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5일, 미국의 IT 및 뉴미디어 시장 연구업체인 Forrester Reseach에서 방송의 미래에 대한 예측성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직접 구입해서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요약본과 이 보고서를 다시 분석하는 기사의 내용이 흥미롭다.
1. 배경: 현재 방송산업이 겪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미디어 시장의 다변화'와 '(중간)광고 건너뛰며 방송 보기(ad skipping)'로 대변되는 방송광고 수입 기반의 약화 또는 약화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2. 예: 개인적으로 독일 상업 민영방송에서 가장 짜증나는 점을 꼽으라면 지나치게 많은 중간광고들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긴장되시죠? 맥주 한잔 어떠세요?"라는 광고가 이어질 때면 욕이 절로 나온다.
3. 이해관계의 대립: 방송 소비자와 공급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광고다. '지나치게 많은 광고'를 거부하는
소비자와 '지나치게 많은 광고'로 큰 수익을 올리는 방송사가 갈등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중간광고를 자동으로 걸러서 녹화하는
디지털 녹화기들이 상용화되었을 때, 독일 민영방송사들은 아예 이러한 녹화기의 판매를 금지할 것을 법원에 요구한 적이 있다.
민영방송사들이 인터넷 방송(IPTV)을 기대반, 걱정반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혹 인터넷 방송에서 '광고 건너뛰기'가
더욱 쉬어지는 것 아닐까라는 염려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독일 민영방송사들이 독일 각 대학에 의뢰를 많이 하는 연구주제가 바로
'방송광고의 미래'다. 최근 한 연구보고서는, 광고를 자동으로 걸러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터넷 방송용 콘텐츠의
메타데이타(meta data)에 '광고'라고 구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인터넷 방송사들의 수익기반은 광고에 있고,
광고를 걸러내면 인터넷방송 콘텐츠 제공자의 존재기반이 무너지고, 결국 소비자도 손해를 입게 된다는 논리가 그 주장의 근거다.
4. Forrester Reseach 보고서: 광고를 둘러싼 소비자와 방송사의 이해관계 대립를 역으로 이용하면, 인터넷 방송에
장미빛 미래가 보장된다는 주장이다. 소비자/시청자가 광고를 소비하는 댓가로 방송사가 소비자들의 인터넷 방송 '망 이용료'를 부담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더욱 빠른 시간내로 즉 2010년 정도 인터넷 방송이 최고의 미디어로 성장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미
학술적으로는 '양측시장 (two-sides Markets)'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이러한 사업 및 가격모델이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광고주 입장에서 볼때, 공중파 방송이나 케이블 방송보다 인터넷 방송의 광고 효과가 매우 높을 수 있다. (가) 가입자의 신상
데이타가 인터넷 방송 '망 사업자' 손에 놓이게 된다. (나) 셋업박스에는 소비자가 어떤 프로그램을 즐겨보는지 분석할 수 있는
이른바 '로그파일'이 저장되어 '망 사업자'에게 전달된다. (가)와 (나)로 인해 광고의 타겟분석이 더욱 쉬워지고 '맞춤형
광고'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되면, 광고주들에게 더욱 높은 광고 단가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추가 수익' 중
일부를 소비자에게 이전하면 소비자는 무료로 인터넷 방송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무료'는 아니다.
소비자는 광고에 나온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함을 통해 인터넷 방송 이용료를 간접 지불하는 것이다.
5.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 방송용 광고중계업에 뛰어들고 있는 것은, 인터넷 방송에서 '광고 중계 기술 및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예행연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측성' 보고서에서는,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 것이다, 빠르면 5년 뒤에 어떻게 변화할 것이다 등 미래를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2010년은 앞으로 길어야 2년 남았다. 그만큼 자신들의 주장에 자신감이 있다는 이야기다. 즉 최소한
미국 방송산업은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충격적인 글입니다. 웹의 개방성을 이야기하는 팀블로그(쿱미디어)에 올려진 글이라고 믿겨지지 않네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들을 제시하지 않고 여성비하적인 발언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회원들의 활동이 압도적인 싸이월드 역시 별로 전망이 밝지 않습니다" 라는 표현은 전후 문맥과 연관지어 보면 '여성회원들의 활동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싸이월드의 전망이 밝지 않다'라고까지 읽힐 정도입니다. 추측하건데, '관계 지향적 대화 = 여성'이라고 생각(1)하시는 글쓴이께선 지금까지 싸이월드의 주요 성공원인을 '일촌 관계'에서 찾았던 수많은 기사/글들(2)을 접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싸이월드의 성장세가 주춤한다는 소식들(3)을 들으시면서, 논리적 착시 현상을 일으키신거죠. '야 (3)은 (2)의 반대꼴이고, 결국 (3)은 (1)때문이구나!'
