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부터 시작되었던 기독교의 성탄절, 서구의 최대명절 성탄절이 이제 끝나가고 있다 (그리스 정교 지역은 1월 7일?). 성탄절이면 독일 개신교 및 카톨릭(가톨릭?) 대표 목사/주교들은 한해를 정리하는 설교를 한다. 올해 설교들에서는 이번 경제위기가 주된 화두가 되었다. 그런데 한해를 뒤돌아 보며 성찰하는 다소 의례적인 내용이 아닌, 현 경제 시스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들이 담겨있다.
여기 몇가지 관련 설교문을 번역해 보았다.
독일 뮌헨의 대주교 라인하르트 맑스(Reinhard Marx): "비인간적인 경제가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또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놓지 않는 경제 시스템은 결국 (공동체적) 인간사회의 근간을 파괴합니다.... 성탄절은 인간사회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그 자체가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입니다."
독일 니더작센 주 개신교 대표 (여)목사 마곳 케스만(Margot Kässmann): "높은 수익률, 빠른 수익율은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경제 성장'은 하나님/하느님이 아닙니다. 나는 경제 성장을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지속가능한 삶/생활방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신에 대한 신뢰, 인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돈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위기를 극복할 힘을 결코 '먼저'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할 경우 인간이 교만해지기 때문입니다. ...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 경제 위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근심 또는 불안'으로 다가옴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지금 '근심 또는 불안'보다 '희망'이 필요합니다. 사실 '위기'란 인간 삶의 일부분입니다... 위기는 그리스어로 'kritein', 즉 '구별하다'입니다. 아마 2009년 우리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 '구별'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합니다. 텔레비젼, 돈, 로또 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 사랑 그리고 희망입니다."
같은 지역 목사 노버트 트렐레(Norbert Trelle): "이번 경제위기는 경제운영 기본규칙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기독교의 기본원칙이기도 한 경제의 사회윤리적 책임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백미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독일 개신교 전체 대표 목사 볼프강 후버(Wolfgang Huber): 구체적으로 도이체방크(Deutsche Bank)의 대표 요세프 아커만 (Josef Ackermann)을 거론하면서, "아커만처럼 한 기업의 수익률 목표가 25%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경우는 이제는 사라져야 합니다. 이러한 높은 수익률 수치는 주주를 비롯한 예비 주식투자자들에게 '점점 높은 기대치'를 가지게 하고, 이 '기대치 달성'이 모든 것에 앞서는 가치가 되게합니다... 올해 은행 매니저들에게 지불된 그리고 지불되는 보너스들은 모두 경기회복 기금으로 (환수)사용되어야 합니다. 이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치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어느새 '돈'이 '하나님'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성'은 윤리적 과제이며 '단기이익'과 '매니저 연봉'보다 중요하게 간주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냐 '돈'이냐를 지난 과거보다 좀더 명확하게 구별해야만 합니다. '사회적 정의', '신뢰' 등 비물질적 가치들이냐 '돈'이냐를 좀더 명확하게 구별하고 선택해야만 합니다. ... 이번 금융시장의 과열은 '금송아지 앞에서 춤' (모세가 십계명 받으러 간 사이 일어났던 '우상숭배(?)' 사건, 참조글 보기)과 다름 없습니다.... 우리는 이 '춤'을 다시 추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돈'을 다시 우상화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2008년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금융위기, 경제위기의 때에도 전세계적 빈곤 문제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일국(한 국가)의 (사회적) 정의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은, 세계 곳곳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적극 고려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금융시장 과열을 '금송아지 (Golden calf) 앞의 춤'이라 비교한 것은 매우 강력하다.
먼저 밝혀둘 것이 두가지있다.
1. 한나라당의 이번 미디어 관련법 개정안들(신문법 개정안, 방송법 개정안,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개정안 등)에 반대한다.
