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집회 참여후기: 그들만의 데모

지난 토요일 (3월 28)일, "너희들의 위기에 우리 돈을 주지 않으련다!"라는 주제로 열린 베를린 집회에 참여했다 (집회소개글 보기). 결론적으로 말해 아쉬운 점이 많은 집회였다.

주최측은 약 3만명, 경찰측은 1만5천명 정도가 이번 베를린 집회에 모였다고 한다. 참가자 숫자가 폭발적인 수준-10만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서인지 몰라도, 시민들의 참여규모가 작았던 점에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망스러웠던 점은 '조직된 대중'외에는 다른 참여자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형은행과 대기업보다는 다수 시민에게 도움을!", "경제위기 책임자 조사/처벌, 재방 방지"를 요구하며 참여자들은 크고 작은 깃발 아래 모여 있었다. 그 깃발들의 다수는 독일 좌파당(Die Linke)이 차지했다. Attac, 독일 노조, 녹색당, 좌파당(Die Linke), 환경단체 등의 공동 주체로 열린 집회였으나, 집회는 마치 좌파당의 집회에 일부 독일 노조측 인사와 Attac 집행부에게 연설 기회가 주어진 모양세였다.

이렇게 폭넓은 대중의 참여가 결여된 점은 어쩌면 이번 경제위기의 '현재적' 특징 때문인지 모르겠다. 쉽게 말해 독일 시민들은 '피부'로 이번 경제위기를 느끼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천문학적 규모의 은행지원금이 집행되었고, 기업들의 매출이 급감하고, 장기 침체를 예고하는 각종 경제보고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참고글 보기). 올 가을 총선을 (내각제인 독일은 총선이 대선의 의미를 지닌다) 앞둔 집권 정당들은 경제위기의 체감온도를 낮추기 위해 온갖 정성을 쏟아붇고 있다. 예를 들어 경차 및 소형차를 구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독일정부는 일시불로 2500유로를 지원해 주고 있다. 처음에는 위기의 자동차 업계를 지원하는 방안으로 1월부터 3월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지원정책이 올 연말까지로 연장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우체통에 쌓이는 자동차 광고를 볼 때면 "요때 차를 구입해야 하는 건데...."라고 아쉬워할 정도다.

또한 약 40%에 육박하는 주식소유 독일가구 비율은, 독일인 다수가 '금융시장'이 '과거'로 다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충분한 원인이 될 수 있다. 독일인의 경우 '저축성' 주식소유가 주식소유 이유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6개월 이내 주식거래시 발생하는 '거래 이익' 대부분은 세금으로 환수되는 독일법의 제약은 주식의 장기 저축성을 확대하는 기재이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부터 '국민연금 비율을 낮추고 사적 연금을 확대'한 결과 - 사적연금은 대부분 주식상품과 결합되어 있다 -, 독일 성인 대다수의 '주식 사랑'은 크게 확산되었다. 자신들의 '저축'이 다시 원래 가격을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 상황이 안타깝지만 급할 건 없는 것이다.

요약하면, 1. 독일의 '실업률'이 크게 증가하지 않은 점, 2. 당장 손에 잡히는 '소비성 현금 지원'이 있다는 점, 3. 광범위한 주식소유층이 금용시장의 재가동을 갈망한다는 점이 경제위기 규탄 집회에 대한 대중의 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번 주말 집회, 그리고 오는 4월 2일 런던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담 시기에 열리는 집회들.... 그리고 계속 이어지고 확대-그렇게 기대해 본다-될 저항들로 인해 민주적이고 공평한 세계 경제질서가 형성되기를 희망해 본다.

집회장으로 향하는 대절 버스
- 집회장에 가다 만난 집회장으로 가는 버스. 이렇게 버스를 대절해서 다른 도시(위의 경우, 브레멘)에서 베를린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베를린 시청 앞 집회
- 베를린 시청 앞에서 시작하는 집회 (약 1시간), 그리고 2시간에 걸친 거리 행진, 마지막으로 다시 베를린 시청 앞에서 정리 집회 (약 1시간)로 전체 데모는 구성되었다.