(3), 즉 싸이월드의 성장 둔화는 여러가지에서 그 원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3-1) 블로그 등 여러 대체재의 등장과 성장, (3-2) 미니홈피와 아이템들이 소비자에게 주는 한계효용의 급격한 체감 (즉 '도토리'로 구매하는 아이템들에서 느끼는 소비자들의 추가 만족도가 이제는 감소한다는 것), (3-3) 웹의 환경변화와 대체재 등 경쟁상품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싸이월드 경영진의 무능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저의 의견도 객관적인 사실들과 연관지어 이야기할 때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죠.
여하튼, 시간이 많지않아 여기까지하겠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전근대적 속담(?)은 '과거 남성들이 신분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비열하게 사용했던 여성비하적인 표현'이라고 역사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 외에서는 더이상 현재적 의미를 찾을 수 없는 표현입니다.
제가 자주 들리는 블로그 쿱미디어에 이곳에 이러한 엉성한 글이 진정 맞게 포스팅된 것이냐는 물음을 가질만큼 황당한 포스팅이 올라와 급하게 반박합니다. 암닭이 울면 사이트가 망하는 이유: 블로그와 SNS 사이트의 성공을 바란다면 풍부한 이야기꺼리로 약동하는 젊은 남성 회원들을 붙잡으십시오. 국내 사이트 중에는 네이버와 야후가 남성 회원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반대로 싸이월드와 다음은 여성과 장년 회원의 움직임이 더 눈에 띄입니다. 주요 포털의 향방을 예측..
우정의 무대 에서 단연 감동적이었던.. 그 코너에서 엄마와 아들이 상봉하던 순간에 흐르던.. 그 음악도 압권이었지만 무엇보다 재밌었던 것은.. 무대위로 뛰쳐나온 장병들이 차렷자세로.. more.. "뒤에 계신 어머님은 우리 어머님이 틀림없습니다!!" 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외쳐대던 장면이 아닐런지... 물론 방송의 재미를 위해 사전에 짜고 준비한 장병도 있을테고, 더러 평소에도 엄마 목소리를 구분 못하는 사오정 일병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월..
쿱미디어의 여성 비하 제목으로 촉발된 논란의 여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도 올블로그에 가보니 "여성'성' 편향의 싸이월드"라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성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성공에 대한 기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싸이월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그것을 공론의 장으로 볼 수도 있고, 컨텐츠 생산의 공장으로 볼 수도 있고, 지인들 간의 커뮤니케이션 채널로 볼 수도 있다. 싸이월드를 첫번째, 두번째로 본다면,...
뉴욕타임즈가 몇가지 의미있는 '온라인 뉴스 형식'을 실험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축구 경기를 사진을 통해 분석하는 기사를 만들었다. 러시아 '이신바예바(Isinbayeva)'의 장대높이뛰기 결승전을 사진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새로운 시도가 이번 올림픽에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미 2007년부터 이와 유사한 동영상을 통한 분석 기사가 시도되었다. 스포츠 관련 기사들에 제한해서 시도되는 이런 류의 분석기사들에 뉴욕타임즈는 "Play Magazine"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 분석기사들의 효과와 의미를 떠나, 이를 만들어낸 그 상상력에 박수를 먼저 보내고 싶다.
'블로그 행동의 날'의 핵심은, 하루 동안 하나의 이슈에 블로거 각자 하나의 글(post)를 쓴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하나의 이슈에 수천의 다양한 시각들이 연결되는 연대의 경험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전세계 (대부분 영어권이니 전세계란 수사는 무색하다) 블로거들이 2007년 10월 15일 하루 '환경'이라는 주제로 블로그 포스팅을 했고, 약 2만의 블로거들이 참여해 '블로그계'의 존재감을 확인했다고 한다 (포스트 통계 보기, 간단한 평가글 보기). 2008년 주제는 '빈곤' 또는 '가난'이다. 참여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Blog Action Day에 자신의 블로그를 등록하고, 2008년 10월 15일 '빈곤/가난'에 대한 글을 쓰면된다. 또는 아래의 홍보 비디오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거나, 참여자 배너를 달아도 좋다고 한다.
