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새벽 4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 9시경 눈이 떠졌다. 총선결과가 궁금해서다. 아니지, 아직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 (여긴 독일이니, 정오 12시가 한국시간으로 저녁 7시다) 이후 기다림의 3시간은 어렵지 않게 지나갔다. 이는 기대감때문이었다. 혹시나 심상정 후보의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말이다. 설레던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후 3시쯤, 심상정 후보와 노회찬 후보의 패배를 받아들이면서 컴의 파워를 껐다. 4월의 창밖으로는 차가운 (아직도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의 시작
낮은 투표율,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 친박 후보들의 선전, 자유 선진당의 약진 등등의 제목이 달린 기사들을 클릭하지 않았다. 내겐 그리 놀라운 소식들이 아니었다. 머리를 맴도는 것은, 얼마전 독일을 잠시 방문한 한 선배의 얘기다. 80년대 군사정부가 물가를 잡기위해 '임금 가이드라인'을 강제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노사는 자녀 (대학) 학자금 전액지원 같은 형식으로 당시 임금인상을 대신했다고 한다. 학자금 전액지원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노동자들이 자녀 학원비 마련을 위해 주말야근을 한다고 한다. 학원을 열심히 보내 자녀가 의대에 들어간다고 하면, 자녀의 장래가 보장(?)되는 것을 떠나 노동자 입장에서는 입학금과 등록금에 해당되는 돈을 자동적으로 벌게되는 셈이다. 바야흐로 학원비마련을 위한 '잔업 경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여기에서 노동(시간)을 나누자, 나눈 노동(시간)을 통해 비정규직을 정규화하자라는 주장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려워진다. 내가 현대자동차 노동자 입장이라면 어떨까? 그래도 노동을 나누는 결정은 쉽지 않다. 잔업 수당도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 잔업 수당이 높은 수익률(?)의 '교육 투자(?!)'가 된다면? 알량한 대의를 위해 최소 3천만원을 난 포기할 수 있을까?
아파트값 상승과 투표행위
자고 일어나니 집값이 얼마가 올랐다는 얘기들을 가끔 듣는다. 몇년 동안 일하고 저축해야 만져볼까 말까한 금액이 하루 이틀 사이에 오르락 내리락한다? 독일에서 줄창 이른바 '월세' 생활을 하는 나로서는, 실감이 나지 않는 얘기다. 6년 전쯤인가, 한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X같은 회사 생활, 주택구입 대출금 상환 때문에 참는다"고 분통을 터뜨린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는 이유가 어디 대출금 상환뿐이었겠나 싶다. 송파에 위치한 아파트였으니, 남들이 보기에 훌륭한 직장에서 10년 넘게 일한 그 친구에게, 월급의 일부만 은행에 저축해서는 만질 수 없는 재산이 되었을 것이다.
이번 총선 전에 불었던 서울 강북지역의 아파트 값 상승에 정치적 음모(?)가 있다는 주장을 접한 적 있다. 뭐 전혀 음모스럽지 않다. 한나라당을 찍으면, 다음 날 아침 아파트 값이 오른다라는 '상상'만으로도 유권자들의 마음은 충분히 동했을 것이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하루 아침에 1-2천만원을 벌 수 있다면?
영어교육과 투표행위
노회찬 후보를 이긴, 미국 대학 졸업한 홍정욱. 이제 당선되었으니, 1년에 100시간 지역에서 '영어교육' 약속을 지킬 것이다. 미국에서 학교를 나오면 선거때 이러한 장점이 있을 줄이야.... 강남에서 홍정욱이 출마해 100시간 공약을 내걸었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경남 사천에서는? 100시간의 가치가 지역마다 차이를 보일 것이다. 노원이 강북의 '강남'이 되고자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내가 노원 구민이고, 내 자식이 영어 좀 하는 중학생이라면? 100시간으로 상징되는 '홍정욱표 영어교육'에 과연 매력을 느꼈을까?
온갖 잡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TAG 총선
받은 트랙백이 없고,
댓글 2개가 달렸습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댓글 RSS 주소 : http://npool.ktpage.net/rss/comment/33댓글 ATOM 주소 : http://npool.ktpage.net/atom/comment/33
20대의 초저조?한 투표율에 함 놀라고,그들의 30대보다 훨씬 보수적이라는 성향에 또 한번 놀랐네요... 에공 이제 정말 나이가 드나봐요... 20대들이 이해가 안되요... 또 정말 어디로 가자는건가 하는 식의 울분과 가슴 답답함이 밀려오구요^^ 에휴~
선거때문에 우울모드이셨나보죠?
여기 위기상 예상되었던 일이라 별로 놀랍지는 않아요.
한국 TV에서는 요즘 방미한 대통령이 유창하다 못해 거침없는 영어로 투자설명회에서 미국 기업가들의 마음을 얻었다고 하는 뉴스가 연일 방송되고 있어요. 초등학교 수업시간 0교시를 허락한다고 나왔다가 잠잠해지더니 이제는 또 학력향상을 위해 중고등학교에 학원강사가 와서 수업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합니다. 머리들이 어떻게 된 사람들이에요.