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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0 Jeong-Soo KANG 하워드 진: 불확실성의 낙관 (1)

하워드 진: 불확실성의 낙관

힘의 법칙 2008/08/10 09:28 Jeong-Soo KANG
지난 2004년 11월은, 다시 시작되는 독일의 긴 겨울을 두려워하며 또한 조지 부시의 미국 대통령 재선 결과에 씁쓸해하며, 마음둘 곳 없었던 시기였다. 이때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번역한 하워드 진(Howard Zinn)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지금도 가끔 내 앞길이 두려워지고, 유혹이 찾아올 때면 읽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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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낙관 (Howard Zinn, 2004년 11월 8일) (원문보기)

권력을 가진 이들에 비해 우리네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의 행위의 결과가 너무나 초라한 이 개같은 세상에서 난 어떻게 이런저런 많은 일들에 열성을 쏟을 수 있고 또 행복해보일 수 있는가? 나는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 백프로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카드들이 끝까지 다 오픈될 때까지 우리는 게임을 포기해선 안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심사숙고 끝에 도달한 메타포: 인생은 도박이다. 그렇기에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길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게임을 한다는 것,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거다. 우리들 사이에 지금과 같은 현실이 지속될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가 갑작스레 체제가 붕괴하고, 사람들의 생각에 있어서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에 대항한 예상치 못한 대규모 봉기가 발생하고, 도저히 망할 것 같지 않던 시스템들이 급작스레 몰락하고 하는 따위의 현상들을 보고 얼마나 놀라와했는지 종종 잊는다는 것이다.

지난 백년간 역사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역사의 철저한 예측불가능성이다. 기술적 진보로 인해 누군가 달에 착륙하는 시점을 정확히 계획/예측해내고, 또 길을 걸으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시대에 이런 소리 한다는 게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치만 한 백년 뒤로 가보자. 반봉건 제국들 중 가장 낙후했었던 러시아의 짜르를 무너뜨릴 혁명은 가장 발전된 제국 권력들 뿐만 아니라 레닌까지도 놀라게 만들어 그로 하여금 황급히 기차를 타고 페테로그라도로 향하게 만들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엔 누가 또 스탈린에 의해 혁명이 불구화될 것이라, 혹은 흐루시쵸프가 스탈린을 까발릴 것을, 혹은 고르바쵸프의 깜짝쇼의 연속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누가 나찌-소련 협약(그리고 떠올리기도 쪽팔린 폰 리벤트롭과 몰로토프의 악수)에 의한 2차세계대전의 골때리는 전환을, 그리고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아만 보이던 독일군의 러시아 진격과 독일군의 패배로 인해 레닌그라드의 입구에서, 모스크바 서쪽에서,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의 거리에서 그들이 되돌아가야만 했던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아무도 미리 알 수 없었던 방식으로 세계가 재편되던 때: 스탈린조차 그 가능성을 낮게 여겼던 중국에서의 공산혁명, 소련과의 결별, 난리법석을 떨었던 문화혁명, 그리고 포스트-마오 중국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받들었던 생각과 제도들을 버리고 모두를 놀래키는 가운데 서방과의 문호를 열고.. 전후 서방제국들의 급작스런 붕괴, 그리고 탄자니아 나이레레의 연성 사회주의에서부터 바로 옆 우간다 이디 아민의 광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 역시 아무도 예측 못했다.

스페인도 경악의 대상이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파시스트 프랑코의 승리로 막을 내렸던 내전에서 백만명이 죽었다. 내전에 참가했던 누군가로부터 스페인의 파시즘을 또하나의 혈전없이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프랑코가 죽고 난 후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모두에게 열려진 의회민주주의가 세워졌다. 폴투갈, 알헨티나, 필리핀, 이란 등 다른 곳에서도 깊게 뿌리 내린 독재체제들이 무너졌다.