우리도 다가오는 10월 15일 '빈곤/가난'을 주제로 '한국어 블로그계'의 존재감을 확인해 보면 어떨까?
구글이 지난 6월 1일부터 피드버너(FeedBurner)를 통해 '피드'에 애드센스 광고를 추가할 수있게 하는 테스트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구글이 약 1년전 '피드버너'를 1억달러에 구입할 때 부터 예상할 수 있었던 그리고 '왜 이제서야?'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8월 15일 구글의 공식발표를 보면, 이제 피드에 애드센스 광고를 다는 것이 모두에게, 즉 피드 구독자 수와 관계없이 가능하다고 한다. 텍스트 광고 또는 이미지 광고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고, 광고 크기, 위치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피드버너 계정을 구글리더 계정으로 옮겨야 한다.
피드 광고가 블로그 운영자에게 수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개인적으로 그 전망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피드를 중심으로 블로그 및 온라인 뉴스를 소비하는 소비층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개인적인 추측에 불구하지만, 피드를 통한 소비가 아직까지는 얼리어답터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이들은 대부분 구글 애드센스를 클릭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피드를 통한 다양한 광고 실험(예: 피도(Pheedo))은 계속될 것 같다. 특히 '팀블로그' 형식의 기업형 블로그에는 '광고 수익'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테크크런치(TechCrunch)같은 기업형 블로그가 현재 피드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 방식은, 클릭당 지불방식이 아닌 노출 지불방식(코스트 퍼 밀)이다. 독일의 한 팀블로그는, 피드에 아예 후자방식의 광고를 홍보하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독일 한 기업형 블로그에서 피드에 삽입한 자사 피드광고 홍보: "점보형 광고를 작은 비용으로! 600*400 크기의 광고가 1주일에 1500유로"
RSS 피드에 광고가 들어간다면? 한동안 많은 사람들이 논란의 불을 밝혔던 것 중 하나가 " RSS 피드에 전체 포스팅의 컨텐츠를 넣는것이 좋다 / 좋지 않다 " 였던 기억이 난다. RSS 피드의 본래 목적을 어떻게 해석해야 적절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다 일리있는 근거들을 바탕으로 주장을 했었다. 컨텐츠의 저작권, 블로그/사이트로의 방문 유도, 가벼운 피드 동기화 등을 근거로 한 반대 의견들과 피드에 CCL 표현이 가능,..
구글 애드센스에 피드용 애드센스가 어느새 보니 새로 추가되었습니다. 구글이 피드버너를 인수하면서 언젠가 이렇게 될날이 오리라 했는데 오고야 말았군요. 설정은 그야말로 간단합니다. 그냥 몇가지 선택사항 확인하고 하단의 "새 피드 만들기" 링크를 클릭하면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피드주소를 입력하는 레이어가 나타납니다. 피드주소를 입력하고 다음 버튼을 누르게 되면 이렇게 http://feedproxy.google.com/ 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피드주소(애드..
이는 '미디어란 무엇인가?', '인터넷/웹 환경에서 미디어, 이른바 뉴미디어란 무엇인가?', '네이버 및 다음도 미디어 기업인가?' 등 일련의 논의들과 맥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1) '미디어'에 대한 전통적인 '정의' 그리고 이 정의가 인터넷/웹 환경에서 만나게 되는 도전/문제점 그리고 (2) 미디어 '생산'과 '유통'의 정의를 살펴본다면, 위의 논의들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1) 넓은 의미의 '미디어'는 '소통/통신 수단'이다. 즉 '내용(Content)'을 전달, 확산 또는 소비하는 '매체 (Medium)'들이다 (참조: 독일어 언론/방송학 입문서들, 죄송 ^.^). 책, 신문, CD, TV 등이 여기에 해당될 듯. 여기서 단수표현 Medium이 아니라 복수표현 Media가 사용된 것은, 복수의 매체들을 지칭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관 시스템/기관 (system/institution)'을 총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달하는 물리적 매체'만을 생산하는 기업들- 예: 종이 공장, 통신장비 공장 -은 위의 정의에 따르면 미디어 기업으로 분류하기 어렵다.