2. 개인적으로 열광적인 '신문 독자'였다. 한겨레 신문 창간독자 시절부터 시작된 (어렸을 때 '소년 동아' 시절도 포함시킬 수 있으려나?) 신문읽기는 최근 1년전까지 생활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97년 독일땅 생활을 시작한 이래 총 6종의 일간지, 2종의 주간지를 횟수로는 총 11년간 정기구독했고 (일간지와 주간지는 겹치는 기간이 있다), 학부부터 다시 시작한 공부 때문에 즉 수업 참여외에 특별히 할 일이 없던 관계로 집에서건 도서관에서건 신문읽기는 매우 규칙적인 습관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올해 5월부터 신문을 더 이상 읽지 않고 있다. 더이상 신문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RSS 구독기로 배달되는 글들을 읽는 시간이 신문 읽는 시간을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핵심부터 먼저 말하면, 신문과 방송 겸영 금지 조항 등 과거 신문 및 방송 산업구조에서 출발한 규제 조항은 재정비될 필요가 있다. ('대기업의 방송산업 진출 허가'는 워낙 말도 안돼는 얘기기 때문에 논외로 하겠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신문산업 (뉴스산업은 신문산업의 상위개념이다)은 점차 몰락해 갈 것이다. 세기말적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적 동력들-소비, ROI 등-이 상실되어가기에 그러하다. 그에 대한 증거들은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관결글 보기). 일부에서 '신문은 영원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신문을 '문화적 가치' 측면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산업으로서의 신문은 망할 수 밖에 없는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추었다. 물론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기금이나 세금으로 제작되는 신문은 아주 오랜 기간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신문산업의 몰락이 기업 도산하듯 당장 내일 일어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신문산업에서 발을 빼서 이른바 '업종 전환'을 해야한다는 것은, 조중동 등 한국 대형 신문기업들에게는 생존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2. 때문에 조중동 등 대형 신문기업들이 방송산업에 진출하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조중동 등이 외치는 근거에는 예의 '글로벌 미디어 기업' 하나 정도는 한국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미디어 기업 육성론'이 자리잡고 있다. 보수층에게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는 논리다. 또한 아무런 학술적 근거없는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는 포장을 통해 중간층에 대한 설득이 시도된다. 전문가들에게는 이른바 '크로스미디어', '미디어 융합 (media convergence)'이라는 거대담론으로 언론의 사회적 역할뿐 아니라 산업적 기능까지 함께 고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름대로 꽤나 견고한 논리구조를 조중동 등 대형 신문기업들은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밀어부칠 절호의 기회가 왔다. 안으로는 '생존'이라는 압박이, 밖으로는 현 정부의 지원이 '때가 왔음'을 그들 신문기업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언론노조', '미디어공공성포럼', '민주당' 등이 내세우는 반대 논리는 허약하다. '조중동, 재벌에 의한 방송 장악 음모', '졸속 개정안' 등이 핵심 반대 구호들이다. 여기에 '민주주의 수호'라는 논리도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KBS, MBC, SBS = 민주주의'라는 등식이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현 이명박 정부가 이번 7개 미디어 관련법들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악수를 둔다면, 그 법 내용에 반대해서라기보다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한 행태에 반대하는 사회적 저항이 형성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저항의 '지속 가능성'은 매우 약할 수 밖에 없다. '자기 관련성', '감정적 체험' 등 사회적 저항으로 확산시킬 요소들이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 및 조중동에 반대하는 보다 효과적인 논리는, '언론노조', '미디어공공성포럼', '민주당' 등 반대 세력들이 생각하는 미디어 산업 재편 방향이 무엇인지를 정확히하는 과정에서 생산될 수 있다. 과거식으로 표현하면, 미디어 산업구조 조정은 거대한 물적 자본의 운동이다. 이를 보다 사회적으로, 보다 경제적으로 재편할 의지와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개인적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돈많은 민주당에서 미디어 관련 정책에 대한 자료집을 최근 출판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는 거다. 과거 자신들의 책임하에 있었던 현재(아직까지는!)의 미디어 관련 법들이 '답'이기에 새로운 정책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고 하면, 물론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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