데모대와 함께 행진하는 경찰
- 인상적인 점 하나: 거리행진 대열에 경찰들(anti conflict team)도 섞여 있다.

독일 경찰
- 데모대와 함께 행진하면서 대놓고 '시위채증'도 하고 (왼쪽), 경찰견을 곳곳에 풀어 놓고 시위대를 자극하기도 하고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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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0 08:28 2009/03/3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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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간 속이 쓰리고 기가 차는 뉴스들을 접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언론의 자유가 위태롭게됨으로써 밖으로는 언론산업의 위기 극복과 안으로는 언론의 질적 발전이라는 숙제를 잠시 접어두어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국 방송언론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사실상 모든 뉴스 꼭지마다 정장을 차려입은 기자가 나타나 "MBC 뉴스 000기자였습니다"라는 모습을 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건 드라마 속의 간접광고처럼 뉴스에 등장하는 기자 개인의 자기 PR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방송 뉴스에서 사라질 때를 바래 본다.

그래도 하고싶은 말은, 현정부는 언론탄압을 중지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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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소비하는 것이 즐거울 때도 있다. 영어를 잘 못하고 미국 한번 가본적 없지만, 바로 뉴욕타임즈의 One in 8 Million에서 뉴요커(?!!)들을 만날 때다.
One in 8 Million에는 아름다운 흑백사진들 위로 현장감 있는 육성이 흐르며 뉴욕 시민 한명 한명의 삶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매주 1명씩...

67세 Grajales 할어버지는 전자제품 수리공이다. 테이프(이 시대에!) 녹음기 수리가 주전공인듯하다. 정장차림으로 수리 출장을 다니는 모습, 옆에 놓인 작은 나사들과 대비를 이루는 할아버지 양복의 소매 단추들, 그의 웃음...

22세의 Ra Ruiz는 동성애자다.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역시 가난하다. 동성애 때문에 학교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미움 받고....

69세의 Nancy 할머니는 25년 넘게 뉴욕시장 관사의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 역사(무슨 역사인지 잘 모르겠지만 ^.^)와 함께하는 자신의 일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간다.

사진들이 너무 훌륭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 유명한 사진기자 Todd Heisler의 작업들이다(그에 대한 위키). 뉴욕타임즈가 이 One in 8 Million에 들이는 (경제적/인적) 투자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One in 8 Million (nytimes.com)

One in 8 Million과 유사한 작업들이 있다. 더 이상 업데이트는 없지만 워싱턴포스트의 OnBeing이 그 중 하나다. 출연자는 각자의 삶을 백색 배경 앞에서 이야기한다. 인위적이다라는 느낌도 받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훌륭하다. 15세의 Claire는 '손목 자해' 경험이 있는 학생이다. 그가 느끼는 우울증, 그리고 같은 경험을 공유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OnBeing에는 간단치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여 조금 부담스럽다. 그러나 카메라는 출연자들의 감정 하나 하나를 너무나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다. 마치 그 삶의 굴곡을 이해하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멋지다.
onBeing (washingtonpo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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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한국 언론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한글 가로쓰기로 편집된 한겨레 신문 발행을 꼽는다. 한자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기자와 한자 가득한 기사를 제약없이 읽을 줄 아는 이른바 식자층의 조합을 극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글기사는 기사에 대한 접근성을 낮춤으로써 독자저변을 확대하는 결과를 낳았다.

뉴미디어 시대 언론의 대응 방안으로 많은 이들이 통합 뉴스룸, 하이퍼텍스트 기반 글쓰기 등등을 주장한다. 다 필요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한글기사' 처럼 언론의 일대 전환을 이뤄낼 기획/작업이다. 종이신문으로 구현할 수 없는 그 무엇-형식-, '성공신화'에 찌들어 있는 한국 언론의 뉴스 테마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그 무엇-내용-, 하여 독자들이 찾아와서 소비/참여하게끔 만드는 매력적인 그 무엇이 필요하다.