(2) 위의 정의에는 '생산'이 빠져있다. 미디어의 '생산' 또는 '유통'을 정의함에 있어 고려할 점은, '전달하는 물리적 매체'와 '전달되는 내용'의 구별이다. 이 두가지 구성 요소의 차별화된 결합 양식에 따라 '미디어 생산'의 정의가 달라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이 두가지가 (가) 떨어져서 (나) 또는 떨어지지 않고 전달, 확산 그리고 소비되는 미디어로 구별할 수 있다. 전자의 예가 신문과 음악 CD다. 이 경우 전달하는 매체와 전달되는 내용은 항상 함께하게 된다. 이러한 미디어에서는 '선별, 편집'하는 과정도 '생산'에 포함된다. '상품' 신문의 생산과정에는, 크게 분류하면 이른바 1. 조사, 2. 글, 사진, 그래픽 등 여타 요소의 1차 통합, 3. 편집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그리고 4. 이렇게 생산/편집된 내용이 전달매체와 결합하는 2차 통합-인쇄-이라는 4가지 과정들이 포함된다. 즉 '편집'도 생산활동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기사가 첫화면에 보일지 결정하는 '네이버'의 알고리즘, 그리고 그 기계적 알고리즘을 만든 네이버는 미디어 '생산'에 참여한 미디어 기업이다. 구글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네이버'와 '구글'은 (나)의 경우, 즉 '전달하는 매체'와 '전달되는 내용'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미디어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를 Disintermediation('탈'통합, '탈'중계?)이라고 지칭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서, ) 아직 학계에서는 (나)의 경우에서 '미디어 생산활동'에 대한 합의된 정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탈' 통합된 (disintermediated) 전달 매체와 전달되는 내용은 인터넷/웹에서 재통합 (reintermediation)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를 담당하는 것이 네이버와 구글등이다. 이 '재통합'을 생산의 범주에 또는 유통의 범주에 포함시킬 것인가가 관건이다. 뭐 굳이 생산, 유통, 소비라는 과거의 논의구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이 미디어 (생산) 정의, 또는 미디어 기업 정의와 관련된 논쟁이 가지는 정치적 파장이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구글을 미디어 기업으로 정의하는 순간, '시장 점유율' 통제가 가능하다. 나치의 언론장악이라는 암울한 역사를 가진 독일에서는, 지속적 시장점유율 30%(정확한 수치는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정도였던 것 같다)가 넘는 미디어 기업은 시장점유율을 강제로 낮춰야 한다.
영국 총리실 공식 홈페이지, '다우닝가 10번지(Number10.gov.uk)'가 8월 12일 새단장을 했다. 깔끔한 디자인, 웹 표준 적용 등 기초적인 것에서 부터, 플리커(Flickr), 유튜브(YouTube), 트위터(Twitter) 등 열린 사회 연결망을 적극 활용한 점까지, '공식/정부 사이트'의 무료한 느낌과 있으나 마나한 기능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소통 Communicate'을 살펴보자. 한국 청와대가 닫힌 게시판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영국 총리실은 유튜브에 직접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가기). 이곳에서 비디오 형식을 통해 총리실에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답변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 질문들과 답변들은, 유트브 전체에서 아니 웹 공간 전체에서 배포, 활용될 수 있다. 여기서 시민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이 토론광장에 참여할 것인가는 두번째 문제다. 시민들이 많이 모인 곳(예: 유튜브), 그곳으로 총리실이 직접 찾아가 대화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공개 청원 e-petitions' 기능도 주요 이슈가 효과적으로 부각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각 청원들은 간단명료한 주소(URL 주소 또는 퍼머링크)를 가지고 있어, 웹 공간에서 청원 및 이슈 확산이 용이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 청와대 국민신문고는 닫힌 구조를 그 특징으로 하고있다.
독일 총리실, 미국 백악관 웹사이트들과 비교해도 이번 영국 총리실의 새로운 웹사이트는 단연 최고다.
지난 2004년 11월은, 다시 시작되는 독일의 긴 겨울을 두려워하며 또한 조지 부시의 미국 대통령 재선 결과에 씁쓸해하며, 마음둘 곳 없었던 시기였다. 이때 미국에서 살고 있는 나의 절친한 친구가 번역한 하워드 진(Howard Zinn)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지금도 가끔 내 앞길이 두려워지고, 유혹이 찾아올 때면 읽곤 한다.
