 아마도 신문중심의 뉴스소비 형태를 바꾸지 않은 것 같다. 자사 신문뿐 아니라, 타사 신문도 열심히 소비하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쓰레기 더미로 변해가는 (자사의 또는 타사의) 온라인 뉴스사이트를 그렇게 가만 나둘리 없다. 늦은 밤 퇴근길에 받아보는 다음 날짜 신문의 온기를 그들은 사랑하나 보다. 그러나 이도 얼마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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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09/07/10 08:58 2009/07/1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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