위의 두 예가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한 교훈은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 뉴스사이트에서, 한국 방송에서 바둥거리며 살아가는 우리네 작은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들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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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7 10:51 2009/03/2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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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산업 위기와 극복전략 1부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주제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아래의 파워포인트에 담아보았다. 먼저 1부를 올려본다. 작성해 놓고 보니 너무 일반적인 이야기다.
BerlinLog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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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18:51 2009/03/2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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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친구놈 하나가 결혼한다. 그는 '북국의 눈물'로 유명세를 얻은 조준묵이다. 결혼 상대는 마찬가지로 '피디수첩'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편으로 스타(?)가 된 김보슬이다.

22일 밤 (독일시간), YTN 노조위원장 등 4명 돌연 체포…피디수첩 1명 출금이라는 뉴스를 읽고 화들짝 놀라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통화내내 웃음 가득이다. "자존심 하나로 살아"라며 넘 걱정하지 말란다.

출금, 즉 외국 신혼여행 금지로 지극히 개인적인 것-결혼식-이 정치적인 것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깝지만 큰 걱정은 없다.

그 놈이 어떤 놈인가. 친구가 빵에 갔을 때 '죄와 벌'을 선물한 놈 아닌가? 그 놈이야 본디 의연한 놈이라 치지만 김보슬씨가 걱정이다. 경찰/검찰에 끌려가서 직면하게 될 공포와 자존심의 상처는 결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의연하게 행동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혼식에는 그리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까운 거리도 아니니...), '사수대'라도 꾸려 결혼식은 행복하게 이뤄지도록 작은 도움이 되고 싶은 심정이다. 하여 이후 혹 구속수사 받더라는 김보슬씨에게 작지만 아름다웠던 '연대'의 기억을 선물하고 싶다.

김보슬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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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5 10:54 2009/03/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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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기도 해라. Ann Arbor News가 7월 1일자로 종이신문 인쇄를 중단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어제(23일)인데, 신임 뉴스사이트(annarbor.com) 편집장이 동영상을 통해 '저널리즘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어도 쉬운 편이다.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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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4 07:48 2009/03/2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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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1: 한국 신문에 공적재원 투입 요구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동을 뜬 것으로 보인다 (그의 글 보기). 그가 명확히해야 하는 것은 1. '경영위기'에 처한 신문사를 돕자는 것인지, 2. 뉴미디어 저널리즘이 자리를 잡기 이전, '산업기반이 붕괴'되고 있는 신문산업에 일시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국민의 알권리가 연속성을 가지도록 지원하자는 것인지이다.

1의 경우, '신문업계 로비력'의 승리임으로 이자리에서 크게 할말은 없다.

2의 경우, 목적에 부합하는 공적자금의 쓰임새를 좀더 세부적으로 밝혀야한다. 개별 신문사에 대한 자금지원은 있을 수 없다. 이는 시장교란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래 참조). 현 신문산업에 대한 지원방안으로는 1. 일시적으로 신문에 대한 부가가치세 전액 면제 (즉 소비자 가격 인하), 2. 모든 신문사가 단일한 유통구조(배급소)를 합의한다면 이 배급소 운영비를 1-2년 정도 공적 자금으로 충당하는 것 정도이다. 즉 이후 생존 또는 '산업 합리화'를 위한 '미래지향적인'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나머지는 인터넷 중심의 뉴미디어 저널리즘의 시장이 올바로 형성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 1. 뉴미디어 시대에 맞는 기자 교육에 대한 지원: 대학교육 및 재교육, 2. 지역 온라인 저널리즘 시장 형성 및 시장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한 지원, 예: 설비, 사무실 등 인프라 지원 및 교육 지원 등. 이러한 수준을 넘어서는 지원책은 민간참여 예산심사위원회를 통해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1. '관주도' 여론의 다양성 보장이라는 기형적인 산물이 생겨날 수 있다. 또는 2. 기존 종이신문 업체(established firm)만을 도와줌으로 공정한 시장경쟁을 크게 왜곡시키게 된다. 특히 헌법이 보장하는 '여론의 다양성'은 '규모의 경제'와 대치되는 개념이다. 기존 종이신문 업체들에 대한 지원은 업체의 규모에 따라 '차등 분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소수의 의견'을 보장하는 위의 헙법정신과도 위배될 수 있다.