------------------- 불확실성의 낙관 (Howard Zinn, 2004년 11월 8일) (원문보기)
권력을 가진 이들에 비해 우리네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의 행위의 결과가
너무나 초라한 이 개같은 세상에서 난 어떻게 이런저런 많은 일들에 열성을 쏟을 수 있고 또 행복해보일 수 있는가? 나는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 백프로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카드들이 끝까지 다 오픈될 때까지 우리는 게임을 포기해선 안될 것이라
굳게 믿는다. 심사숙고 끝에 도달한 메타포: 인생은 도박이다. 그렇기에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길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포기하는 것이다.
게임을 한다는 것,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거다. 우리들 사이에 지금과 같은 현실이 지속될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문제는 우리가 갑작스레
체제가 붕괴하고, 사람들의 생각에 있어서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에 대항한 예상치 못한 대규모 봉기가 발생하고, 도저히
망할 것 같지 않던 시스템들이 급작스레 몰락하고 하는 따위의 현상들을 보고 얼마나 놀라와했는지 종종 잊는다는 것이다.
지난 백년간 역사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역사의 철저한 예측불가능성이다. 기술적 진보로 인해 누군가 달에 착륙하는 시점을 정확히
계획/예측해내고, 또 길을 걸으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는 시대에 이런 소리 한다는 게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치만 한 백년 뒤로 가보자. 반봉건 제국들 중 가장 낙후했었던 러시아의 짜르를 무너뜨릴 혁명은 가장
발전된 제국 권력들 뿐만 아니라 레닌까지도 놀라게 만들어 그로 하여금 황급히 기차를 타고 페테로그라도로 향하게 만들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엔 누가 또 스탈린에 의해 혁명이 불구화될 것이라, 혹은 흐루시쵸프가 스탈린을 까발릴 것을, 혹은 고르바쵸프의 깜짝쇼의
연속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누가 나찌-소련 협약(그리고 떠올리기도 쪽팔린 폰 리벤트롭과 몰로토프의 악수)에 의한 2차세계대전의
골때리는 전환을, 그리고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아만 보이던 독일군의 러시아 진격과 독일군의 패배로 인해 레닌그라드의
입구에서, 모스크바 서쪽에서, 그리고 스탈린그라드의 거리에서 그들이 되돌아가야만 했던 것을 예측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아무도 미리 알 수 없었던 방식으로 세계가 재편되던 때: 스탈린조차 그 가능성을 낮게 여겼던 중국에서의
공산혁명, 소련과의 결별, 난리법석을 떨었던 문화혁명, 그리고 포스트-마오 중국에서 자신들이 그토록 열성적으로 받들었던 생각과
제도들을 버리고 모두를 놀래키는 가운데 서방과의 문호를 열고.. 전후 서방제국들의 급작스런 붕괴, 그리고 탄자니아 나이레레의
연성 사회주의에서부터 바로 옆 우간다 이디 아민의 광기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 역시 아무도 예측 못했다.
스페인도
경악의 대상이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파시스트 프랑코의 승리로 막을 내렸던 내전에서 백만명이 죽었다. 내전에
참가했던 누군가로부터 스페인의 파시즘을 또하나의 혈전없이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프랑코가 죽고 난 후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모두에게 열려진 의회민주주의가 세워졌다. 폴투갈, 알헨티나,
필리핀, 이란 등 다른 곳에서도 깊게 뿌리 내린 독재체제들이 무너졌다.
냉전 하 양대 권력축이었던 막강한 화력과
파워의 미국와 소련... 치만 이들 슈퍼파워에 관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크기, 부, 다른 나라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축적된 핵무기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 심지어 자신들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여겨졌던 나라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것...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당한 개쪽..은 수소폭탄을 가진 거대 권력 조차도 싸우기로 작정한 나라 사람들에 대한
지배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미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인도차이나에 대한 총력전, 어느
조그만 반도에 대한 세계사에 유래없는 폭탄투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물러나야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 미국은
쿠바에서의 혁명을 막을 수 없었으며 칠레에서 알헨티나를 거쳐 엘살바도르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지원했던 독재제들은 무너졌다. 매일의
헤드라인에서 우린, 노동자와 빈자들의 풀뿌리운동이 자본권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을 뽑은 브라질의 경우에서 보듯,
약자에 대한 강자의 권력행사가 실패한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놀라운 사건들의 카탈로그를 들여다보노라면,
총과 돈을 가지고 절대로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이들의 거대한 파워 때문에 정의를 위한 싸움이 포기되어선 안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해보인다. 이런 권력체들이 폭탄이나 달러로는 측정될 수 없는 인간의 어떤 속성 앞에 약점을 드러내었다는 점은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보여졌다. 알라바마와 남아프리카의 흑인들이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혹은 베트남의 농민들이건, 폴란드,
헝가리, 그리고 소련의 노동자와 지식인들이건..