냉전 하 양대 권력축이었던 막강한 화력과 파워의 미국와 소련... 치만 이들 슈퍼파워에 관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크기, 부, 다른 나라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축적된 핵무기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 심지어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여겨졌던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당한 개쪽..은 수소폭탄을 가진 거대 권력 조차도 싸우기로 작정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지배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미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인도차이나에 대한 총력전, 어느 조그만 반도에 대한 세계사에 유래없는 폭탄투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물러나야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 미국은 쿠바에서의 혁명을 막을 수 없었으며 칠레에서 알헨티나를 거쳐 엘살바도르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지원했던 독재제들은 무너졌다. 매일의 헤드라인에서 우린, 노동자와 빈자들의 풀뿌리운동이 자본권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을 뽑은 브라질의 경우에서 보듯, 약자에 대한 강자의 권력행사가 실패한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놀라운 사건들의 카탈로그를 들여다보노라면, 총과 돈을 가지고 절대로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이들의 거대한 파워 때문에 정의를 위한 싸움이 포기되어선 안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보인다. 이런 권력체들이 폭탄이나 달러로는 측정될 수 없는 인간의 어떤 속성 앞에 약점을 드러내었다는 점은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보여졌다. 알라바마와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이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혹은 베트남의 농민들이건,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소련의 노동자와 지식인들이건..

힘관계에 대한 계산이 엄혹한 것으로 드러날지라도, 이는 자신들의 싸움의 명분이 정당하다 믿는 사람들을 지체시키진 못한다. 내 친구들의 (단지 내 친구들 뿐일까?) 비관에 맞장구쳐주려고 나도 꽤나 노력했지만, 여기저기 절망적인 일들만 생기는 것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특히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계속 자꾸만 만나게 된다. 내가 어디엘 가든, 그런 사람들은 꼭 있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활동가들 뒤로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주류에 저항하는 건강한 생각들에 마음을 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몰라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꿋꿋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마치 시지프스가 산꼭대기로 돌을 끊임없이 밀어올리듯 절망적인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 당신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당신처럼 거대한 운동의 부재로 인해 가슴아파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바로 그런 운동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의 변화야말로 정말로 나를 북돋아주는 힘의 원천이다. 인종적 편견과 성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전쟁과 폭력이 여전히 우리의 문화를 짓누르고 있고, 가난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 많고, 또 변화를 무서워하고 있는 그대로에 만족해하는 사람들 분명 있다. 그러나 이런 측면만 보는 것은 역사적 관점을 놓치는 거구, 이건 마치 어제 태어나서 오늘 아침신문과 저녁뉴스의 힘빠지는 이야기들만 아는 꼴이 다.

단지 몇십년 사이 이뤄졌던 엄청난 변화들, 인종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 여성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자리를 요구하는 당당한 모습, 동성애자들이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확산, 그리고 잠깐의 광기 이후 찾아온 군사적 개입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우려를 보라.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보아야할 것은 바로 이러한 장기적 변화들이다.

비관주의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 비관주의는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음으로써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혁명적 변화는 한순간의 대격동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라 (치만 그 순간을 놓치지 말지어다!), 더욱 나은 사회를 향해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놀라운 사건들의 끊임없는 연속으로 다가온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대단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찾을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들도 수백만에 의해 더해진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승리"하지 못할 때 조차도, 우리는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고 단지 우리가 그 과정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동참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낙관론자라고 꼭 가벼운 사람은 아니라, 우리 어둠의 시대에 좀더 꿈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좆같은 시대에 희망적일 수 있다는 걸 멍청한 낭만주의로 봐선 안된다. 그런 태도의 밑바탕에는 인간역사가 단지 잔인함의 역사가 아니라 연민과 희생과 용기와 친절함의 역사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복잡다단한 역사 속에서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결정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최악만을 보게 된다면, 그건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마저 파괴시킬 것이다. 만약 우리가 역사 속에서 거대한 민중이 정말 기가 막히게 어떤 역사를 만들어냈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린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네르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을 바뀌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것이나마 우리가 직접 행동할 수 있다면, 우린 머 대단한 어떤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일 따름이다. 그리고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현재를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건 놀라운 승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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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0 09:28 2008/08/1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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