소식 2: 미국 한 지역신문 편집장의 감동적인 글
미국 미사간 앤 아버 뉴스 (Ann Abor News)가 오는 7월 1일 종이신문과 작별인사를 한다고 한다 (관련기사 보기). 이와 관련하여 앤 아버 뉴스의 현 편집장의 안타까운 심정이 한 인터뷰 기사에 잘 담겨져있다 (기사 보기). 그러나 그 편집장은 그의 35년 기자생할을 통해 얻은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차 있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People ask, will journalism survive and I think it will survive. The way stories are told will be different and the way they are delivered will be different. But it's the journalists who have fairness and objectivity who will be sought out online. ... I believe we are on a short timeline for the printed newspaper.
사람들은 저널리즘의 생존 가능성을 묻는데, 난 저널리즘의 미래를 본다. 기사가 쓰여지는 양식은 변할 것이다, 그리고 기사들이 전달되는 방식도 변할 것이다. 그러나 공평과 객관성을 가지고 있는 기자들은 온라인에서도 절실하다.... 종이신문의 수명이 얼마남지 않았음은 확실해 보인다 (의역)
기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고 있다.
If you are going to do it, make sure you are well (educated) on the technical side as well as the journalism side. ... If you are not resilient, go somewhere else.
당신이 기자가 되고 싶다면, 저널리즘(언론)에 대한 교육뿐 아니라 기술적인 교육도 당신에게 필요합니다. 만약 이러한 유연성이 당신에게 없다면, 즉 고지식하다면 딴데 가보세요.
이러한 이야기들을 인터넷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듣는다면 식상할 뿐이다. 그러나 35년 종이신문 기자로 일해온 노년의 고지식한 기자에게서 이러한 이야기를 듣게되니 감동이다. 그의 말처럼 '종이신문의 위기'와 '저널리즘의 위기'는 구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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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4 07:20 2009/03/2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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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영국 런던에서 G-20 정상회담이 열린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심화되는 세계 경제위기에 대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의문은 지난 3월 중순 영국에서 열렸던 G-20 경제/재무장관들의 준비모임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쪽에서는 미/영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프랑스/독일이 경제위기 '해법'(?)을 놓고 서로 갈등하고 있는 국면이다 (관련기사 보기). 하여 정상회담을 통해 '선언' -경제위기 해결을 위해 각국 정부가 온 힘을 다해 노력한다- 이상의 결과가 나올지 매우 의심스러운 상태다.

그러나 G-20 정상회담을 제외하고는 전지구적 경제위기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줄 '주체'를 딱히 찾을 수 없다. 하여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 비판, 그리고 요구를 가지는 것은 우리네들의의 권리일 듯하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을 맞아 세계 곳곳에서 기층 민중들의 목소리를 조직, 표출하려는 노력들이 시작되었다. 현재 프랑스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치 총파업은 경제위기를 '국민국가'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정치적 흐름과 맞다을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하지만, 매우 유의미한 정치적 운동임은 분명하다 (위험성은, 이번 파업이 사코지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의 국민들은 XX를 원해. 그래서 난 미국이 제안한 YY를 받아들일 수 없어" 등등의 자의적 변명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존재한다).

또 다른 저항이 현재 독일에서 형성되고 있다. 독일 Attac은 지난 3월 초 베를린에서 '자본주의회담'을 개최했다.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 (약 2500명 추정)이 몰려들었고 독일 언론들도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블로그와 뉴스사이트를 통해 이번 경제위기에 대한 수많은 비판들이 형성/연결되었지만, 그 위기의 실체와 해결 방안에 대해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논의할 수 있었던 기회는 드문 경우였다.