힘관계에 대한 계산이 엄혹한 것으로 드러날지라도, 이는 자신들의
싸움의 명분이 정당하다 믿는 사람들을 지체시키진 못한다. 내 친구들의 (단지 내 친구들 뿐일까?) 비관에 맞장구쳐주려고 나도
꽤나 노력했지만, 여기저기 절망적인 일들만 생기는 것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을, 특히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젊은 사람들을 계속 자꾸만 만나게 된다. 내가 어디엘 가든, 그런 사람들은 꼭 있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활동가들 뒤로
수백, 수천명의 사람들이 주류에 저항하는 건강한 생각들에 마음을 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몰라하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개별적으로는 꿋꿋히 살아가고 있음에도 마치 시지프스가 산꼭대기로 돌을 끊임없이 밀어올리듯 절망적인 인내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지금 당신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당신처럼 거대한 운동의 부재로
인해 가슴아파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바로 그런 운동의 잠재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의 변화야말로
정말로 나를 북돋아주는 힘의 원천이다. 인종적 편견과 성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전쟁과 폭력이 여전히 우리의 문화를 짓누르고
있고, 가난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 많고, 또 변화를 무서워하고 있는 그대로에 만족해하는 사람들 분명 있다. 그러나 이런 측면만
보는 것은 역사적 관점을 놓치는 거구, 이건 마치 어제 태어나서 오늘 아침신문과 저녁뉴스의 힘빠지는 이야기들만 아는 꼴이 다.
단지 몇십년 사이 이뤄졌던 엄청난 변화들, 인종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변화, 여성들이 자신들의 정당한 자리를 요구하는 당당한
모습, 동성애자들이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대중적 인식의 확산, 그리고 잠깐의 광기 이후
찾아온 군사적 개입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우려를 보라.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보아야할 것은 바로 이러한 장기적
변화들이다.
비관주의는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 비관주의는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음으로써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혁명적 변화는 한순간의 대격동에 의해 오는 것이 아니라 (치만 그 순간을 놓치지 말지어다!), 더욱 나은 사회를
향해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놀라운 사건들의 끊임없는 연속으로 다가온다.
변화의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대단하고
영웅적인 행동을 찾을 필요는 없다. 작은 행동들도 수백만에 의해 더해진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리가 "승리"하지 못할
때 조차도, 우리는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고 단지 우리가 그 과정에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동참했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낙관론자라고 꼭 가벼운 사람은 아니라, 우리 어둠의 시대에 좀더 꿈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좆같은 시대에 희망적일 수 있다는 걸 멍청한 낭만주의로 봐선 안된다. 그런 태도의 밑바탕에는 인간역사가
단지 잔인함의 역사가 아니라 연민과 희생과 용기와 친절함의 역사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복잡다단한 역사 속에서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측면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결정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최악만을 보게 된다면, 그건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마저 파괴시킬 것이다. 만약 우리가 역사 속에서 거대한
민중이 정말 기가 막히게 어떤 역사를 만들어냈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린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에네르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을 바뀌낼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것이나마 우리가 직접 행동할 수 있다면, 우린 머 대단한
어떤 유토피아적 미래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일 따름이다. 그리고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현재를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건 놀라운 승리이기 때문이다.
지역신문/지역언론과 관련된 멋진 아이디어, 그리고 그 현실 적용 사례를 오늘 접하게 되었다.
먼저 그 적용 사례를 살펴보자.
스위스에 위치한 알프스 산봉오리 '융프라우 (Jungfrau, '처녀'라는 뜻)'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유명 관광지다. 관광객들은 으레 산 정상(해발 4158m) 가까이에 위치한 기차역 '융프라우 요흐 (Jungfraujoch)'(해발 3471m)까지 기차를 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산봉오리를 뒤로 하고, 사진 몇장 찍고 다시 '인터라켄 (Interlaken)'이라는 출발 도시로 돌아온다. 산봉오리는 보지 못했서도 오르는 길에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산 중턱의 아기자기한 마을들은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한다.