오는 토요일 (3월 28일) 독일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에서 동시 '데모'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적인 반전 데모들 이후 세계적 이슈를 내건 첫 데모가 될 듯하다). Attac이 동을 뜨고 독일 노조등이 공동 주최로 참여하고 있다. 4월 2일 런던에서 열리는 G-20 회담장에서 개최되는 데모의 '사전 데모' 형식이다. 데모/집회의 제목은 "우리는 너희들의 위기에 우리 돈을 주지 않으련다! Wir zahlen NICHT fuer eure Krise!"다.

데모/집회 공식 사이트 가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 데모를 소개하는 동영상이다. 지난 3월 초 베를린에서 있었던 '자본주의회담' 참여자들의 인터뷰들이 담겨있다 (독일어 ^.^).



이 데모를 준비하면서 Attac은 지난 주말 (21일) 하나의 멋진 이벤트를 벌였다.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미군 철수 포함-는 뉴욕타임즈의 가짜 호외를 만들었던 아이디어를 빌려와, 독일 유력 주간지(ZEIT)의 가짜 호외를 15만부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물론 동일한 내용을 담은 웹사이트도 제작했다.

가짜 호외용 사이트: www.die-zeit.net
주간 Zeit 뉴스사이트: www.zeit.de

2010년 5월 1일자로 발행된 호외에는 '희망'의 이야기 즉 경제위기의 긴 터널이 끝나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긴 터널 끝에는 연대와 사회정의에 기반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꽃피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4월 2일 G-20 정상회담에서는 "전세계 100만 달러 이상의 자산가들에게서 한번에 제한하여 개인 자산의 5%를 세금으로 걷어 경제위기 극복-사회보장 지출 확대 등-에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와우! 멋진 상상이다.
또한 G-20 정상회담에서 "전세계 모든 기업의 세금은 최소 25%가 되도록 각국의 조세법을 개정한다"는 결정이 이루어졌다. 와우!

이러한 희망의 소식들이 가득찬 뉴스를 '상상'하는 것은 고통의 긴 경제위기를 통과하고 있는 그리고 통과할 우리네 작은 사람들의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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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3 09:26 2009/03/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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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에 실린, '케인즈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를 보자.

가슴아픈 글이다. 막 레디앙을 다시 보니, '신자유주의는 자연 해체되지 않는다'라는 글도 보인다. 필자 김정호씨에게 묻자. "구 소련과 중국의 지난 80-90년간의 경제역사를 보며, 한마디로 '맑스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라고 이야기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또는 "구 소련과 중국의 지난 80-90년간의 정치/사회사를 보며, 한마디로 '인권을 유린한, 인간을 살해한 맑스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라고 이야기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김정호씨의 케인즈주의 비판에서 가슴 아픈 것은,

1. 그 '뭉뚱그림'이다. 정확히 말해 글의 '몰역사성'이다. 그럽게 쉽게 유럽의 70, 80년대 경제사를 '케인즈주의'로 정리할 수 있는가? 사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바로 '네오 클래식' 경제이론에서 유럽의 지난 경제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2. 조세저항부터 그의 글의 많은 근거들이 '네오 클래식'의 경제이론에서 나오고 있다. 이부분....

지난 수년간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개인적으로 독일에 와서 경제학 학부부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내가 배운 것 중 무엇이 네오 클래식 이론이고 무엇이 케인즈주의인가"이다. 이는 네오 클래식이나 케인즈주의가 뭐 오묘한 학문이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독일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두가지 학파에서 나온 서로 상극인 경제이론을 마치 '진리'인양 아무런 구별없이 그냥 '일반 경제학'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 구별없음은 바로 '(케인즈주의를 일부 인정하는 척하는) 계몽화된 네오 클래식'의 특징이기도 하다. 미시경제학의 '균형이론'에서 출발하고 있는 '(국가)재정학'은 100% 네오 클래식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는 사실(그렇다고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은...)을 혹 김정호씨는 알고 있을까?

공급주의는 네오 클래식이고, 수요 중심주의는 케인즈주의다.... 이처럼 두 경제학파를 정리하는 것은 정확히 네오 클래식의 시각이다. 그리고 (나처럼)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대다수 기자들의 시각이다 ('선순환' 어쩌고 하면서...).

경제'이론'은 말그대로 '이론'이다. 이론은 '현실'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반영/압축해서 묘사하려는 '모델'들의 연속이다. 그 논리적 적합성 자체가 문제일 수 있고, 반영의 대상인 '현실'이 변동한다면 해당 '이론'의 타당성이 문제될 수 있다.

네오 클래식이 '공적 개입'을 주장하지 않나?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와 이에 대한 '공적 조정(regulation)'이론도 100% 네오 클래식 이론이다.

케인즈주의가 '공급자 중심의 경기부양책'을 이야기하지 않나? 사회복지 강조가 '소비자 중심주의'인가? 사회복지의 축소가 일면 가계의 '가용 자산'의 축소로 이어지고, 다른 한편 이 '가용 자산' 축소는 시장규모의 축소와 이에 따른 '공급자'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그럼 여기서 나타나는 '소비시장'과 '공급시장'의 결합/연관성을 주장하는 케인즈주의는 그래도 '소비중심'인가?

아직까지 개인적으로 케인즈주의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점시장 분석에서는 네오클래식 이론을 비판할 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네오 클래식 지지자들이 거시분석을 내놓는 것을 보면 많은 부분 동의하지 못한다. 요것이 나의 수준이고, 앞으로의 숙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정호씨의 글처럼 케인즈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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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7 11:54 2009/03/1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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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행: 인쇄물이 되어 배포되는 블로그?

최근 미국 언론산업에서 들리는 소식의 핵심은 '신문산업의 몰락'이다. 신문사가 문을 닫거나, 또는 순수 온라인 언론으로 전환하거나 등등의 소식이 끝이지 않고 있다.

1.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전통 일간지 San Francisco Chronicle이 곧 문을 닫는다 한다 (미주 한국일보가 크로니클의 배급망을 이용한다고 하니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듯...).

2. 시에틀의 약 150년 전통 일간지 Seattle Post-Intelligencer도 오늘 화요일 (3월 17일) 마지막 신문 인쇄를 끝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3. 여기에 서키는 "Society doesn't need newspapers."라는 말로 현재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관련글 보기).

이러한 상황에서 신기한 프로젝트 하나를 알게되었다. 블로그 글들을 인쇄물로 출판해 '무가지'로 배포하는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사이트: Printed Blog

지역 블로그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현재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L.A.), 한주간의 좋은 블로그 글을 모아 인쇄하여 시민들에게 무가지로 나누어 주는 것이다. 수익원은 '광고'라 한다 (아직은 광고가 없다).

어떤 글들이 '인쇄'되는지는 직접 PDF 파일로 위의 사이트에서 다운 받아 확일할 수 있다. 인쇄물 디자인은 블로그 같고(?), 글 주제 및 소재들은 색다르다. 마치 유럽 및 미국의 초기 동성애 잡지, 히피 잡지처럼 '뭔가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 뒤집어 보자!는 외침을 듣는듯 하다....

개인적으로 상상해 보았다. 내 글이 인쇄돼어 사람들에게 읽혀진다면? 어떤 시인의 시구처럼 "내 시가 삐라처럼 뿌려진다"면? (상업광고와 함께 한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아주 매력적이다. 이러한 실험들이 성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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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09/03/17 08:57 2009/03/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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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신문', '저널리즘' 그리고 '사회'의 관계성을 설명하는 서키(Shirky)의 최근 글이다 (좀 길다 ㅠㅠ).

글 보기: Newspapers and Thinking the Unthinkable

매우 압축적으로 요약해 보면....
우리는 인쇄물 발견과 견줄만한 미디어 변동을 겪고 있다. 현재 신문(산업)은 붕괴되고 있다. 그 다음 무엇이 올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신문'과 '저널리즘'의 연결은 결코 '자연법칙'이 아니다!! 즉 '저널리즘'은 다른 '매체'-웹-와 연결될 것이다.
요약해 보니 별 대단한 내용은 없는 듯 하지만 시간내어 읽어볼만한 글이다.

관련글 보기: 유료 모델, 뉴욕타임즈, 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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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정수 @npool

2009/03/16 17:37 2009/03/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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