통나무집(? 외형상...)들이 험한 산자락에 모여 앉아 동화속 마을들을 만들었다. 이 마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즐겨보는 지역신문, 융프라우 차이퉁 (Jungfrau Zeitung)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이 신문사는 '세계 최초 마이크로 신문'이라고 스스로를 칭하고 있다. 마이크로 신문? 뭘까? 내가 모르는 유행어인가? 이 신문이 대상으로 하는 지역의 총 인구는 약 5만명. 이들은 많게는 몇 백명씩 모여살지만 적게는 한두 가구씩 떨어져 살기도 한다. 이 마을들이, 사람들이 모여 '마이크로 코스모스'를 이룬다고 위의 신문사는 설명하고 있다. 이 5만명 중 약 2만 5천명이 '융프라우 차이퉁'을 정기 구독한다-1년 정기구독료 155프랑, 약 15만원-. 그런데 이들 정기 구독자들에게 신문이 매일 배달되지는 않는다. 일주일에 단지 두번 (화요일과 금요일), 그것도 신문이 아니라 '출력물(? Printout이라고 불린다)'이 전달된다. "무엇의 출력물일까?" 바로 '온라인 플랫폼'의 내용물(콘텐츠)이 선별되어 종이에 출력되는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4개의 플랫폼으로 다시 세분된다. 1. 뉴스 플랫폼, 2. Web TV 플랫폼, 3. 시장/광장 플랫폼, 4. 7일 (7 days) 플랫폼. 3번 플랫폼에는, 부음, 출산 축하, 생일 축하, 입학/졸업 축하, 결혼 축하 등의 마을 소식들이 '광고 형식'으로 올라온다. 4번 플랫폼에는 7일간의 각 마을에 있는 행사/공연 소개가 담겨있다. 이 4개의 플랫폼에 담겨있는 내용물들(콘텐츠)은 편집진들에 의해 '마을 맞춤형'으로 선별되고, '마을 맞춤형 광고'들과 함께 출력(Print out)된다. 여기서 내용물들의 기술형식은 이른바 '마이크로 포멧 (microformat / microcontent)'이다. 그리고 출력물을 위해 별도로 생산된 내용물/뉴스는 없다. 뉴스, Web TV, 부음 및 각종 축하 소식도 온라인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항상 온라인을 통해 뉴스나 마을 소식을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출력물'을 만들었는데, 온라인 플랫폼 방문자의 증가와 함께 '출력물' 정기구독자가 동시에 급성장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융프라우 차이퉁' 소개다.
이들의 멋진 아이디어를 함 살펴보자. '여기'를 클릭하면 자료를 보거나 내려받을 수 있다. 유감스럽지만 독일어다. 핵심 내용은 5쪽에서 9쪽에 모여있다. 독일어도 몇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1. Publizistik, 뜻은 저널리즘, 즉 내용물, 2. Werbung, 광고, 3. Nutzer, 사용자다. 이 3개가 일치하면 '최적 (optimal) 상태'라는 거다. 7쪽을 보자. 뉴욕타임즈 자회사인 '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을 예로 들면, 기사내용은 '이라크', 광고는 '삼성', 사용자는 '중국인'이다. 8쪽은 독일 대표 주간지/온라인 뉴스플랫폼 '쉬피겔'을 예로 들고 있다. 기사내용은 '메어켈 독일 총리', 광고는 '맥주회사(Warsteiner라는 지역이름)', 사용자는 '칼스루에' 지역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 9쪽은 '융프라우 차이퉁' 즉 자신들 소개다. 기사내용은 '융프라우 산자락에서 열리는 한 청량제 회사의 공중 비행쇼에 대한 찬반 논쟁', 광고는 '브라이언 아담스의 공연', 사용자는 융프라우 지역 한 마을 사람들.
종합적으로 볼 때 개방, 사용자 참여 및 연결망 등 이른바 '웹 2.0'의 특징들은 찾아 볼 수 없다. 비록 상표명('융프라우 차이퉁')에서는 '신문'을 표방하지만, '출력물' 개념은 신선하다. 온라인 플랫폼 우선 원칙과 (항상 '온라인'일 수 없는 소비자를 위해 출력물을 배달하는) 사용자 편의성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또한 지역신문/언론이 가장 집중해야할 내용물이 '지역 소식'임을 강조하고 있다. 매우 훌륭한 생각들이다. '융프라우 차이퉁'은, 험준한 산세가 갈라 놓은 마을 사람들의 소통의 도구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한편으로 돈도 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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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